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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백자의 어두운 그림자인 사기장은 어떠한 일을 하는가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2. 7. 20. 06:10
우리나라 도자기는 질박하고 견고하지만 중국과 일본에 비하면 수준이 몹시 떨어진다. 중국 도자기는 또 일본 도자기만큼 정교하지 못하다. 일본 도자기는 종이처럼 얇고 백옥처럼 희며 윤기가 흐르는 듯하다 - 이규경 <오주경문 장전사고 > 사기장은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이다. 흔히 도공이라고 하지만 일본식 표현이다. 조선은 사기장이라고 하였다 <경국대전>에 사기장의 자손은 다른 부역을 시키지 말고 대대로 가업을 전수한다라고 했다. 국가가 관리하는 수십 종류의 장인 가운데 법으로 세습을 강제한 경우는 사기장이 유일하다. 사기장은 고도의 기술이므로 대대로 익혀야 기술이 완성된다고 보았다
또 하나 이유는 일이 너무 고되어 도망가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나날이 줄어드는 사기장은 조정의 골칫거리였다. 조선시대 궁중의 주방 사옹원에는 380명의 사기장을 두었다. 사기장은 한겨울만 쉬고 계속 일한다. 사기장은 광주 분원에 모여 그릇을 만들었다. 변수의 책임하에 조기장이 흙을 그릇 모양으로 만들면 마조장이 손질하고 건화장이 건조했고 이 밖에 흙을 곱게 거르는 수비장, 가마에 불을 때는 화장, 온도를 관리하는 감화장, 그림을 그리는 화청장 등이 있어 분업으로 그릇을 만들었다
많은 장인들이 부지런히 만들어도 사기그릇이 늘 부족했다. 만기요람에 따르면 놋그릇의 사용 연한은 10년, 쇠 그릇은 5년 나무 그릇은 3년이었다. 사기그릇은 사용연한이 없고 너무 쉽게 깨지기 떄문에 사기장이 어떤 장인보다 많다 조선의 도자기는 흰색인 순백자기가 주를 이루었다. 회회청이라는 안료를 써서 푸른 무늬를 넣은 청화백자를 만들기도 했지만 회화청은 값비싼 수입품이었다. 사치스러운 이유로 민간의 청화 백자 사용을 금지하였다 한편 중국의 외딴 시골조차 화려한 그림으로 도자기에 쓰여서 그 기술력에 놀랐다. 일본은 도자기가 한층 더 높아졌는데 과거 임진왜란때 조선의 사기장을 데려가 기술력을 축척하였다
조선의 도자기는 검소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오늘날의 미학에 입각할 해석이었다. 조선에는 벽에 흰칠을 하는 것도 사치로 여겼다. 한편 조선시대 실학자들은 문헌을 조사하다가 고려 청자가 비색자기로 일컫으며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고려의 우수한 기술은 조선시대에 이어지지 않은 이유를 못찾았다. 우수한 기술은 우수한 장인에게서 나오고 우수한 장인은 우수한 대우에서 나온다. 장인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아서 기술이 발전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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