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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과학 수사대인 오작인에 대해 알아보면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2. 12. 19. 03:53
관원이 율관, 의관과 함께 한성부 서리, 하례, 오작인 등을 거르니고 시체를 안치해 둔 곳에 도착하여 먼저 진술을 받는다. 그다음에 검시를 실시한다. 날이 저물었을 경우 이튿날 아침까지 기다렸다가 검시한다 - 심리록 - 조선시대에 살인이 일어나면 고을 사또가 검시관을 맡았다. 검시는 변사체를 만지는 험한 일인데다 사체의 상흔을 판돈하는 법의학 지식이 필요한데 이것을 담당하는 전문가가 오작인이라고 했다. 오작인은 법의학서에 근거해 사인을 찾았다. 대표적인 법의학서는 무원록이었다. 무원록은 중국 원나라떄 책이지만 조선의 실정에 맞게 개정 증보를 거듭되었다. 세종때 신주 무원록 영정조때 증수 무원록으로 거듭나며 검시 지침서로 자리매김했다. 19세기에 이르면 검시와 문서작성 방법을 정리한 검고라는 책을 간행하기도 했다
검시는 최소 두 번에 걸쳐 진행되었다. 검시마다 다른 오작인이 진행해 객관성을 확보했다. 안장한 다음에도 새로운 증거가 나타나면 시체를 꺼내 검시를 진행했다. 이러한 검시는 매장한 시체를 파내어 조사한다는 뜻으로 굴검이라고 했다. 조선시대에 시신을 훼손하는 일, 칼을 대는 일은 금기였다. 해부를 할 수 없었던 까닭에 오작인은 변사체의 상태나 상흔을 꼼꼼히 관찰해 검시를 진행했다. 상처 부위의 색을 여섯가지로 구분해 살폈으며 다양한 약품과 도구를 이용했다. 검고에 따르면 오작인은 식초, 술지게미, 삽주 뿌리, 은비녀, 백지 등 십여 가지 법물을 다뤘다. 식초는 흉기에 뿌려 핏자국을 찾는데, 술지게미는 상처 부위를 닦아 상흔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데 썼다. 은비녀와 백지는 독살 여부를 판별하는데 썼다. 단목탕은 시신을 닦는데 삽주뿌리는 태워서 악취를 없애는 데 썼다
오작인의 검시는 사건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04년 경상도 문경에 살던 최상보와 정영천은 천민 정이문의 집에서 양반 안재찬의 아내 황씨가 목을 매 자잘했다고 관아에 신고했다. 문경 군수는 어작인 김일남과 함께 현장에 도착해 검시를 진행했다. 오작인 김일남이 진행한 검시에 따르면 은비녀를 입에 넣었을 때 색이 변하지 않았으며 시체 곳곳에 구타한 상흔이 뚜렷했다. 또 뒷목에 끈으로 조른 일자 흔적이 있었고 아래턱에 혈흔이 있었다. 검시 결과 자살이 아닌 교살로 보았다. 문경군수는 남편 안재찬을 추궁했고 김영년이 검시 결과를 토대로 집요하게 추궁하여 그는 결국 범죄를 실토했다
공익을 위해 일했으나 변사체를 만졌던 까닭에 오작인은 천시받았다. 또 근거없는 소문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조선 후기에 사람을 죽인 뒤 간담을 빼내어 치료약으로 파는 사건이 종종 일어나 조정에서 현상금을 걸기까지 했다. 오작인은 직무는 검시였지만 연고가 없는 시신을 처리하는 일도 담당했다. 동사나 병사로 생긴 무연고 시신은 오작인이 맡아 처리했다. 훼손된 시체가 발견되면 오작인이 잘라 팔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시체의 혈흔을 만지고 잘린 팔다리를 수습하는 직업 특성 때문이었다. 천대 속에서도 오작인은 맡은 책임을 다했고 덕분에 말할 수 없는 시체를 억울함을 드러냈다. 오작인은 조선의 과학 수사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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