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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시대 매사냥꾼인 鷹師(응사)에 대해서 살펴보면
    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3. 1. 16. 03:30

    매사냥꾼은 팔뚝에 매를 얹고 산을 오르고 / 몰이꾼은 개를 몰고 숲을 누비네 / 꿩이 깍깍 울며 산모퉁이로 날아가니 / 매가 회오리바람처럼 잽싸게 날아오네 - 정약용 - 옛날에는 고기가 귀했다 소는 농사에 필요한 데다 법으로 금지해 먹을 수 없었다. 돼지와 닭을 먹기도 했지만 지금처럼 댈야 사육이 가능한 형편이 아니었다. 따라서 고기를 구하려면 사냥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멧돼지와 사슴을 찾기도 어렵고 잡기도 어렵다. 그나마 흔한 것이 꿩인데 역시 잡기가 쉽지 않다. 그대서 매를 길들여 꿩을 잡았다. 이렇게 매를 이용하여 사냥하는 매사냥꾼을 응사라고 한다. 매사냥은 중앙아시아에서 시작되어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고 한다. 고구려 벽화에 매사냥 그림이 있고 백제의 아신왕과 신라의 진평왕은 매사냥 매니아였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의 충렬왕은 응방도감을 설치하여 매사냥을 육성했다. 하지만 달아난 매를 찾는다며 민가에 난입했다

     

    태조와 태종도 매사냥을 즐겼다. 심지어 세종조차 가끔 매사냥에 나섰다. 왕실의 응방은 역시 매사냥에 탐닉했던 연산군이 왕위에서 쫓겨나고서야 비로소 없어졌다. 그렇지만 임금님 수라상에 올릴 꿩고기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매사냥꾼은 없어서는 안될 존재였다. 매사냥꾼들은 응사계라는 조합을 만들고 세금과 부역을 면제받은 대신 왕실에 꿩고기를 납품했다. 꿩을 길러서 바치기도 했다. 그러다가 꿩이 떨어지면 닭을 바쳤는데 그래서 꿩 대신 닭이다라는 격언이 생겼다. 숙종때 국가에 등록된 매사냥꾼이 1800명이었다. 민간에서 매사냥이 성행했다. 제사상이나 부모님 음식상에 고기를 올리기 위해서였다. 사냥을 할 수 있게 길들인 매는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었다. 고려시대 문인 이조년의 응골방 안평대군의 고본응골방 등은 우리나라 매사냥 문화의 수준을 보여준다. 매 사육과 훈련 방법을 설명한 책도 나왔다.

     

    우선 덫을 놓아 매를 잡는다. 그물에 산 닭을 넣어 매가 잘 다니는 곳에 놓아두면 제발로 그물에 들어가 잡힌다. 이렇게 잡은 매를 어두운 방에 두고 수십 일 동안 천천히 길들인다. 손에 든 먹이를 받아 먹게하고 부르며 오게 만든다. 매가 사람과 친숙해지면 슬슬 사냥을 나간다. 그렇지만 제약이 많다. 날이 덥거나 따뜻해도 안 되고 초목이 무성한 계절에도 안 된다. 봄에는 오전, 가을과 겨울에는 오후 대체로 초저녁이 좋다. 굶주리면 사냥을 못하고 배가 부르면 날아가 버리고 체중 관리에도 신경써야 한다. 병들면 약을 지어 먹이고 추우면 고기를 따뜻하게 데워 먹여야 한다. 정성껏 길러야 오래 쓰지 못하고 길어야 4년이고 짧게는 1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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