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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태기 짊어지고 호랑이를 피해 목숨을 건 산 넘이를 한 심마니의 활동은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2. 2. 9. 03:52
산삼을 캐는 사람은 허가증을 받고 산에 들어가 풍찬노숙하며 가을과 겨울을 보낸다. 범, 이리, 곰, 멧돼지를 만나서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고 온갖 고생을 겪는다. 산에서 나오면 관원이 주머니와 품속을 뒤진다. 산삼이 한 조각이라도 나오면 용서하지 않는다. 모조리 헐값으로 빼앗아 관청에 들이고 진상한다는 핑계로 전부 제 주머니를 채운다 -정약용<목민심서>
심마니라고 하면 망태기 하나 짊어지고 혼자서 산을 누비는 고독한 자연인을 떠올리지만 심마니는 반드시 무리 지어 다닌다. 깊고 험한 산속에서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달 동안 먹고 자며 산삼을 찾는 일은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산짐승도 무섭지만 더 무서운 것은 사람이다. 첩첩산중이니 무슨 해를 당할지 알수 없다
원래 허가 없이 산삼을 캐는 행위는 불법이다. 산삼을 캐려면 석냥을 내고 황첩이라는 허가증을 받아야 한다. 만약 허가증 없이 산삼을 캐면 밀수꾼으로 간주하여 체포된다. 산삼은 전부 몰수되고 사형까지 당할 수 있다. 허가를 받지 않는 사람이 나 심마니요 하고 다닐 수는 없으니 남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은어를 쓰며 행동을 조심했던 것도 당연하다. 이 때문에 온갖 금기가 생겼다. 심마니가 산삼을 캐러 갈 때는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는다. 입산 전부터 목욕재계하고 음식을 가리며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는다. 산에 도착하면 산신령에게 제사부터 지낸다. 산삼을 캐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살아서 돌아오기 위해서다
평안도 강계 심마니를 조사한 일제 강점기 민속학자 손진태에 따르면 심마니 무리는 철저한 계급사회였다. 노련한 심마니가 어인이라는 우두머리 노릇을 하고 소댕이로 불리는 초보자는 잡일을 도맡았다.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말을 써서 보통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했다.
산삼을 캐는 시기는 처서(8월말)부터 한로(10월초)까지다. 붉은 열매나 독특한 잎 모양을 보고 찾는다. 산삼을 발견하면 심봤다라고 외친다. 산삼은 무리 지어 자라므로 주위에 또 다른 산삼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심봤다라고 외친 사람이 우선권을 갖는다. 그가 수색을 마쳐야 나머지 심마니들은 차례가 온다.
원래 우리나라 산삼은 나삼을 으뜸으로 친다. 경주 일대에서 나는 산삼이다. 그 다음이 평안도 강계의 강삼, 함경도의 북삼이다. 중국산 호삼은 최하품이다. 그러나 나삼은 조선후기에 오면 씨가 말라 버린다
산삼이 많은 곳은 평안도와 함경도의 국경지대다. 국경을 넘으면 더 많지만 발각되면 사형이다. 몰래 잠입하는데 성공하더라도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중국 심마니다. 선단을 이루어 압록강을 거슬러 올라와 산삼을 캤는데 그 수가 수천명이나 되었다. 이들은 총과 활로 무장하고 수십 명씩 떼 지어 다녔다. 사냥을 겸한다는 핑계였지만 조선군과 전투를 벌이거나 민가를 약탈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으니 산적이나 다름없었다. 조선사람도 국경을 넘어 산삼을 캐다가 중국사람과 충돌을 빚어 사상자를 내곤 했다. 외교문제로 비화하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그러나 산삼은 모든 위험을 무릅쓸 가치가 있었다
중국 심마니 말고도 조심해야 할 것이 또 있다. 동료 심마니다. 경기 양평의 심마니 김씨는 동료 두사람과 산삼을 캐러 백운산에 들어갔다가 절벽에 버려졌다. 동료들은 김씨가 캐어서 올려 보낸 산삼만 챙겨 달아났다. 김씨는 남은 산삼을 씹어 먹으며 버텼다. 이렇게 예닐곱 날을 보내자 느닷없이 구렁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김씨는 구렁이에 매달려 절벽을 올라왔다. 산을 내려가던 김씨는 시신 두 구를 발견했다. 자기를 버리고 갔다가 독초를 먹고 죽은 동료 심마니였다. 국가의보호도 받지 못하고 동료조차 믿을 수 없는 심마니는 목숨을 건 직업이었다
이렇게 고생해서 산삼을 캐도 심마니에게 돌아가는 몫은 별로 없었다. 인삼 상인은 헐값에 산삼을 사들여 사신단을 따라 중국에 가서 팔거나 동래 왜관의 일본인들에게 팔아 엄청난 이익을 보았다. 위험을 무릅쓰는 사람이 따로 있고 이득을 보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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