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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의 중심이자 너른 평야 속 풍요로운 도시 나주에 대해서 알아보면
    아들을 위한 인문학/국내여행 2023. 8. 10. 03:20

    나주하면 빠지지 않는 것이 배와 곰탕, 영산강 그리고 혁신도시가 있다. 나주는 역사 속 호남의 중심지였다. 마한의 중심지로 시작해 후삼국 시대에는 견훤의 세력권이었던 전주에 맞서 궁예가 보낸 왕건이 세력을 구축한 곳이다. 고려시대에는 왕건의 왕위를 물려받은 혜종의 출생지로 어항이라고 불린다. 그러다 전남 지방의 행정, 정치 등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하며 나주목으로 지정되었다. 이에 전주와 나주의 앞 글자를 따서 전라도가 된 것이다. 한편 서울에 남산과 성북동처럼 나주에도 남산과 성북동이 있으며 대동여지도에서 두 도시가 아주 유사하다. 나주 금성산은 서울의 삼각산을 닮았고 한강이 서울과 경기를 돌고 돌아 풍요를 선물했듯이 영산강도 나주와 그 주변 지역을 휘감고 있어서 과거부터 작은 서울이란 의미로 소경이라 불렀다. 농경지가 넓고 따뜻한 기후의 영향을 받아 일찍이 신석기 말부터 벼농사를 지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리고 3세기부터 6세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 백제와 별개로 이 지역은 마한시대의 독자적인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나주국립박물관 옆에는 크고 작은 언덕들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고분들이다. 또한 나주 반납 고분군이 금동관이 출토되고 반납면 신촌리 고분에서는 대형옹관과 금동신발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으나 일본 총독부는 조속히 발굴을 마무리하고 도굴꾼들의 표적이 되어 유물이 거의 도굴되었다

     

    나주 읍성

    서울의 사대문이 있듯이 나주읍성에도 사대문이 있다. 이 사대문 안에 객사, 동현과 내아 등을 갖추고 있다 나주 시내에는 천년고도 목사마을이라는 문구가 있다. 목사에서 목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지방행정단위의 하나로 지금으로는 도지사가 있는 고장이다. 목사내아 금학헌이 있는데 거문고 소리를 들으며 학처럼 고고하게 살았다는 이곳의 목사의 살림 공간이다.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 후반까지 군수의 관사로 사용되면서 원형이 많이 훼손되었다가 복원되었다. 또한 객사의 금성관이 있다 관용숙소로 매월 1일과 15일 국왕에 대한 예를 올리고 외국사신이나 정부고관의 행차가 있을 시 연회를 베풀던 곳이다. 그리고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촬영장소였던 나주향교는 조선시대 교육시설의 기준으로 보면 전국의 국학시설 중 성균관 다음으로 큰 곳으로 알려졌다. 나주향교의 건물 안 제사공간인 대성전은 조선후기 향교 건축을 대표하는 곳이었다. 풍요롭고 여유있는 나주의 이미지는 석장승이 있다. 사찰 장승은 절집의 입구를 알려주는 경계 표시로 부정한 자와 잡귀의 출입을 금한다는 경고의 의미로 세워진 것이다 그러나 불회사 석장승은 화가 나 있지 않고 해학적으로 보이고 있다

     

    평야지대를 자유롭게 구불구불 흐르며 심한 유로 변화를 겪는 하천을 자유곡류하천으로 영산강이 대표적이다. 영산강을 따라 영산포구 쪽으로 이동하다 보면 풍광이 우수한 절벽을 있다. 앙암바우, 아망바우라고 이 절벽의 사연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산강을 사이에 두고 진부촌과 택촌의 두마을이 있었다. 진부촌에는 아비사라는 아름다운 여인이 택촌에는 아랑사라는 어부가 살고 있었다. 병든 아버지께 드릴 물고기를 잡고 싶은데 잡을 길이 막막하다는 아비사의 사연을 듣고 아랑사가 고기를 잡아줬다. 이를 계기로 둘을 사랑에 빠졌고 밤마다 앙암바위에서 만나 사랑을 나눴다. 이를 시기한 진부촌 청년들이 아랑사를 바위 아래로 떨어뜨렸다. 그 이후 강에서 바위를 타고 올라온 구렁이와 아비사가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보고 나쁜 징조로 여긴 사람들이 이 둘을 바위 아래로 굴러 떨어뜨려 죽여버렸다. 그 이후 진부촌 젊은이들이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나갔고 밤마다 몸이 얽힌 두 마리의 구렁이가 진부촌에 나타났다. 마을 어른들이 씻김굿을 하여 그들의 넋을 위로하고 나서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전설이 있다 한편 나주는 군산과 목포처럼 수탈의 도시로 전남 내륙 최초로 일본인회가 조성되었고 국권 침탈 이후 호남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영산포역과 등대가 건설되었다

     

    영산강
    광주학생항일운동

    고려시대 나주 영산포는 왜구의 침입에도 불구하고 바닷길이 연결되어 명나라 사신이 올때도 이곳을 거쳐 서울로 갔고 고려 사신도 나주에서 명나라로 출항했다. 또 제주도와 전라도로 파견된 관리들도 육로보다는 나주를 거쳐 배를 타고 개경까지 이동했다고 한다. 이처럼 나주는 바다와 강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며 교통의 중심지 노릇을 했다. 조선시대에도 나주 영산포는 조운선이 1년에 세 번이나 운항하는 등 조운의 중심지였다. 한편 일제강점기에 목포가 개항하자 내륙 수운의 중심지로 나주는 주목되어 일본인들이 대거 이동하여 집단 거주지가 되었다 그러나 1981년 영산강 하굿둑이 건설되면서 영산포로 더 이상 배들이 들어오지 않게 되었고 급격히 쇠퇴하였다. 그 대신 광주와 목포의 뱃길을 기차로 옮겨갔다. 나주 학생들이 이 기차를 타고 광주까지 통학했다. 또한 도로가 발달하자 광주의 시내버스가 오가면서 접근성이 높아지자 나주시민들은 기차를 이용하지 않았다. 한편 나주역은 항일운동의 진원지가 되었다. 19291030일 오후 530분경 일본 학생이 우리나라 여학생의 댕기머리를 잡아당기며 희롱했는데 이 일로 큰 싸움이 벌어졌다. 이후 113일 광주에서 시작하여 5개월 동안 국내에서만 250여 개교 5.4만명 학생들이 참가한 대규모 시위로 확대되었다

     

    영산이라 불리던 흑산도는 풍부한 어족 자원 때문에 왜구들이 빈번하게 침략했고 따라서 많은 피해를 입게 되었다. 흑산도는 과거 영산이라고 불리던 섬이었다고 한다. 이 섬에 살던 사람들은 왜구로 인해 피해가 계속되자 섬을 완전히 비우고 나주 영산강변에 임시 거처를 마련했다. 그후 자신들의 고향을 그리워하며 임시 거처를 영산이라고 불렀는데 어느 시점부터 영산포라는 지명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또 흑산도에서 잡은 홍어를 영산포에서 거래하면서 지금의 홍어 거리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또한 나주 곰탕의 국물은 맑은 고깃국물이다 과거에 고기는 아주 귀한 음식이었고 고기를 모두 발라내고 남은 뼈로 푹 고아 만든 음식이 곰탕이다. 이렇게 조리된 국물은 뽀얀 색깔이 나지만 나주는 고기 부산물들을 고아서 만들었기 때문에 맑은 국물인 것이다 나주의 고기 부산물이 많은 이유는 1930년 나주에는 일본군들에게 제공할 쇠고기 통조림을 만드는 공장이 설립되었다. 하루 300마리를 도축하면서 많은 부산물이 나왔고 노동자들에게 부역의 대가로 소 부산물을 주었고 이것을 끓여먹은 것이 시초가 된 것이 나주곰탕이다. 우리 민족의 애환이 담겨 있다. 그리고 나주배는 조선시대 임금님의 진상품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여 500년의 역사를 가진 것은 분명한데 특히 주목을 받은 것은 1900년 중반부터 일본농민들은 일본에서 개량된 우수한 배 품종들을 들여와 심으면서 과수원을 경영했다 한국전쟁 등으로 수요가 없다가 1960년대 이후부터 과일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나주 배는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2012년 나주배는 지리적 표시제로 등록되었다

     

    빛가람 혁신도시

    전주와 함께 전라도의 중심도시로 기능을 하던 나주는 육상 교통의 발달과 광주의 성장으로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다양한 문화유적과 유리한 자연환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타 다른 지방 중소도시들처럼 나주도 배와 곰탕이 이미지만 간직한 채 묵묵히 남겨져 있었다. 이런 나주에 다시 한번 도약의 기회가 찾아왔다. 한국전력과 같은 큰 공기업이 혁신도시인 나주에 입지하기로 결정되었다. 그런데 시 외곽이 아닌 농촌지역에 도심이 입지한 것이었다. 광주에서 남평을 지나 나주로 이동하다 보면 높은 빌딩들이 자리한 낯선 풍경들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빛의 중심인 빛가람 혁신도시이다. 빛가람 주변은 허허벌판이지만 한전을 중심으로 한 빛가람 내부는 편의시설과 관공서와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신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특히 혁신도시의 중심에 빛가람 전망대가 있어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가면 도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그러나 농촌지역에 건설되어 시 외곽에 위치한 다른 혁신도시들보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 때문에 가족동반 이주나 교육 만족도는 낮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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