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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98년 나온 맬서스의 인구론에서 인구가 식량보다 빠르게 증가한다면
    아들을 위한 인문학/경제 2023. 5. 2. 03:41

    우리나라의 경우 1954년부터 2022년까지 경제가 성장하지 못한 해는 1980년 제 2차 오일쇼크와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 그리고 2020년 코로나 19 대유행으로 단 3년밖에 없다. 극단적인 문제가 생겼을 때만 마이너스 경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 역사적으로 인구와 경제는 성장하지 않았다 중국의 경우 진시황의 중국을 통일한 이후부터 명 대 말기에 이르기까지 1800년 동안 인구 약 8천만명을 넘지 못했다.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성장을 이룩한 한나라 때는 인구가 6천만명까지 증가했다가 군벌들의 난립으로 삼국시대까지 4천만명까지 감소했다. 경제규모는 인구수에 맞추어 커졌다가 작아지기를 반복했다. 로마가 멸망한 476년부터 1400년까지 1천년 동안 유럽의 인구는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식량생산이 늘어 인구가 성장하면 곧 전쟁, 역병, 기근 등이 닥쳐 인구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로마 제국의 인구는 5천만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로마 제국 멸망 후 암흑기를 거친 8세기에는 유럽 인구가 3천만명 수준으로 감소했다. 한편 프랑크 왕국, 신성 로마 제국, 잉글랜드 왕국을 중심으로 경제적 안정을 되찾은 1100년대 유럽인구는 7천만명으로 증가했으나 이후 십자군 전쟁과 흑사병을 경험하며 다시 빠르게 감소했다

     

    경제규모와 인구수는 17세기에 시작된 근대 유럽의 경제적 팽창 그리고 영국을 중심으로 한 산업혁명으로 인해 급격히 성장한다. <인구론>이 출간된 178918세기 말 유럽은 경제적, 사회적으로 정체되었던 중세와 달리 빠른 발전을 경험하고 있었다. 농업기술의 발전을 통해 식량생산량이 크게 늘었고 산업혁명으로 새로운 동력원도 발견됐다. 게다가 제니 방적기 등의 발명으로 가내 수공업이 대규모 공장제 생산으로 대체됐다. 그 결과 유럽의 국부는 크게 증대됐으며 인구 역시 빠른 속도로 늘기 시작됐다. 이러한 눈부신 경제적 팽창을 목도한 당시 유럽인들 사이에는 낙관론이 팽배했다. 계몽주의자 루소와 윌리엄 고드윈은 미래 사회는 궁핍과 기아가 없는 유토피아적 사회로 나아갈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유럽 각국의 국부가 빠르게 증대되는 것에 반해 국민들 삶의 질은 계속해서 피폐해졌다. 반복된 전쟁과 경제력을 갖춘 부르주아 계층의 부상으로 인해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고 부자는 더 부자가 된 것이다.

     

    인클로저 운동과 같은 경작지 사유화를 통해 지주들은 생산량을 늘릴 수 있었고 이 덕분에 식량 생산이 증대됐으나 영세 농민들은 소작인으로 전락하거나 도시 빈민이 되었다. 인구론 출간 당시는 유럽은 산업혁명 초창기로 경제 발전인 시기인 동시에 미국의 독립혁명과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지 얼마 안 된 격변의 시기다. 인류는 장밋빛 낙관론이 팽배했지만 현실에서는 양극화가 심해지고 정치적 불안정과 사회 부조리가 넘쳐났다. 여기에 인구론은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성장에서 인해 인구가 증가하면 필연적으로 인구 증가를 억제하는 요인들이 등장한다고 주장했다. 즉 식량 생산이 산술급수적으로 증대되면 이에 맞춰 인구도 훨씬 더 증가하여 기하급수적으로 획기적으로 늘어난다는 것이다. 여기에 경제 성장이 얼마나 빠르든 언제나 인구 성장에 따라 잡힐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을 한다 결국 식량 생산이 감당할 수 있는 극단적 한계치까지 인구는 증가하다가 다시 감소하는 것이다.

     

    고드윈은 부가 증대됨에 따라 사람들이 더 빨리 지성을 갖추고 합리적으로 생각하며 개인 삶의 질에 신경 쓸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맬서스는 미래상이란 역사 속에서 경험으로 실현된 적이 없는 주장이며 한 걸음 더 나아가 고드윈이 말하는 합리적이고 계산적인 인간상은 비현실적인 이상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인류는 본성적으로 욕구가 이성에 앞서기 때문에 갑자기 합리적이고 지혜로워질 수 없다는 것이다. 정치적 물질적 평등보다는 국민 대부분은 빈곤한 상태로 전락할 것이라고 하였다. 한편 맬서스는 국가의 부는 공업제품을 제외한 식량생산만을 가지고 측정돼야 하며 국가는 빈곤층을 구제할 수 있도록 식량 증산을 최우선 정책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더해 빈곤층을 위한 구제책을 철폐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구제책의 의도는 좋지만 식량 증산 없이 보조금만 지급한다면 식량 가격만 상승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빈곤층은 사회 안전망이 없어야 스스로 위험을 이해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맬서스는 인간이 쾌락 추구에서만 동기를 찾는다는 고드윈의 주장에 동의하는 동시에 불쾌함을 없애기 위해서는 동기를 찾는다는 존 로크의 주장에도 동의했다. 성직자였던 맬서스는 현실의 암담함은 신이 인간을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한 시련이라고 생각했다

     

    인구론은 출간하자마자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사회에 팽배해 있던 낙관론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비판적인 미래를 주장한 것이다. 심지어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은 맬서스의 인구론에 반박하기 위해 쓰인 것으로 유명하다. 이 소설에서 맬서스의 화신 스크루지는 가난한 사람들을 구빈원에 넣어라 구빈원에 가느니 죽는게 낫다면 죽으라지 그럼 잉여인간들은 줄어들 테니하고 적혀있다 다소 인구론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왜곡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인구가 경제가 부양할 수 있는 최대 한계점까지만 성장한다는 것이지 종말론으로 인구의 폭발적 증가가 대기근과 대역병. 대멸종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19세기 인구론은 영국의 정책에 영향을 주어 영국 의회는 빈곤층을 위한 지원금을 크게 삭감했으며 아일랜드 대기근때 정부가 무대응 정책을 펼쳐 재앙적 결과가 나왔다 1845년 아일랜드 대기근으로 100만명이 죽고 100만명이 미국에 이민을 가게 되었다.

     

    맬서스의 이론은 후대에 이르러 다양한 측면에서 반박됐다. 맬서스 이후 인구는 40년에 한번꼴로 두배씩 증가하면서 70억명에 육박하는데 전 지구적인 대기근은 닥치지 않았으며 절대 빈곤층의 생활 수준도 향상되었다. 그 이유는 맬서스가 간과한 기술 혁신 때문이다. 화학비료의 개발과 농업의 기계화가 불러온 20세기 중반의 녹색 혁명 유전자 조작을 통한 품종 개량은 토지의 식량 생산 역량을 크게 증대시켜 주었다. 그러나 당대 정책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찰스 다윈의 적자생존의 개념을 발견하는데 영감을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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