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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통화가 된 달러로 세계경제 패권을 쥔 미국에 대해서아들을 위한 인문학/경제 2023. 7. 11. 03:11
< 미국 경제적 기반인 풍부한 자원 >
영국을 이어 세계경제의 패권을 거머쥔 국가는 미국이다. 미국의 강점은 드넓은 국토와 풍부한 자원에 있다. 미국의 세계에서 3번째로 넓은 국토로 농업에 적합한 데다가 금맥과 유전, 광산 등 갖가지 자원의 보고이기도 하다. 미국 국토는 국토 수립했을 당시 열세개 주를 합하여 면적은 오늘날의 1/4수준이었다. 당시 북미는 영국 외에도 프랑스, 스페인 등과 같은 열강이 식민지로 보유하고 있다 미국은 이런 지역을 닥치는 대로 사들였다. 미국이 독립한 지 20년이 지난 1803년에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를, 1819년에는 스페인으로부터 플로리다를 구입했다. 원주민들에게서도 오하이오, 인대애나, 일리노이 등을 강매하듯이 싸게 사들였다. 1845년에는 멕시코와 전쟁을 벌여 승리했다. 멕시코령이었던 텍사스주를 병합하고 캘리포니아와 뉴멕시코까지 손에 넣었다. 한편 서구국가는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대항해 시대에 아프리카 대륙, 아메리카 대륙을 목표로 진출했다. 그러나 미국은 과학기술과 대륙의 풍요로움을 모두 갖고 있었다
< 세계 제일의 채무국에서 채권국으로 >
미국의 자원 대국에서 경제 대국으로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제 1차 세계대전이었다.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에도 미국은 나름대로 열강에 속하는 국가였다. 1894년에는 영국을 제치고 세계 1위의 공업 생산국 자리를 꿰찬 바 있다. 다만 유럽국가들로부터는 여전히 신흥국가 취급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것은 18세기 후반의 일이다. 게다가 미국의 독립도 프랑스의 힘을 빌려 겨우 일군 것이었다. 미국은 유럽국가들의 투자를 끌어모아 나라를 개발했다. 이는 현재의 아시아, 아프리카 등과 같은 신흥국가들이 취한 것과 같은 방법이었다.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에 미국은 타국가들, 그중에서도 주로 영국은 30억달러나 되는 채무를 지고 있었다. 그러나 제 1차 세계대전 전후로 이 구도는 대대적으로 재편되었다 전쟁으로 인해 생산력이 떨어진 유럽국가들은 미국에 대량의 군수물자를 발주했다. 미국은 피해를 조금도 입지 않고 막대한 전쟁 특수를 누리게 된 것이다. 이로써 미국의 세계 1위 채무국에서 세계 1위 채권국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또 하나의 변수는 바로 석유였다. 제 1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전 세계에서는 에너지 혁명이 일어나 주 에너지원이 석탄에서 석유로 옮겨갔다. 당시 전쟁에서 전투기와 전차, 잠수함 같은 신무기가 투입되었는데 이 무기들은 석탄이 아닌 석유를 동력원으로 삼았기에 변화는 더 빠르게 진행되었다. 중동의 석유는 2차 세계대전 전후에 발견되었고 제 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미국이 세계 1위의 산유국이었다. 세계 최초의 대규모 유전은 1859년에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발견되었다. 그후 미국은 각지에서 대규모 유전을 발견, 개발해 세계 최대의 석유산출국이 되었다. 제 1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쪽의 석유 대부분은 미국이 공급했으며 연합국이 승리할 수 있었던 데는 미국의 석유 덕분이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미국은 제 2차 세계대전 전후에도 전 세계 석유 수출의 60%정도를 점하고 있었다. 동남아시아, 소련 등지에서도 석유 채굴이 이루어지기는 했으나 미국의 생산량을 따라잡기에는 멀었다. 즉 미국은 세계 1위 공업국이자 세계 1위의 채권국이자 세계 1위의 산유국이었다
< 미국의 금 비축 정책이 대공황을 가져오다 >
제 1차 세계대전으로 압도적인 경제력을 갖게 되었지만 영국은 전 세계 식민지를 보유하고 있으며 파운드는 여전히 세계의 기축통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때 미국은 세계경제의 패권을 쥐고자 하는 야심은 없었다. 그보다는 어떻게 하면 미국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가와 금을 많이 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만 전념했다. 제 1차 세계대전을 통해 미국 경제가 크게 성장했고 무역흑자가 불어났으며 대량의 금이 유입되었지만 축적된 금을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것과 같은 일은 없었다. 오히려 자국에 인플레이션 일어날 것을 경계하여 금 비축 정책을 실시했다 이 정책은 실은 대공황을 불러온 요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당시 대부분의 유럽국가들과 미국은 금본위제를 채택하고 있었다. 금본위제에서는 자국의 통화가 금과 연동되어 있으므로 자국에 금이 유입되면 그만큼 통화를 발행한다. 그러나 미국은 대량의 금이 흘러들어 오고 있음에도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을 우려하여 통화량을 증가시키지 않았다 그 결과 1923년 전세계 금의 40%를 미국이 보유했다.
미국에만 금이 쌓이고 무역흑자가 이어지는 세계경제란 건전하지 못한 것이다. 유럽 국가들의 경제가 회복하지 않으면 미국의 수출도 시들해지고 미국경제도 후퇴하여 결국은 1929년 뉴욕 주식시장은 갑자기 폭락했고 전 세계로 퍼지면서 대공황이왔다. 한편 미국은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과 프랑스에 대량의 무기들을 팔아넘겼는데 같은 연합국이면서도 무기대금을 한푼도 깎아주지 않았다. 영국과 프랑스는 미국에 지불한 대금 마련을 위해 독일에 엄청난 액수의 배상금을 매겼다. 이 거액의 배상금 때문에 독일에서는 단기간에 물가가 급속도로 상승하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했으며 독일 내 경제사회가 파탄 직전까지 내몰렸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 국민의 불만을 보듬고 헤아린다는 명목으로 탄생한 것이 바로 히틀러 정권이다.
< 달러가 기축통화로 자리잡다 >
미국이 진정한 의미에서 세계경제의 중심으로 도약한 때는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다. 제 2차 세계대전 때도 미국 본토는 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리고 제 1차 세계대전 때와 마찬가지로 연합군 쪽에 대량으로 군수물자를 팔아치워 전 세계 금의 70%를 보유하기에 이른다. 한편 대공황부터 제 2차 세계대전에 이르는 세계경제의 혼란은 미국 입장에서는 교훈이 되었다. 대공황 이후 영국과 프랑스가 블록경제를 시행했기 때문에 세계시장의 태반이 닫혀버려 미국의 농산물과 공업제품은 갈 곳을 잃었고 이는 미국경제를 위협했다 그리하여 미국은 전쟁이 끝난 후 세계경제의 패권을 장악하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무역을 전 세계로 확장하기 위한 움직임을 시작했다. 제 2차 세계대전 막바지였던 1944년 브레튼우즈에서 전후 국제경제의 새로운 틀이 형성되는 회의가 개최되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브레튼우즈협정으로 미국이 세계경제의 중심으로 자리잡은 것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이 협정에서 달러를 금과 태환시키고 세계의 기축통화로 삼을 것을 주장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서구국가들은 계속되는 금 유출 때문에 금태환을 정지시켰다. 이로 인해 금본위제의 규칙이 봉괴되었고 세계무역은 대혼란에 빠졌다. 미국은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전 세계 국가들을 상대로 달러와 금을 태환을 보증할 테니 향후 달러를 기축통화로 사용해 달라고 주장했다. 달러를 세계무역의 기축통화로 삼게 되면 전 세계국가들은 무역을 할 때 달러를 조달해야 하며 필연적으로 미국은 세계의 은행이라는 지위에 군림하게 된다. 그때까지 세계의 기축통화는 영국의 파운드였으나 전쟁 후 부흥을 위해서는 미국의 지원에 의존할 수 밖에 없어 미국의 주장에 관철되었다. 1945년 영국은 미국에 38억달러의 융자를 요청했다 전쟁으로 인해 식량과 원자재 등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떄문이다. 미국은 그대가로 영국의 블록경제 해체를 요구했다. 프랑스도 미국에 10억달러를 요청하며 블록경제를 해제했다 미국은 농업 및 공업 생산 면에서 전 세계를 압도했던 미국은 자유로운 시장이 절실했다. 그래서 번영을 누리길 바랬으나 고작해야 20년 후에 미국은 일본과 서독 등의 수출공세에 견디다 못해 자유무역를 규제하게 되었다
< 전 세계에 달러를 뿌려댄 미국의 속셈 >
미국은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마자 서방국가들에 막대한 경제원조를 실시했다. 이 대외원조계획의 이름을 미 국무장관의 마샬의 이름을 따 마샬플랜이라고 하여 1948년부터 1951년까지 102억달러를 원조했다. 게댜가 그중 90억달러는 변제할 필요가 없는 증여였다. 이는 미국 연간 예산의 20%수준이었다. 이 돈의 용도는 엄격히 지정되어 대체로 미국의 농산물이나 공업제품을 구입하는 것이었다. 이는 미국의 속셈이 있었는데 제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었을 때 미국의 수출은 160억달러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에까지 이르러 있었다. 하지만 미국의 수입은 그 절반에 지나지 않았다. 160억달러의 절반이 무역흑자였다. 서방국가들이 대부분이 무역흑자를 발생시켰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 더 이상 달러도 금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미국으로부터 더 이상 물품을 수입할 수 없었다 만일 서방 국가들이 수입을 멈춘다면 미국 경제도 커다란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하다. 160억 달러어치의 수출이 불가능해진다면 대량의 실업자가 발생할 것이다. 그래서 서방국가들을 지원하여 미국의 수출을 지탱할 정도로 부흥시키겠다는 것이 마셜플랜의 숨은 진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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