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시대에 신돈도 埋骨僧이라고 이라고 하는데 조선시대 그들은 무엇 역할을 수행했나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2. 2. 28. 03:40
선조 27년(1594) 굶주린 백성이 대낮에 서로 잡아먹고 역병까지 겹쳐 죽는 자가 이어졌다. 수구문 밖에 그 시체를 쌓으니 성보다 높았다. 승려들을 모집하여 그들을 매장하니 이듬해에 끝났다 - 이수광(지봉유설) 조선시대에는 전쟁이나 기근으로 길에서 사람을 누가 수습했을까 ? 바라보기조차 힘든 광경 속에서 손수 시신을 수습해 주는 매골승이 있었다.
매골승의 기원은 고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승려는 종교인이자 의술, 천문, 풍수 등 다양한 지식과 기술을 보유한 전문인이었다. 병든 사람들은 치료를 위해 의술이 뛰어난 승려를 찾기도 했다. 속세와 떨어진 사찰은 병자의 치료와 요양에 적합한 곳이었다. 불행히 죽더라도 극락왕생을 빌며 임종을 맞을 수 있었다. 매골승은 불교식 장례인 화장을 주관하고 풍수에 맞게 묏자리를 잡아 주었다. 묘를 어떻게 쓰는가에 후손의 번성이 달렸다고 믿었던 당시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고려말의 요승으로 알려진 신돈도 원래는 맴골승이었다.
조선이 건국되자 매골승은 활인원 소속의 관원이 된다. 활인원은 동대문 밖과 서소문 밖 두곳에 있었는데, 사람을 살린다는 취지에 맞게 다양한 복지사업을 펼쳤다. 매골승의 역할은 도성과 그 근방을 돌아다니며 버려진 시신을 수습해 주는 것이었다. 역병으로 죽은 시신은 전염될까 두려워 망자의 가족들조차 손대기를 꺼렸지만 매골승은 죽음을 무릎쓰고 시신을 수습했다. 그들은 국가에서 매월 곡식과 소금 등을 받았고 봄가을에는 면포 한필을 지급받았다. 실적에 따라 관직을 제수받은 기회로 얻었다
매골승의 업무가 급증하는 시기는 기근과 역병, 전쟁이 일어날 때다. 기근과 역병은 늘 함께 오는 친구였다. 기근이 발생하면 굶주린 이들은 희멀건 죽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는 도성으로 몰려든다. 그러나 오랫동안 굶어 약해진 데다 먼길을 걷느라 힘이 빠져 죽은 사람이 많은 탓과 도성과 그 근방에 시신이 쌓인다. 이들은 십장팔구 병을 앓았으니, 그로 인하여 역병도 창궐했던 것이다`. 1427년에는 기근으로 죽는 사람이 늘어나자 열 명이었던 매골승을 열여섯 명으로 늘린다. 그럼에도 업무가 과중하여 이듬해 다시 네명을 더 두어 매골승은 스무명이 된다
임진왜란 중인 1594년에도 굶주린 백성들이 서로 잡아먹는 일이 벌어졌다. 병자호란 이후의 상황은 한문소설 <강도몽유록 >에서 짐작할 수 있다. 주인공인 청허선사는 청나라 군대에 의해 목숨을 잃은 강화도 백성의 시신을 수습해 주었다. 그는 꿈에서 귀신이 된 여인들의 억울한 하소연을 들었다. - 불쌍한 우리 백성들은 반 넘게 적의 창칼에 죽었다. 저 강화도에서는 참살이 더욱 심하여 시내에 흐르는 것은 피요, 산에 쌓인 것은 뼈였지만 시신을 쪼아 먹는 까마귀만 있었지. 장사 지내 줄 사람은 없었다. 청허선사는 주인 없는 시신을 불쌍히 여겨 하나라도 더 거두어 주려고 했다
최소 수십만에서 100만여 명이 희생되었다는 1670-71년의 경신대기근 때는 더욱 참혹했다. 가뭄, 냉해, 홍수, 역병이 잇달았다. 당시 노인들은 임진왜란보다 더한 참상이 벌어졌다며 탄식했다. 그렇게 쌓여 간 수많은 시신 역시 매골승을 비롯한 승려들을 동원하여 매장해 주었다. 1671년 10월 <승정원일기>에는 승군 200명을 불러 주인없는 시신 6969구를 매장해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끔찍한 참상 속에서 시신을 수습해야 하는 그들의 고통이 어떠했을지 상상하기 어렵다. 당시에는 이미 매골승이 혁파되고 승군과 같은 조직에 시신을 수습하는 일을 맡겼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후기에는 향도계라는 조합이 민간의 장례를 맡았다. 하지만 대량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경우라면 어김없이 승려들의 손을 빌릴 수 밖에 없었다.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구천을 떠도는 원혼이 원기를 바라는 것이 부처의 마음이다. 매골승은 부처의 현신이 아니었을까 ?
'아들을 위한 인문학 > 조선시대 직업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종시대에 조선의 소방수였던 멸화군이 설치되었다고 하는데 (0) 2022.03.22 선비보다 분뇨처리업자를 왜 박지원은 예덕선생으로 불렀을까 (0) 2022.03.12 홍범도 장군도 山尺출신이라고 하는데 탁월한 숲속의 사람 산척은 어떻게 발전해갔나 (0) 2022.02.18 망태기 짊어지고 호랑이를 피해 목숨을 건 산 넘이를 한 심마니의 활동은 (0) 2022.02.09 내 등에 업히시오 ! 월천꾼은 동아시아에 모두 존재하는 일꾼이라는데 (0) 2021.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