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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6) 잡념 없이 온 힘을 다해 어짊을 추구하니 또 무엇을 바라겠는가아들을 위한 인문학/논어 2022. 9. 8. 05:12
我未見力不足者
- 나는 어짊을 좋아하는 사람과 어질지 못함을 싫어하는 삶을 보지 못했다. 어짊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보다 더할 수 없으나 어질지 못함을 싫어하는 사람도 어짊을 행함에 어짊지 못함이 그 몸에 가해지지 못하게 한다. 하루라도 어짊에 힘을 쓸 수 있는가 ? 나는 힘이 부족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 아마도 있었겠지만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나는 어짊을 좋아하는 사람과 어질지 못함을 싫어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이다. 어짊을 좋아하는 사람은 어진 사람을 본받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고 어질지 못함을 싫어하는 사람은 어질지 않은 사람을 보며 자신을 반성하는 사람이다. 여기에서 어짊을 좋아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말한 이유는 여러 제자가 있었고 특히 안회와 자공과 같은 공자의 제자 중에 어짊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렇지 못한 제자에 대한 질책으로 보인다 다른 해석으로는 진심으로 어짊을 좋아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는 의미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는 어짊을 좋아하고 어진 덕성을 길러 뛰어난 인품을 갖추고 싶다고 말하지만 사실 마음으로 그렇게 진심으로 하기란 어렵다고 본다
어짊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보다 더할 수 없으나라는 구절은 어짊을 좋아하는 것으로 이미 충분하다는 의미다. 한 사람이 어짊을 좋아해 재물, 명성, 권력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이미 가장 좋은 상태라는 것이다. 대부분 명성과 재물, 권력을 추구한다. 이런 세속적인 가치들은 우리를 현실 세계에 갇히게 하고 다른 가치들은 볼 수 없게 만든다. 또한 어질지 못함을 싫어하는 사람도 어짊을 행함에 어질지 못함이 그 몸에 가해지지 못하게 한다라는 구절은 진정으로 어질지 못함을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해 주는데 현실은 달라 살짝 어질지 못한 일을 해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마음이 흔들리게 되고 결국 다른 사람도 하는 일이니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심으로 어짊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어질지 못한 어떠한 행동도 일어나지 않게 하며 단호하게 배척한다는 의미이다
하루라도 어짊에 힘을 쓸 수 있는가라는 구절은 온종일 진정으로 어짊을 추구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이 점은 불교의 정토종의 관점과 약간 닮아있다. 정토종의 법문은 마음을 하나로 집중해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는 것이다. 보기에는 쉬워 보이지만 실제로 해 보면 마음을 하나로 집중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이란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나는 힘이 부족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 아마도 있었겠지만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라는 것은 어짊을 좋아하기란 어렵지만 하루 정도는 시도해 볼 수 있는 만큼 힘이 부족하다고 핑계대지 말라는 것이다. 힘이 부족하다는 것은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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