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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m 높이의 화분에 설치되어 있는 대형조화인 준화를 만든다는 조선의 florist는 어떠했나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2. 6. 16. 04:08
옛날 궁중 행사에서도 꽃 장식은 필수였다. 행사에 쓰인 물품과 비용을 기록한 의궤를 보면 한 차례 행사에 꽃 수천 송이를 썼다. 국화, 모란, 장미, 복분자, 연꽃 등 종류도 여러가디다. 큰 것은 3m에 달했다. 이 초대형 화한의 가격은 스무냥으로 쌀 한가마가 두석 냥으로 쌀 열가마 가격이다. 꽃 장식에 들어가는 비용이 전체 행사 비용의 10%를 넘었다. 비싼 이유는 옛날에는 생화 장식으로 사용하기가 어려웠다. 지금처럼 사시사철 생화를 구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조화이고 비단과 철사, 종이, 밀랍 따위로 만들었다. 왕비와 궁녀의 머리를 장식하는 잠화, 장원 급제자의 사모에 꽂은 어사화, 궁중 행사 중 장식 모두 장인이 한땀 공들여 만든 작품이다
조화를 만드는 장인을 화장이라고 하였다. 꽃의 장인이다.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물건을 만든다는 점에서 화장은 장인의 꽃이기도 하다. 화장은 고려시대부터 관청 소속이었다. 국가에서는 중요행사가 있을때마다 이들을 소집하여 조화를 만들게 하였다. 큰 행사에는 수십명이 동원되었다. 화장이 만든 조화는 대충 꽃 모양만 흉내 낸 것이 아니었다. 꽃잎과 꽃술, 꽃받침과 씨방 심지어 꽃가루까지 정교에서 재현했다. 고된 노동이었지만 대접은 제대로 받지 못했다. 조선시대 장인이 대개 그랬듯이 화장에게는 월급이 나오지 않았다. 행사가 없으면 한푼도 받지 못했다. 먹고살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했다. 화장은 민간에서 활로를 찾았다
화장의 새로운 고객은 왕실 문화를 선망하는 사대부였다. 궁중으로 드나들던 사대부들이 유행을 선도했다. 그들은 화장이 섬세한 손길로 만들어 낸 조화에 넋을 빼앗겼다. 퇴계 이황선생도 밀랍 매화, 종이 대나무, 비단 복숭아꽃을 보고 시를 지었다. 조선후기에 오면 조화는 지금의 꽃다발과 화환처럼 보편화되었다. 혼례상의 필수품이었다는 사화봉도 조화의 일종이다 요즘은 조화를 하도 잘 만들어 생화인지 조화인지 구분이 안 간다. 사실 꽃은 딱히 쓸모가 없는 물건이다. 꽃의 쓸모는 존재 자체이다. 꽃은 우리 인생의 한순간을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쓰인다. 그 한순간을 위해 화훼농가는 비늘하우스에서 몇 달 동안 땀을 흘린다. 그들의 땀값이 꽃값에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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