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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년 연산군일기에서 나오는 거울 가는 장인으로 마경장이 있었는데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2. 6. 29. 04:25
13일에 마경장 열다섯 명을 대령토록 했는데 하지 않았다. 공조와 상의원의 해당 관원을 국문하라 - 연산군일기 10년(1504) - 1504년 연산군은 마경장을 대령하지 않았다며 불호령을 내렸다. 마경장이 뭐 하는 사람이기에 연산군은 조바심 내며 열다섯 명씩이나 찾았던 것일까 ? 조선후기까지 거울은 지금 흔히 보는 유리거울이 아니라 청동이나 백동으로 만든 금속 거울이었다. 금속 거울은 땀을 비롯한 습기에 취약했고 쉽게 녹슬었다. 연암 박지원은 죽은 누이를 기리며 쓴 백자증정부인박씨묘지명에서 누이가 시집가던 날 빗을 떨구어 무릎을 베고 있던 자기 이마를 맞히자 성이 나 분에 다 먹을 뒤섞고 침을 발라 거울을 더럽혔다고 회고한다. 꼬마 박지원이 침을 묻힌 거울은 청동이나 백동 거울이었을 법하다
금속 특성상 청동이나 백동 거울은 수시로 녹을 벗기고 갈고 닦아 맑고 선명한 본연의 빛을 되살리는 작업이 필요했다. 거울 본연의 빛을 되살리는 일을 담당했던 직업이 거울 가는 장인 마경장이다 낡고 녹슨 거울은 마경장 손끝에서 몇 번이고 새것으로 거듭났다. 1504년 연산군은 거울 가는 장인인 마경장을 열다섯명이나 찾았다. 마경장 열다섯명이 달려들 만큼 많은 거울을 수리해야 했던 것이다. 연산군 주위에 기녀가 화장을 하는데 필요한 것으로 기녀의 화장이 퍽 못마땅했고 흥이 깨진 연산군이 불호령을 내렸을 것이다.
경모궁악기조성청의궤에 마경장에게 제공한 도구가 나온다. 강려석, 중려석, 연일려석, 법유다. 강려석은 거친 숫돌, 중려석은 중간 거칠기 숫돌, 연일려석은 포항 연일에서 올라온 고운 숫돌, 법유는 들기름이다. 제공된 도구가 단출한 편이라 공정도 단순해 보인다. 세가지 숫돌을 적절히 써 거울 표면을 반들반들 다듬어 상을 선명하게 반사해야 한다. 청동, 백동 등 재질에 맞춰 연마 강도도 조절해야 한다. 들기름 적당량을 발라야 거울에 빛을 낼 수 있다. 전문성과 숙련도 모두를 요구한다. 이러한 전문성이 거울을 만드는 경장에서 마경장이 갈라져 나온 이유다
마경장 한명이 절실했던 사람도 있었는데 자화상으로 유명한 공재 윤두서였다. 자화상을 그리기 위해서는 얼굴을 비춰 볼 거울이 필요했다. 천재화가의 눈빛을 모자람 없이 받으려면 거울은 얼마나 깨끗해야 할까 ? 윤두서의 백동 거울을 갈고 닦았던 마경장은 혼신을 다했을 터다. 마경장 덕분인지 윤두서는 자화상을 그리며 잡티 하나, 구렛나루 한올, 눈 주위 안경을 썼던 자국까지 놓치지 않았다. 마경장이 영업하는 모습이 어떠했는지는 불분명하다. 아마도 행상으로 이집 저집 찾아가 거울을 갈아 줬을 것이다. 고전소설 최고운전에서 최치원은 승상의 외동딸 나 소저를 만나려고 거울을 수선하는 행상 행세를 한다. 나 소저는 유모를 통해 아끼던 거울을 맡기지만 최치원은 일부러 깨 버린다. 최치원은 거울값을 빌미로 승상집에 머물게 된다.
하나의 직업에 매진해 경지에 이르면 일반인은 알 수 없는 묘리를 터득하기 마련이다. 조수삼이 기록한 추재집 속 절름발이 마경장이 그러했다. 절름발이 마경장은 말했다. 떠오르는 달을 보면 거울 가는 법을 깨달게 된다고 하였다. 그는 매일 밤 마음속으로 거울을 갈았을 것이다. 홍대용의 을병연행록과 서유문의 무오연행록에 등장하는 유리거울은 신기한 물품이었다. 마경장은 유리 거울이 보급되면서 차츰 설 자리를 잃었다. 1759년 영조와 정순 왕후의 혼례절차를 기록한 가례도감의궤 사도세자의 사당인 경모당에서 쓸 악기를 만들 때 작성한 경모궁악기조성의궤에 청동거울이 나온다. 유리거울이 수입되자 청동이나 백동거울은 제례용으로 간혹 쓰였다 마경장은 대부분은 이즈음 마광장이 되었다. 마광장은 온갖 기물을 닦고 갈아 빛을 내는 광택 전문가였다. 무기, 갑옷 장식, 금관악기, 의례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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