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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시아의 곡물주인 황주에 대해서 알아보면
    아들을 위한 인문학/술의 세계 2023. 3. 30. 03:14

     

    고대 중국의 술은 잡곡인 피를 원료로 한 것이었다. 은의 술은 종교와 깊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은대(기원전 1600-기원전 1064)유적에서 축제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훌륭한 청동기가 많이 출토되었는데 작 등의 술그릇이 높은 비율을 차지하였다. 이후 은을 무너뜨린 주(기원전 1046-기원전 770)는 왕실 일족을 지방으로 파견해 일대를 다스리도록 하는 봉건제를 실시했다. 지방관이 임지에 부임할 때 지배의 상징으로 주나라 왕이 하사한 것이 작이라는 술그릇이었다. 귀족을 뜻하는 후작이니 백작이니 하는 칭호는 신분을 나타내던 술그릇에 근거한다. 전국시대에 편집된 중국의 최고의 시집 시경은 은나라의 왕이 술독에 빠져 위의를 어지럽히고 밤낮으로 술만 마신다며 엄하게 비판했다. 술은 신의 음료로 여겨졌기 때문에 음주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것이다.

     

    전한시대(기원전 220-기원후 8)에 서방으로부터 보리가 전해졌고 그전까지 황하 유역에서 나는 주요 곡물은 조와 기장이었는데 이 중 술의 원료가 된 곡물은 기장이었다. 오늘날에는 조도 소주의 원료로 사용하지만 고대 중국에서는 기장을 술의 원료로 높게 평가했다. 그러나 기장은 당화하지 않으면 술로 만들 수 없다. 그래서 누룩이 필요했다. 중국과 조선에서는 누룩을 곡이라고 했는데 이는 원료인 곡물을 가루로 만든 후 물로 반죽하여 경단 모양으로 빚고 여기에 거미집 곰팡이를 1개월 정도 번식시킨 것이었다. 병국이라고도 불렀다. 주나라 술은 황토 대지에 구멍을 파고, 기장에 물을 섞어 발아시킨 후 누룩으로 발효한 일종의 탁주였다. 술은 왕의 권위의 원천인 하늘의 신께 제사 지내는 의식, 왕실과 각지를 지배하는 제후 사이의 결속을 다지는 의식에 필요했다.

     

    주나라에서는 천지의 운행과 사계절의 순환에 따라 천관, 지관, 춘관, 하관, 추관, 동관이라는 여섯 개의 관청을 두었는데 그 중심은 천관으로 모든 관청과 관리를 총괄했다. 천관은 주정이라는 장관이 관할했는데 술을 양조하고 단속하는 부서가 딸려 있었다. 궁정의식을 치르려면 많은 양의 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술의 양조는 10명의 환관과 330명의 여성으로 구성된 주인이 담당했다. 고대 중국도 메소포타미아와 마찬가지로 공적인 의식에 사용되는 막대한 양의 술 대부분을 여성의 손으로 양조하도록 하였다. 은나라의 왕이 신을 모시는 제사에서 사용한 술은 기장으로 만든 술에, 카레에도 넣는 황금색 울금을 끓인 물을 넣어 만든 향이 강한 약주였다.

     

    기원전 221년에 천하를 통일한 진의 시황제는 그로부터 2년 후에 산동지방의 명산 태산에 올라 하늘과 땅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봉선의 예를 집행하며 자신이 천하의 지배자가 되었음을 여러 신들에게 보고했다. 높이 1532m의 태산은 중국의 오악 중 하나로 동악이라고 불리는 신 그 자체로 여기는 산이다. 봉선은 황제가 천지에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는 행사였다. 시황제가 봉선을 집전할 때는 은나라 때 사용하던 황금색 술의 양조법은 이미 잊힌 후였다. 할 수 없이 시황제는 산동 지방의 기장으로 만든 술을 여과시켜 봉선에 사용했다고 한다 중국의 양조주는 여러 브랜드가 있는데 술 색깔이 전체적으로 노란색을 띤다는 특색이 있어 황주라고 총칭한다. 술 색깔의 농도에 따라 색이 짙은 술을 노주, 연한 색 술을 청주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북쪽의 전통적 원료인 기장, 남쪽 지방에서 산출되는 쌀로 만드는 황주는 오랜 세월에 걸쳐 중국 각지의 문화가 교류한 산물이며 중국을 대표하는 술이 되었다. 황주는 중국의 맥주라고도 한다

     

    여러 황주 가운데 손꼽히는 명주로 청나라의 미식가 원매가 칭송한 사오싱주를 들 수 있다. 중국의 술은 그 이름을 산지에서 따온 것이 많은데, 사오싱주는 저장성 항저우 동남쪽 약 70km에 위치한 운하마을 사오싱에서 양조된 술을 의미한다. 사오싱주는 춘추시대에 만들어지기 시작했는데 와신상담, 오월동주 등의 고사와도 관련이 있다 시간은 흘러 송이 금에 중국 북부를 빼앗기고 남송시대(1127-1279)를 열었다. 남송은 주세를 통해 재원을 확보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술 양조를 장려했다. 남송의 수도 항저우에서 막대한 양의 술이 소비되기 시작했다. 사오싱주의 제조는 우선 찹쌀을 큰 독에 넣고 물을 부은 후 찌는 것에서 시작한다. 여기에 여뀌와 멥쌀로 만든 주약과 병국을 첨가해 발효시키고 이를 여과시켜 가열, 살균한 다음 독을 연꽃잎과 기름종이로 덮는다. 그 위에 뚜껑 역할을 하는 접시를 올려 점토를 발라 굳힌 후 장기간 숙성시키면 완성된다. 먼 옛날 일본에도 황주 제조법이 전해졌는데 독 대신에 나무 술통에 저장하여 숙성시키는 방법을 택한 것이 차이점이다. 이술이 청주(일본술)이다. 일본주는 일본의 숲 문화가 만든 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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