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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등에 업히시오 ! 월천꾼은 동아시아에 모두 존재하는 일꾼이라는데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1. 12. 30. 03:51
강물은 깊고 세찬데 내 어깨 위에는 가마채로다.
술렁술렁 흐르던 물은 소용돌이치고 용을 쓰네
해는 져서 어두운데 월천꾼 부르는 소리로구나
깊고 어둔 밤 흐르는 물은 일만 짐승이 우짖는 듯 - 월천꾼의 노래
산이 많은 조선은 강과 사내도 흔하다. 오가는 길손들은 강가 나루터에서 뱃사공이 노를 젓는 나룻배를 타고 건넌다. 다리가 놓이지 않은 시내는 어떻게 건널까 ? 시내를 건너다가 발을 헛디디거나 이끼에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물에 빠져 낭패를 볼 위험이 있다. 건강한 젊은이라면 몰라도 노약자나 병자가 차가운 물에 빠지면 안 될 일이다
월천꾼(越川軍)은 섭수꾼(涉水軍)이라고도 한다. 길손을 등에 업거나 목말을 태우고 시내를 건네준 뒤 품삯을 받았다. 가마나 무거운 짐도 옮겼다. 1837년 권뢰는 서울 가는 길에 월천꾼을 썼는데 4전 정도의 푼돈이 들었다고 했다
월천꾼에 난쟁이 빠지듯이라는 속담처럼 월천꾼은 키 크고 힘센 장정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여러 가지 새를 사람의 직업과 연결하여 노래한 백조요에서는 황새란 놈은 모가지가 길으니 월천꾼으로 돌려라라고 하며 월천꾼을 황새에 빗대었다
월천꾼은 평소 생업에 종사하다가 여름철 시냇물이 불어난 때나 얼음이 단단하게 얼기 전과 녹기 시작하는 대목에 주로 일했다. 거센 물살과 차가운 물을 이겨내야 했던 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늦은 밤 강가에서 월천꾼을 찾는 사람이 많았으니 사람이 많이 건너는 냇가 길목에서 고객을 기다렸을 것이다. 평소 그냥 건널 수 있는 곳도 물이 불어나면 위험 예방 차원에서 월천꾼을 썼다. 1682년 일본 통신사를 따라간 왜학역관 홍우제는 물살이 센 아부천과 대정천을 지날 때 수백 명의 일본인 월천꾼이 시내 가운데에 줄지어 서서 좌우에서 부축하며 건네주었다. 사람으로 다리를 만들었다고 할 만큼 극진한 대우였다
1826년 청나라로 연행을 다녀온 박사호는 압록강과 요동의 여러 시내를 건널 적마다 월천꾼의 등에 업혔다. 얼었던 땅이 녹아 길이 질퍽거려서 조선 사행단은 거의 수레를 타지 못했다. 시내를 건널 적마다 인근 마을에서 월천꾼을 동원했다.
월천꾼은 물이 새지 않도록 어깨까지 오는 가죽 바지를 만들어 입기도 했다. 발이 깨질 듯한 얼음물에 오래 있을 수 없으니 나름의 장비를 갖춘 것이다. 1804년 연행을 다녀온 이행응은 가죽바지를 입은 수십 명의 청나라 월천꾼들이 시내를 가로막는 얼음덩이를 부수고 평지를 오가듯 사람과 말을 건네주었다고 했다. 숙종 때는 중국 사신을 맞이하는 접반사의 차비관을 맡은 윤두마노가 월천꾼들이 함께 물살에 휩쓸려 빠져 죽은 사고가 일어났다.
영조와 정조는 제사에 쓸 물건을 옮기는데 시내가 불어나자 월천꾼의 도움을 받았다. 월천꾼을 쓰지 않고 물이 불어난 시내를 무리하며 건너다가 조정에 급히 보고할 문서를 빠뜨려 잃어버린 사건도 일어났다. 정조는 해당 지방관을 파직했다. 변방의 급보가 자주 지나는 삼탄에서는 인근 백성들에게 월천꾼의 임무를 맡겨 사시사철 대기하게 했다. 백성들은 고역을 견디기 어려워 스스로 비용을 내어 다리를 놓았다
한 개울을 지나는데 월천꾼이 있어 가죽바지를 입고 물속에 서서 삯을 받고 사람을 건네준다. 나를 업고 개울로 들어가다가 얼음이 미끄러워 발이 미끄러져 나를 업은 채 물에 주저앉아 버렸으니 비록 맹분의 용기와 제갈공명의 지혜를 가졌다 하더라도 이 지경에 이르러서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 박사호 <삼전고>
박사호를 업은 월천꾼은 얼음에 미끄러지면서 물에 주저앉았다. 월천꾼의 목을 끌어안고 당황하며 물에 빠진 그의 모습을 본 동료들은 배꼽이 빠지게 웃는다. 1868년 금강산으로 유람을 떠난 권숙도 월천꾼에게 업혀 불어난 시내를 건너다가 물이 목까지 차올라 옷이 다 젖었던 일을 기행가사에 남겼다. 월천꾼은 조선과 중국,일본에서도 널리 활용된 서민들의 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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