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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無爲自然의 노자와 仁禮忠의 공자의 사상이 다른 근원적 이유와 의미는
    아들을 위한 인문학/철학 2022. 8. 6. 03:17

    일단 두사람은 다른 환경에서 살았다. 공자 사상의 출발점은 인간이지만 노자 사상의 출발점은 객관적인 자연이다. 공자의 조상은 은나라 유민이었고 그는 주로 남의 집 제사를 지내주는 일을 하면서 먹고살던 집안이다. 노자는 주나라 왕실도서관 관장이었고 사관 출신이다. 당시 사관의 직무는 왕의 정책이나 행동에 대해 자문을 해주는 것인데, 그런 일을 수행하려면 역사에 밝아야 했다. 과거의 사례를 통해 미래를 예측해주는 일을 해야 했다. 그러니 그 시대는 많은 것을 자연에 묻던 때였다. 자연이 교과서로서 노자는 역사와 자연현상을 자세히 관찰하는 사람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공자는 인간이라는 주관적인 정감에 매우 친숙하지만 노자는 자연의 객관적인 사실에 매우 친숙했을 것이다

     

    살던 지역도 달라 공자는 비교적 북방으로 분류되는 노나라 출신이고 노자는 남방의 초나라 출신이다. 초나라는 내내 도가적인 경향이 매우 강했던 지역이다. 문화적 연원을 따지면 공자는 은나라 문명을 계승하고 노자는 그보다 앞선 하나라 문명을 계승하는 양상을 보인다. 하나라는 물과 달을 숭상하는 모계 중심적 사회였다. 그러다가 은나라때부터 왕권, 지배권을 강조하면서 태양을 숭배하는 남성 중심적 사회로 변모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라 때는 문자도 결승문자(새끼줄 문자)같은 최소한의 것만 썼는데 은나라 때부터 갑골문이 쓰이면서 문자적 계승이 이루어졌다. 하나라때 물빛을 검은 색으로 보고 기준으로 삼았으나 은나라 때는 태양을 중심으로 삼았기 때문에 흰색을 기준색으로 정했다. 사상의 특징으로 보면 노자의 사상이 공자의 사상보다 더 먼저 있었던 문화를 계승한 것이다 나이도 공자보다 노자가 더 많다

     

    노자와 공자는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았냐에 대해서 공자는 인간을 미완성의 존재로 본다. 그래서 이상적인 기준을 세우고 학습을 통해서 쉼 없이 부족함을 채워가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만 노자는 인간이 갓 태어난 아기 즉 적자일 때 완전한 상태라고 말한다. 성철 스님도 성불한다는 것은 부처가 된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원래 부처였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이것의 차이는 공자는 항상 보편적인 이념을 가장 높은 단계의 선으로 정해놓고 항상 그것을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하게 되니 행복할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자기가 완전함을 이미 품고 있다고 하면 자기 자신을 따뜻한 시선으로 대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의 판단 기준이 외부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되는 것이다. 기준이 외부에 있으면 외부의 것과 경쟁하지만 기준이 자기 자신이면 어제의 자신과 경쟁한다 그래서 도가에서는 본성으로 회복하라고 주문한다

     

    중국 통치 시스템을 짚어 보면 중국 춘추전국 시기 통치 시스템은 지방분권적 시스템에서 시작해서 중앙집권적 시스템으로 전개된다. 그러니까 지방분권형 통치 시스템이 먼저 있었던 것이다. 봉건제가 바로 지방 분권형이다. 공자의 사상은 지방분권형보다는 중앙집권적 시스템에 맞는 체계이다. 중앙집권을 최초로 구현한 것이 진시황의 군현제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진시황 때까지는 노자 사상이 퇴색해가는 과정이자 공자사상이 성숙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공자의 사상은 진시황이 죽고 나서 65년 후 한나라의 무제때 비로소 통치 이데올로기로 채택된다. 따라서 중국은 오랫동안 통일과 분열을 반복하지만 통일될 때는 공자식 사상이 분열될 때는 노자식 사상이 당대의 주류사상이 되었다. 이를테면 마오쩌둥, 덩샤오핑 중 마오쩌둥은 공자에 가깝고 덩샤오핑은 노자에 가까웠다. 노자는 실용주의적 속성이 보이고 공자는 이념주의적이고 가치론적 특성을 보인다. 그러니까 노자는 지방분권적이고 실용주의적으로 통치 시스템을 강화하려 한 것이지 결코 현실 도피적이고 소극적인 철학자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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