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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의 작은 조랑말에서 온 비데의 발전사를 보면
    아들을 위한 인문학/일반상식 2023. 4. 12. 03:11

     

    1905년 이탈리아인들은 화장실에 비데를 설치했다. 비데는 18세기 초중반 프랑스의 조그마한 조랑말이라는 단어에서 따온 것인데 1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조랑말 위에 걸터앉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비데는 청결과 건강뿐 아니라 은밀한 부분 혹은 생식기를 둘러싼 윤리와 금기시 되었다 신체를 씻기 관리하고자 하는 욕망은 고대 로마의 공중 목욕탕이나 중세의 한증막 르네상스시대의 증기욕실로 이어졌다. 그렇지만 유럽 기독교 사회에서는 정조를 해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비데 사용을 권고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과의 접촉으로 질병에 옮을 가능성도 염려했다. 16-18세기 초 유럽인들은 물로 씻는 행위가 신체 기능을 손상시키는 건 아닐지 두려웠다. 비데는 방탕과 호사를 상징하는 가구로써 상류 계층의 상징처럼 자리잡았다 당시 비데는 인체구조에 맞춰 바이올린처럼 중앙으로 갈수록 줄어드는 모양새를 하고 있었고 더 안락한 사용감을 위해 가죽 등받이를 달기도 했다

     

    한편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포함한 수많은 국가에서는 비데에 대한 거부감도 만연했다. 이는 오랜 시간 비데를 감춘 채 사용하기 위해 온갖 애를 쓴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1783년 파리에는 비데를 은밀히 덧붙인 침실 협탁이 등장했고 몇 년 후 영국인 면도용 물건을 두는 탁자 안에 비데를 숨기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나폴레옹이 비데에 관심을 가지던 프랑스 제 1 제정시기(1804-1814)이후 비데는 점점 더 여성을 위한 물건이 되어갔다. 1834년에는 비데라는 제목의 가요가 나왔다. 노래의 가사는 시골에서 온 청년이 주인집 비데에 큰 거를 눈 해프닝을 놀리는 내용이었다. 도시에서는 비데를 쓰는 사람이 점점 늘어났지만 정숙이라는 덕목이 중요한 시대였기 때문에 대놓고 사용하는 이는 드물었다

     

    앵글로색슨 국가는 19세기까지 비데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비데를 매춘과 연결지었기 때문이다. 청교도 정신은 비데가 경박한 풍속이며 매음굴, 피임과 연관이 있다고 믿었다. 오늘날에도 영국, 독일, 미국 같은 개신교 국가에서는 비데 사용이 일반적이지 않다. 비데는 19세기 말부터 점차 현대성, 쾌적함, 위생을 상징하는 용품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는 제 3공화국(1870-1940)초기에 비데가 설치된 정숙한 여성용 파우더룸이 등장했다. 이탈리아 의사들은 여성이나 남성이나 신체의 비밀스러운 부위의 청결을 위해서는 비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파시즘 정권 시기의 이탈리아에서는 비데가 방에서 욕실로 이동했다. 2차 세계대전 후에는 이탈리아의 시골과 임대 아파트에도 비데가 들어왔다

     

    프랑스에서는 1955-1975년 사이 가장 낙후된 시골까지 수돗물이 공급되면서 비데 유입이 정점에 달했다. 비데는 욕조, 세면대와 함께 욕실에 설치되면서 이탈리아에서는 청결을 위해 비데와 변기를 가깝게 놓는 걸 선호했다 20세기 남부 유럽의 카톨릭 문화권은 비데를 사용했지만 그 외 다른 곳에서는 거의 쓰지 않았다. 가톨릭 전통을 믿는 이탈리아인에게는 비데는 신체 위생의 상징이자 그들의 문화의 필수품이 되었다 반면 미국과 같은 개신교 문화에서는 비데가 호화스러운 삶을 상징하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기괴한 것으로 여겨졌다 현대에 이르러 매일 샤워를 할 수 있어지면서 그 필요성이 줄어들긴 했지만 비데는 변기와 일체화되어 더욱 편리하게 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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