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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어컨으로 대체한 부채의 발달은 어떻게 진행되었나
    아들을 위한 인문학/일반상식 2023. 2. 8. 03:31

    1827년 파리의 부채 제작업자 장피에르 뒤벨루아는 메종 뒤벨루아라는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를 세웠다. 이 회사는 곧 프랑스 부채 업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브랜드가 되었다.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원정 이후 뒤벨루아는 처음으로 광고를 이용해 부채를 유행시켰다. 메종 뒤벨루아는 내수시장에서 자리 잡은 다음 1850년에는 런던에 지사를 내고 전 세계로 상품을 수출했다. 로마제국 시절에는 성선이라고 하여 왕족이나 귀족을 호위하거나 교회의 예배 소품 등으로 쓰던 아주 커다란 부채가 사용되었다. 성선은 손잡이에 깃털, 송아지 가죽, 동물의 털, 천 등을 붙여서 만들었는데 고정된 것도 있고 들고 이동할 수 있는 것도 있었다. 부채는 로마제국 시대와 중세를 거쳐 14세기까지 주로 제례용으로 쓰였으며 종교와 세속권력의 표징이었다. 동아시아에서는 군대나 지휘관의 휘장처럼 특수한 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아랫사람들이 주인의 뒤를 따르며 벌레를 쫓아줄 때 쓰던 긴 부채도 있었고 주인이 몸의 일부처럼 들고 다니던 작은 개인이 처음 등장한 것은 15세기로 이후 동아시아에서 유입된 부채를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 유럽에서는 16세기부터 부채가 크게 유행하기 시작했다. 유럽은 처음에는 포르투갈을 통해, 나중에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통해 부채를 수입했다. 유럽 수공예 업자들은 동양에서 수입한 부채를 베껴 유럽인들의 구미에 맞게 개량해 판매했다. 한편 동양에서 들여온 온갖 값비싼 재료로 장식하는 게 유행하기 시작한 후에 부채는 곧 들고 다니는 보석이 되었다. 장신구처럼 자신을 드러내며 뽐내는 물건이 된 것이다. 이국적인 목재나 상아, 거북이 등껍질, 값비싼 광물, 보석으로 겉대를 만들었고 레이스, 자수, 비단, 깃털, 송아지 가죽, 종이 등으로 장식을 더했다.. 일본 상인들은 대나무처럼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선호했다. 겉대를 보호하기 위해 옻칠을 했고 최고급 종이로 선면을 만들었으며 금과 은으로 그림을 그려 부채를 돋보였다.

     

    19세기에는 무도회나 전시장에서 유명인사에게 사인을 받기 위한 용도로 부채를 만들기도 했다. 도시 부르주아들은 그 밖에도 다양한 용도로 부채를 사용했다. 저렴한 재료로 만든 부채를 대량생산하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1850-60년대 유럽에는 중국산 부채가 수입되어 유행하기 시작했고 1880년대부터는 일본 제품도 들어왔다. 그러다가 19세기 중반부터 영국과 프랑스가 기계를 사용해 부채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생산가가 감소했고 제작 기술은 날로 발전해갔다. 부채는 실용적, 사회적, 상징적 기능을 모두 갖고 있었지만 예술품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아시아에서는 유명화가들이 부채에 그림을 그렸다. 유럽은 19세기 후반에 일본에서 1500만개의 부채를 수입하기도 했다. 한편 1847년 선풍기와 에어컨의 선조 격인 기계식 부채가 발명되고부터는 손 부채가 일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서서히 줄어들었고 이제는 에어컨이 부채의 역할을 책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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