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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비보다 분뇨처리업자를 왜 박지원은 예덕선생으로 불렀을까
    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2. 3. 12. 03:24

    그 친구는 종본탑 동편에 살면서 매일 마을의 똥을 져 나르는 것을 업으로 하고 있었다. 아침이면 기쁜 마음으로 일어나서 바지게를 지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뒷간을 치는 것이다 - 박지원 <예덕선생전>. 18세기 후반의 문인인 박지원, 이덕무 등은 각자의 글에서 한양 가구 수를 8만호라고 언급했다. 1790년대 가구당 인구가 다섯명 내외였으니 19세기초 한양은 인구가 40만명이 넘는 대도시로 추정된다. 전통시대 도시의 인프라 중 마실 물, 땔감 등의 공급과 더불어 매우 중요한 것이 배설물 처리다. 조선은 초기부터 이 문제로 많은 고민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 똥이 있는 표시
    유럽 분뇨 처리 문제

    조선시대 설화집 <태평한화골계전>에는 오염된 물을 맑게 만들기 위한 대책을 다룬 1444년의 실세 상소문 내용이 발췌돼 있다. 분뇨로 인한 한양의 수질 오염과 개천에서 아무렇게나 대소변을 보는 문제로 고심한다는 내용이다. 18세기 후반 박제가의 <북학의>에 실린 <똥거름>이라는 글은 한양 성내 사람과 동물의 분뇨로 인한 악취와 길가에 덕지덕지 붙은 똥 문제를 기록했다. 이처럼 인분뇨와 축산 폐수 처리는 녹록지 않는 문제였다. 그러나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 정책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태평한화골계전>은 집집마다 사람과 가축의 배설물을 모아 두는 통을 설치하고 이를 성밖에 버리는 방안을 제시했다.

     

    분뇨통과 오줌통

    분뇨의 배출처로 가장 대표적인 곳이 공중화장실이다. 조선시대 이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강희맹의 <요통설>이다. 큰 시장의 으슥한 곳에 오줌통을 설치했는데 양반들이 이를 이용하면 불결하다는 비난을 받았다고 했다. 15세기 조선의 수도 한양에 드디어 사람들에게 급한 볼일을 해결할 수 있게 했지만, 양반들에게는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조차 욕먹고 창피한 일이었던 모양이다. 19세기 초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진담록의 방분에도 길가 옆에 화장실이 있었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분뇨 우차

    18세기 후반에 이르면 민간인 배설물 처리업자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박지원의 단편 소설 <예덕선생전>은 사람과 동물의 배설물 처리가 직업인 사람의 이야기다. 주인공 엄행수는 마을에 있는 온갖 똥을 져 나르는 업을 생업으로 삼은 분뇨처리업자 일명 똥장수였다. 이글에 묘사된 주인공 엄행수의 생활을 통하여 18세기 분뇨 처리업자의 노동시간과 취급품목, 똥을 거래하는 고객에 이르기까지 많은 정보들을 확인할 수 있다. 엄행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마을을 돌아다니며 인분, 말똥, 쇠똥, 개똥, 거위똥, 돼지똥, 토끼똥을 가리지 않고 쓸어담는다. 주요 고객은 채소를 재배하는 농가다. 왕십리 주변 무재배 농가, 뚝섬 근처 순무 재배 농가, 서대문 밖 가지, 오이, 수박 재배 농가, 연희동 주변 고추,마늘,부추 재배 농가, 청파동 일대 미나리 재배 농가, 이태원 일대 토란 재배 농가 등등이다

     

    놀랍게도 그의 연봉은 6천전으로 100전이 한냥이였으니까 연봉이 무려 60냥이었던 셈이다. 18세기 후반 한양의 괜찮은 집 한 채가 약 60냥이었으므로 이돈은 한양에서 좋은 집 한 채를 살 수 있는 금액이다. 사람들이 더럽고 천하다고 손가락질하는 직업치고는 꽤 돈벌이가 좋았던 모양이다. 엄행수를 따라 18세기 말 한양의 거리를 걸으면 꽤나 흥미로운 보통 사람들의 일상과 다양하게 형성된 채소 재배 단지를 만날 수 있다. 특히 더러운 똥이 돈이 되는 것을 보며, 사람을 평가하는 올바른 기준도 얻게 된다. 박지원은 성실하고 묵묵히 자기 일을 하면서 솔직하고 검소하게 사는 엄행수야말로 더러움 속에 자신의 덕행을 파묻은 속세의 은자라고 보았다. 박지원은 천한 일을 하는 엄행수의 친하게 지낸다는 비난에 선비는 가난이 얼굴에 묻어나도 부끄러운 일이지만 출세하여 온몸에 표가 나는 것 또한 부끄러운 일이라고 비난했다. 그리고 18세기 조선의 분뇨 처리업자 엄행수에서 더럽지만 덕이 있다하여 예덕 선생이라는 칭호를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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