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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민주주의를 탱크로 짓밟은 천안문 사건의 원인은 무엇인가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사 2022. 8. 29. 06:27
70년대 마오쩌둥이 병약해지면서 이른바 4인방이 권력을 장악했다. 이들은 전통적인 공산당의 지배 방식을 고집했다. 그런데 1976년 마오가 죽고 수상에 오른 화궈펑이 예상을 깨고 이들 4인방을 숙청하였다. 과격한 급진 정책으로 지지를 받지 못하던 4인방은 너무 쉽게 권력을 잃고 자살하거나 감옥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화궈펑의 뒤를 이어 권력을 잡고 중국을 개혁개방으로 이끌어 오늘날의 중국을 만든 이는 덩샤오핑이다. 1904년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프랑스와 소련으로 유학을 가서 공산주의 사상을 배운 덩샤오핑은 홍군으로서 베트남 접경지대의 7군에서 활약하면서 에드드거 스노에게 프랑스 전투기를 격추시켰다고 자랑하기도 하였다
장시 소비에트와 대장정 당시 마오의 가장 열렬한 지지자 중 한사람이었던 덩샤오핑은 항일전쟁과 마지막 국공내전에서 주요 부대의 정치위원으로 활동했다. 1954년에는 부수상에 올라 마오쩌둥, 저우언라이에 이어 서열 3,4위의 지도자가 되었다. 50년대 말 대약진운동 실패 이후엔은 저우언라이와 함께 이를 수습하는 실용주의 정책의 핵심 인물로 활약했다. 하지만 덩샤오핑은 1966년부터 마오가 주도한 문화대혁명의 희생자가 되었다. 그는 공직에서 쫓겨났고 그의 아들은 홍위병에 쫓기다 불구가 되었다. 문화대혁명이 수습되고 1973년에 복귀했으나 곧 4인방에 의해 해임당했다. 그는 여러 차례 숙청당했으나 그때마다 곧 복귀하여 오뚜기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실용주의의 대표주자이자 생명력 그 자체였다
마우쩌둥 사후 화궈펑과의 권력투쟁 끝에 1981년 권력을 잡은 덩샤오핑은 자오쯔양과 후야오방 등을 등용하여 4대 현대화 노선(농업,공업,과학,기술 현대화)과 4대 기본 노선(사회주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 사상)을 추진하였다. 이는 곧 중국식 사회주의의 현대화를 의미했다. 덩샤오핑은 이를 위해 시장경제 도입과 대외 개방을 통하여 외국자본을 유치했다. 대표적인 사업이 경제특구 건설이다. 특히 광저우 근처의 선전 경제특구는 성공모델이 되었다. 작은 항구도시에 지나지 않던 선전은 홍콩 및 동남아와 본토를 연결하는 전자, 화학 등 제조업 중심도시이자 주변 농촌과의 연계로 각종 농업이 발전한 인구 1천만이 넘는 대도시로 성장하였다.
민주주의가 결여된 경제성장은 곧 사회적 갈등을 야기했다. 특히 당 독재와 당 간부들의 부의 독점 및 부패가 지식인들과 민중들의 분노를 샀다. 이 과정에서 비판적 지식인을 옹호해 왔던 후야오방이 죽자, 그의 장례식날인 1898년 4월 이후 시위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수많은 학생과 지식인들의 베이징의 천안문 앞에 모여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5월이 되면서 시위 참가자가 수십만으로 늘어나자 지방 대도시로 확산되었다. 마침내 중국 정부는 5월 20일 계엄을 선포하고 군대로 시위대를 포위했다. 마침내 6월 4일 아침 군대가 탱크를 앞세우고 시위대를 무력 진압했다. 중국 정부는 군인 포함 241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지만 서방 언론은 최소 5백명 이상이라고 하였다
천안문 사태오 덩샤오핑과 자오쯔양이 물러나고 장쩌민 등 강경파가 집권하면서 중국의 개혁개방은 주춤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세계 인구의 20퍼센트를 차지하는 중국의 개혁개방은 세계적 요구였다. 1992년 여전히 중국 정계의 최고 실권자로 군림하던 덩샤오핑은 경제 개방의 심장인 광둥 지역을 도는 남순강화를 통해 개혁개방을 역설했고 정치적 긴장 속에서도 다시금 중국의 경제성장은 가속화되었다. 1997년 작은 거인 덩샤오핑이 죽었다. 많은 이들이 덩샤오핑 사후 중국의 미래를 걱정하였지만 중국의 자본주의경제는 브레이크가 파열된 자동차처럼 계속 질주할 뿐이었다. 중국은 사회주의의 강국을 넘어 자본주의의 초강대국으로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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