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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최종 병기로 활 만드는 사람을 궁인과 시인이라고 했는데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2. 7. 14. 05:50
군기시의 궁인과 시인을 중국 사신의 청지기로 삼았는데 중국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활과 화살을 귀중하게 여기니 그들과 함께 지내면 틀림없이 활과 화살을 매매하는 자가 있을까 염려됩니다 - 성종실록 11년(1480) -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동이족이라 불렀다. 동이족의 이자를 대궁으로 파자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역사에는 유난히 명궁이 많다. 고구려 시조 주몽의 이름은 활을 잘 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양만춘은 안시성에서 당나라 태종의 한쪽 눈을 화살로 맞혔다. 날아가는 왼쪽 날개를 맞혔다는 고려의 개국 공신 신숭겸도 유명하고 조선 태조 이성계는 신궁으로 불리는 활 솜씨로 우리 땅을 유린하던 오랑캐들을 섬멸했다
이들이 사용한 활을 만든 이가 궁인이다. 활 만드는 궁인과 화살 만드는 시인은 다른 장인보다 높이 우대받아 장이 아니라 인으로 불렀다 세종 때 내궁방을 설치하고 마흔 명의 궁인을 두었으며 이밖에 서울과 지방에서 모두 500명이 넘는 궁인이 활을 만들었다. 궁인은 대를 이어 장인으로 자부하며 마을을 이루어 살기도 했다. 활에 쓸 나무를 구하러 갈 때는 말이 제공되었고 지방관의 접대를 받았다. 주재료인 물소 뿔을 구하기 위해 사신을 따라 중국에 다녀오기도 했다. 궁방에서 20년 이상 근속하고 활을 1000개 이상 만들면 관직을 내렸다. 군영에서 난동을 부린 궁인이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을 정도로 대우가 남달랐다
유형원은 반계수록에서 궁인의 연봉을 서른 섬으로 올리고 우수수한 자에게는 9품 관원과 같은 녹봉을 주자고 주장했다. 사농공상의 차별이 현격했던 당시에 이처럼 파격적인 대우를 받은 이유는 활이 전략 무기였기 때문이다. 활과 화살의 제작기술이 유출되지 않도록 중국 사신과 접촉을 막기도 했다. 활과 화살은 분업으로 만들어졌다. 화살촉을 만드는 전촉장, 완성한 화살촉을 날카롭게 가는 연장, 접착제를 만드는 아교장, 화살통을 만든는 시통장 등의 장인이 있었다. 활은 산뽕나무나 산비마자, 박달나무로 만든 목궁, 물소뿔로 만든 각궁, 사슴뿔로 만든 녹각궁, 쇠나 놋쇠로 만든 철궁 등이 있었다. 훈련도감에 8종의 활 1만여장과 장전., 편전, 체전 등 10종의 화살이 보관되어 있었다는 기록이 만기요람에 실려 있다
이중 각궁은 조선을 대표하는 활이다. 물소뿔, 쇠심줄, 부레풀, 소가죽, 뽕나무, 참나무를 재료로 만든다. 뿔을 켜고 나무와 뿔을 부레풀로 붙이는 복잡한 공정을 거쳐 각궁 하나를 만드는데 넉달이 걸렸다고 한다. 활에는 제작자의 이름을 적어 두어 부러지거나 성능에 문제가 있으면 처벌했다. 각궁의 주재료인 물소뿔은 전량 수입에 의존했다. 따라서 물소뿔의 안정적인 공급은 국가적 관심사였다. 명나라에서는 물소뿔을 전략 물자로 취급하고 수출량을 사행 1회당 쉰개 정도로 제한했다. 세조는 물소뿔이 나라의 보물이라며 활 이외에 공예품으로 쓰지 못하게 했고 세종은 물소를 국내에 들여와 사육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한우의 뿔을 이어 붙여 향각궁을 개발했지만 잘 부러지는데다 위력도 각궁에 미치지 못했다
조선의 비밀 병기로 취급된 편전은 아기살로도 불리는데 사정거리가 일반 활의 세배에 달하는 350미터다. 화살이 작고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아 피하거나 막기 힘든 무서운 무기였다. 편전을 쏘는데 필요한 도구인 통아의 제작과 사용법도 극비로 취급되었다. 조선의 기술자는 천대받았지만 궁인과 시인만은 예외였다. 대우가 좋으면 인재가 모이고 기술이 발전하는 법, 조선의 활이 최고의 평가를 받았던 이유는 이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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