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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와인의 신인 디오니소스의 슬픈 사랑이 있는 와인에 대해서 알아보면
    아들을 위한 인문학/술의 세계 2023. 3. 9. 03:09

    과실을 원료로 하는 술이 대표는 무엇보다도 서아시아에서 유럽에 이르기까지 널리 보급된 와인일 것이다. 와인은 현재 60개국 이상에서 만들어지고 있으며 연간 생산량은 3천만 kL이상에 달하고 있다. 와인 생산량은 맥주에 비교하면 1/5정도이지만 술 문화의 주역이다. 와인 소비량이 가장 많은 나라는 이탈리아와 프랑스로 세계 포도의 40%를 소비한다. 포도의 원산지는 카스피해 연안인데 새가 씨를 물어 지중해 연안 등 각지로 운반한 것으로 보고 있다. 포도 재배 기술은 페니키아인이 전해준 것으로 보고 있다. 포도로 만드는 과실주인 와인은 발효와 숙성 과정에서 풍기는 부케와 포도 자체로 인한 아로마 등으로 이루어진 복합적인 향기가 난다. 한 모금 넘기면 신맛, 단맛에 타닌 성분으로 인한 떫은 맛까지 어우러진 복잡한 맛의 조화를 느낄 수 있다. 한편 와인은 부패하기 쉬워 지엽적인 술로 산지에 밀착된 술이 되었다

     

    포도로 만드는 와인이 큰 인기를 끈 이유 중 하나는 선혈과도 같은 와인의 붉은 색에 있다. 고대 사람들은 피와 생명, 불사 등의 이미지를 떠올렸다는 것이다. 와인 양조법은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있는 코카서스 지방에서 시작되어 주변 지역으로 전파되었다 기원전 7400년전 이란 북부 자그로스 산맥에 자리한 하즈 등 유적에서 출토된 항아리 파편에서 와인의 잔재가 발견되었다. 이후 와인은 기원전 6000년전에서 기원전 4000년 사이에 메소포타미아와 고대 이집트로 전해졌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수메르인은 와인은 신의 피라고 생각해서 신이 자신의 피인 와인에 점토를 섞어 인간을 만들었다고 생기를 불었다는 것이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태양신 라가 사람의 피를 탐하는 천공신 하토르로부터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피 색깔과 똑같은 와인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땅의 신 게브와 하늘의 신 누트의 부적절한 관계로 낳은 자식이며 지상계를 지배하는 호르스 신의 아버지이기도 한 농경의 신 오시리스가 와인을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이집트의 나크트 분묘 벽화에는 포도 따기부터 와인 만들기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는데 이를 통해 4천년 전에 이미 와인 제작이 보급되었음을 알 수 있다. 황금 마스크로 유명한 투탕카멘 왕(기원전 1355년 전후)의 부장품 항아리에서도 와인이 검출되었다

     

    와인 제조 기술은 이집트를 거쳐 크레타섬과 페니키아의 비블로스 등을 경유하여 지중해 주변 지역으로 전파되었다. 그리스에서는 송진을 바른 큰 나무통에서 포도를 발효시키고 허브, 향신료, 진한 바닷물을 넣어 와인으로 만든 뒤 동물 가죽이나 암포리라는 저장용 항아리에 넣어 판매했다. 그리스인은 수확의 신 디오니소스를 와인의 신으로 부활의 힘을 지닌 디오니소스의 피인 와인을 마시면 인간이 건강해지고 포도가 와인으로 재생되는 소생의 힘을 얻어 풍작이 확실해진다고 믿었다. 한편 디오니소스는 실연에 빠진 아리아드네를 위로하며 보석을 가득 박은 황금 관을 예물로 주며 대망의 결혼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나 운명의 가혹함이라고 아리아드네는 병에 걸려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비탄에 빠진 디오니소스는 그녀에게 선물한 황금관을 하늘을 향해 던지며 자신의 비운을 저주했다고 한다. 그때 하늘로 던진 관이 밤하늘에 빛나는 왕관자리가 되었다고 한다. 와인의 신 디오니소스의 슬쁜 사랑 이야기다. 로마에서는 디오니소스를 박카스라고 부르며 풍요와 술의 신인 리베르와 동일시했다. 박카스는 디오니소스와는 달리 여성적인 미청년으로 그려진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와인을 인간을 이지적으로 만드는 음료라고 칭하며 술을 마시면서 나누는 대화의 교육적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플라톤은 18세 이전에는 절대 와인을 마셔서는 안 된다고 하며 서른 살까지는 적당히 마셔도 되지만 술주정을 하거나 과음을 해서는 안 된다 마흔이 되었다면 들뜬 기분으로 소란을 피워도 좋다. 와인이야말로 그들이 젊어지고 있는 인생의 무거운 짐을 가볍게 하고 괴로운 마음을 치유하며 젊음을 되찾아주어 절망적인 생각을 잊어버리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라며 술에 대한 깊은 식견을 보였다 그리고 지중해 세계는 먼저 동쪽의 에게해부터 시작하여 카르타고를 중심으로 서지중해가 개척되었고 중앙부에 위치한 이탈리아반도는 마지막까지 남겨졌다. 이로써 동방에서 전해진 와인은 초기 로마에서 귀중품이었고 고가여서 노예 한명을 살 정도였다 그 시절 와인은 걸쭉한 탁주였다. 로마에 와인을 전한 그리스인도 와인에 바닷물이나 물, 맥주, 봉밀주를 섞어 마셨다고 한다. 로마인도 그리스인에게 배워 와인을 희석해 마셨고 뜨거운 물을 섞기도 했고 때로는 보존을 위해 조개껍질이나 석고를 넣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납 용기에 넣어 데우기도 했다

     

    로마 제국이 지중해 세계를 재패하자 향락에 빠진 로마인은 와인을 연회석에 없어서는 안 될 음료로 여겼다. 카이사르가 갈리아 원정을 마치고 켈트인이 사용하는 맥주 제조용 나무 술통을 들고 돌아온 이후, 와인의 풍미가 훨씬 좋아졌다. 통기성이 있는 나무 술통에서는 바깥 공기와 알코올 사이에 미묘한 접촉이 있어 와인의 풍미가 한층 증가한다. 구약성서에 기록된 노아의 방주 이야기는 40일간의 대홍수를 견딘 노아가 배에서 내려 포도밭을 만들고 와인을 배불리 마신 후 잠이 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창세기에는 와인을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만드는 반면 사람의 덕을 가린다고 기술한다. 따라서 기독교에서 와인은 예수의 성스러운 피, 신의 나라를 상징하는 음료로 여긴다. 포도를 따서 압착한 후 발효시킨 와인으로 바꾸는 과정이 예스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이미지와 연결된다. 서기 800년에 로마교황으로부터 황제의 관을 부여받은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 대제는 토지를 교회와 수도원에 기증하여 와인 생산을 장려하며 서유럽에서 와인 문화의 토대를 구축한 인물이기도 하다. 유명한 부르고뉴 와인을 만드는 시트 수도원의 수도사들은 포도밭을 재배하는데 일생을 바친다 톤의 기원도 와인 한통으 무게에서 기원했다고 한다. 이는 속이 빈 와인통을 두드렸을 때 탕하는 소리가 났는데 이 소리에서 톤이 생겨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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