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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시대에 악사로서 활동한 소리를 보는 맹인 관현맹(管絃盲)에 대해서
    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2. 6. 8. 04:33

    옛날 임금들은 장님을 악사로 삼아 음악을 연주하는 임무를 맡겼다. 그들은 볼 수 없는 대신 음률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또 이 세상에는 버릴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 <세종실록, 1431> 조선시대의 맹인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점을 치고 경전을 외우는 판수가 되거나 침과 뜸을 놓으며 생계를 이었다. 악기를 연주하기도 했는데 눈이 보이지 않는 대신 소리에 민감하기 때문이었다. 맹인 연주자를 관현맹,, 고악, 고사 등으로도 불렀다

     

    관현맹은 궁중에서 대비와 왕비 등을 위해 베푸는 내연을 비롯한 여러 행사에서 음악을 연주하거나 기생의 가무에 반주를 맡았다. 남녀가 직접 말을 주고받을 수도 없을 만큼 내외가 엄격했던 시절에 궁궐에 남자가 들어가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여자 악공만으로는 필요한 악기를 제대로 연주하기 곤란했기 때문에 남자 맹인 악사들을 동원했다. 고려시대에는 맹인과 무당의 자식을 모아 악공을 시켰다. 세종때는 음악을 관장하는 관습도감에서 선발한 맹인 18명에게 음악을 익히게 했다. 이들은 궁중 음악인 당악과 우리 고유의 음악인 향악 전공으로 나누어 퉁소, 피리, 가야금, 거문고 등 다양한 악기를 연주했다

     

    경국대전에는 장악원에 4명의 관현맹이 소속되었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그보다 많았다. 관현맹제도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폐지되었다가 효종때 다시 시행되어 궁중 연회에서 13명의 관현맹이 급료를 받으며 연주를 했다. 현종 때는 5명으로 줄었다가 영조때 늘어났고 1744년 편찬된 전연의궤에는 피리와 젓대, 해금. 피파, 초적을 연주하는 관현맹 13명의 이름이 보였다. 관현맹은 설치와 폐지를 반복하면서 조선 말까지 존속되었는데 나라 살림이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폐지되곤 했다. 이때마다 관현맹들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시장에서 음악을 연주하며 생계를 이었다. 이학규의 낙하생집에는 광주 출신의 가야금 연주자가 오일장을 돌아다니며 구걸로 연명했다고 했다.

     

    관현맹인 박연(세종)

    1424(세종 6) 7월 관현맹 박연 등 26명이 세종에게 상소를 올렸다. 거문고와 비파를 타며 생계를 이어 왔는데 근래 국상으로 음악을 연주할 수 없어 살아가기가 어렵다고 하자, 세종은 쌀 한섬씩을 내려 주었다. 관현맹은 정기적으로 받는 녹봉이 없다시피 했고 흉년이나 국상을 만나면 수입이 줄어 가난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판수 노릇을 하면 처자식을 먹여 살릴 정도는 되지만 음악을 익히면 고생을 면치 못한다는 말도 나왔으니 당연히 인기가 없는 직업이 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조선에는 뛰어난 악공이 많이 배출되었다. 성현의 용재총화에 관현맹 김복산은 가야금을 잘 탔으니 그 솜씨는 비길 사람이 없다라고 했다. 그는 심한 불구였지만 장악원에서 충실히 근무하여 지금의 총감독에 해당하는 전악의 자리에 올랐다. 한편 성종떄 악공 이마지가 거문고를 잘 탔는데 김안로는 그의 연주를 듣고 이렇게 극찬했다

     

    구름이 떠가는 듯 냇물이 솟구쳐 흐르는 듯하고 소리가 그칠 듯하다 이어지고 활짝 열렸다가 덜컥 닫히고 유창했다가 처절해졌다. 그 변화에 황홀해진 좌중은 술잔을 드는 것도 잊고 나무토막처럼 멍하니 얼이 빠져 있었다. 선조때 김운란은 진사시에 합격한 양반이었지만 눈병을 앓다가 시력을 잃었다. 이후 그는 아쟁을 배워 귀신도 통곡하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허균은 그의 연주를 칭찬하며 그의 음악을 듣는 사람치고 눈물을 쏟지 않는 이가 없었다고 했다. 율곡 이이도 어릴 적 같은 동네에 살았던 김운란을 만나 아쟁 연주를 듣고 시를 지었다. - 빈 누각에 아쟁 소리 들려오자 오싹하니 좌중이 조용해지네. 아쟁의 현이 손을 따라 말을 하고 세찬 냇물 깊은 곳에서 흐느끼네. 늦여름 매미가 이슬 젖은 잎에 매달려 있고 작은 샘에서 물이 솟네. 귀를 기울이니 구름속에 있는 듯이 여운이 오래도록 다하지 않는구나 - 관현맹은 장애와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하며 살아갔다. 그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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