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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세 금기시 된 술, 똥, 목욕이 근대문화 코드로 찾아온 과정은 어떠한가
    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사 2022. 9. 5. 04:21

    대변은 보는 것은 결코 죄악이 아닙니다. 이는 근대 서양 의사의 처방이다. 중세 기독교는 엄격한 금욕사회로 모든 쾌락을 금기시했다 그 배경은 로마인들의 쾌락과 탐욕이 결국 나라를 망쳤으니 중세 유럽의 번영을 위해 쾌락을 억눌러야 한다고 보고 특히 배설, 목욕, 술이 그 대상이었다. 한편 배설에는 사랑에 의한 배설뿐 아니라 땀, 오줌, 똥 등 모든 배설이 포함된다. 당연히 오줌과 똥을 마구 싸는 것을 금기시 했다. 오수로 인한 도시환경이 오염되고 전염병이 창궐했던 시대상을 보면 위생적으로는 필요한 조치라고 하지만 문제는 맹목적 추종이었다.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에도 화장실이 없었다고 하는 점에서 그 이면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배설을 금기시하여 한달간 참다가 복통이 난 사람도 있어 이때는 관장이 중요한 치료로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의사가 처방전에 대변을 보는 것은 죄악이 아닙니다라고 써주기도 했다고 한다

     

    목욕도 마찬가지로 로마의 공중목욕탕은 혼탕이어서 남녀가 난잡한 성행위를 벌이는 장소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중세 남자들의 대화를 기록한 것을 보면 1년 가까이 목욕하지 않은 것을 신앙의 증거로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이 종종 확인된다. 한편 술은 축제와 연결되는데 그리스나 로마의 축제에서 술은 빠질 수 없는 음료이다. 민초들은 축제에서 평소 눈여겨 본 이성에 구애하고 이웃이나 동료에게 그동안 속에 담아 두었던 말을 전하려고 술을 마셨다. 때로는 난투극으로 벌어지면서 난장판이 된다. 심지어 술로 인해 감정적으로 격해져 지도자의 선동으로 탐관오리나 부도덕한 사제를 공격하여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술을 금기시 하였다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면서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금기들은 도전받기 시작했다. 근대인들은 건강과 기쁨과 단결을 위해 금기를 깨기 시작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온천이 발달이다. 온천은 중세 시대에는 유행했는데 다만 성천이라고 하여 순례지의 의미가 컸다. 즉 유명한 성인의 기적이 행해진 영험한 장소로서 신앙을 돈독히 하거나 성령의 힘으로 병을 치료하는 순례지로 각광을 받았다. 그래서 목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물을 마시거나 그 앞에서 기도를 드렸다. 그러다가 근대로 넘어오면서 성천은 치료 개념으로 몸을 좋게 하는 곳으로 인식되었다. 수치료법이 유포되면서 귀족과 부르조아들이 온천으로 몰려들었다. 그래서 16세기에는 매연, 악취가 가득하고 부패하고 가톨릭적이고 반역적인 도시보다 도덕적이고 건강하며 애국적이고 프로테스탄트적인 시골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 유행하기 시작하여 18세기에는 보편화되었다

     

    영국에서는 왕과 귀족 상인들이 여름 더위를 피해 온천으로 몰려들었다. 온천에서 목욕을 하고 잔디 볼링과 승마 등 스포츠를 즐기고 스파에서 수 치료를 받았으며 공연장에서 음악을 듣거나 연극을 관람했다. 물론 매춘과 도박도 벌어졌고 피서지에서도 불륜도 있었다. 온천장에서 불임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설에 대한 비아냥은 이 시대 독설가들의 단골 메뉴였다. 이처럼 근대로 접어들면서 목욕은 금기에서 인기 있는 레저로 발전하였다. 배설이 과학적으로 장려되고, 목욕이 레저로 정착하고 술이 선술집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 문화로 정착하는 등 중세 금기는 근대 들어 새로운 문화 코드로 변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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