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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2년 새싹이 돋아나는 5월 1일로 정한 어린이날은 어떻게 변천해 왔나
    아들을 위한 인문학/일반상식 2023. 5. 5. 03:34

    어린이의 인격을 소중히 여기고 어린이의 행복을 도모하기 위해 제정한 기념일로 미래 사회의 주역인 어린이들이 맑고 바르며, 슬기롭게 씩씩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어린이 사랑 정신을 함양하고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자 제정한 기념일로 매년 55일로 법정공휴일로 정하고 51일부터 57일을 어린이 주간으로 한다

     

    어린이날 제정 당시에는 51일이었고 1927년에는 5월 첫째주 일요일을 어린이날로 하였다. 해방 이후에인 1946년에는 5월 첫 번째 일요일인 55일에 요일과 관계없이 양력 55일로 어린이날이 제정되며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어린이날 노래는 1948년 작곡되었다 -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 우리가 자라면 나라의 일꾼 / 손잡고 나가자 서로 정답게 /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어린이날 탄생 이전에는 어린이라는 낱말이 없었고 애기 애새끼, 어린 것, 아이들, 계집애 등으로 불렀으며 의무교육도 없었고 이들은 농사를 짓거나 도시의 공장에서 일했다. 19193.1운동을 계기로 어린이들에게 민족 정신을 일깨워 주고자 진주를 시작으로 각 지역에 소년회가 창설되기 시작했다. 일본의 도요대 아동 미술과에 입학한 방정환은 아이들이 사회적으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현실에 눈을 뜨고 1921년 김기전, 이정호 등과 함께 천도교소년회를 조직하여 본격적으로 소년운동을 펼쳤다. 그리고 아이들을 인격을 가진 한 사람의 독립된 사회 구성원으로 대해야 한다는 의미로 어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19224월 각 소년운동 단체, 신문사 등이 모여 논의한 결과 어린이날은 새싹이 돋아난다는 의미로 새싹이 돋아나는 51일을 어린이날(소년날)로 정하고 그 해에 천도교소년회에서 51일을 어린이날로 선포하였다. 1923316일 방정환을 비롯해 일본 유학생들이 소년운동 활성화를 돕고자 일본 도쿄에서 색동회를 발족하였고 3월말에 최초의 순수 아동잡지인 어린이를 창간하였다. 417일에는 색동회는 각 소년운동단체들을 조직하여 조선소년운동협회를 만들었다 192351일 색동회 창립과 동시에 색동회를 중심으로 방정환 외 8명이 어린이날을 공포하고 첫 어린이날 행사를 천도교당에서 크게 열었다.

     

    기념행사의 표어는 희망을 살리자, 내일을 살리자, 잘 살려면 어린이를 위하라였으며 어린이가 미래의 희망임을 강조하였다. 기념식 후 200명의 소년들이 경성 시내를 4구역으로 나누어 집집마다 어린이날 약속이라는 전단 12만장을 배포하였다. 어린이날이 처음 제정되었을 때 어린이 운동가들을 욕하지 말고 때리지 말고 무리지 말자 하는 구호를 외치며 아이들의 가장 간절한 희망사항 10가지를 담은 어른에게 드리는 선전문을 배포했는데 그속에는 이발이나 목욕을 때맞춰 해주세요, 잠자는 것과 운동하는 것을 충분히 하게 해주세요, 산보와 소풍을 가끔 시켜주세요 같은 것도 있었다.

     

    51일이 노동절과 겹치게 되어 1927년부터는 좀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도록 어린이날 행사를 5월 첫째 일요일에 열었다. 이때 동화와 동요 대회, 미술 전람회 등 어린이들이 직접 참가하거나 관람할 수 있는 행사들이 행사들이 많이 열렸다. 어린이날이 해가 갈수록 규모가 커지자 어린이 운동이나 어린이날 행사가 민족의식을 높일 것을 염려한 일제는 1934년에 어린이를 폐간시키고 1937년 소년단체 해산명령을 내려 어린이날 행사도 금지시켰다. 어린이날은 1939년부터 중단되었다. 광복 이후 1946년 어린이를 존중하는 마음을 살리기 위해 어린이가 다시 발행되기 시작했고 조선건국준비위원회에 의해 어린이날도 부활되었다. 해방이후 첫 기념식은 19465월 첫째주 일요일인 55일 오전 11시 휘문중학교 교정에서 어린이날 전국준비위원회와 서울시 공동 주최로 천도교소년회, 조선소년운동중앙협의회 등 18개 소년 단체에서 수천명이 모여 행사를 거행했다

     

    1953년에는 중앙청에서 프란체스카 도너 여사가 참석하였고 1954년에 이승만이 참석함으로써 국가적 행사가 되었다 이승만 정부시절에는 동대문운동장에서 대규모 매스게임을 하게해 아이들이 곤역을 치르게 하기도 했다 합동체조를 맞아 가며 이대통령과 고관들을 보게 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1957년에는 한국동화작가협회가 만든 어린이헌장을 바탕으로 한 대한민국 어린이 헌장을 정부에서 선포하였다. 1961년에 아동복지법에 55일을 어린이날로 윤보선 정권에 정했다 1967년에는 어린이날 가장 행렬이 처음 시작하였고 서울 중심가를 가두행진하였다. 1975년부터 법정공휴일이 되었다

     

    어린이는 보통 12세 초등학교 6학년까지이고 중학교부터는 청소년으로 어린이날 대상이 아니다. 1973년에 55일에 서울 광진구 능동에 서울어린이대공원이 개장했다. 한편 미국의 목사 찰스 레너드 박사가 어린이 복지를 위해 18576월 둘째 주 일요일을 장미의 날로 지정했는데 이 기념일의 이름이 꽃의 일요일을 거쳐 어린이날로 정착된 것이 시간대상 최초의 기록이다. 터키는 1920423일 기념일로 선포되었으나 법률로 공식 지정된 것은 1931년이었기에 한국도 1922년에 선포는 했으나 해방이후 법률로 정식 지정되었다. 일본의 어린이날도 한국과 똑같이 양력 55일이다 근대이전에는 음력 55일인 단오절이 남자어린이의 건강을 기원하는 날이었다. 메이지유신 이후에는 이게 양력 55일로 바뀌었고 1948년정식 공휴일로 공포되었다.

     

    아마도 방정환이 어린이날을 만든것도 일본 정책에 의해 황국식민 어린이를 육성하기 위한 일환으로 여겨진다. 물론 1946년에 휘문중학교에서 행한 기념일에는 일제에 대한 우리말과 주체성이 없음을 반성하여 본연의 조선민족임을 다시 일깨우는 행사로 전환되기는 했다. 1925년 제네바에서 있었던 이동 복지를 위한 세계 회의에서 제정된 국제 어린이날은 61일이다. 1954년 국제연합과 유네스코는 1120일을 세계 어린이날로 기념한다. 북한은 66일을 어린이날로 휴일은 아니다 소년단 창단일로 표현한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어린이날은 어른날, 개린이날, 낭린이날 등으로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다 요즘은 순전히 어린이를 위한 날이 아니라 어른도 쉬므로 어른날 또는 어린 자녀가 없고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많아 개린이날, 낭린이날이라고 한다. 이제는 펫이 어린이를 대신하는 세상이 왔구나. 그다음 로봇 펫이 오게되지 않을까 우려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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