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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점 도달에 대해 세기의 대결로 영국을 이긴 노르웨이 아문센의 탐험은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사 2021. 11. 17. 04:39
강대국들 사이에 식민지 경쟁이 치열하던 때에 다른 의미에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사람이 아직 발을 밟지 못한 남극 땅을 어느 나라의 누가 먼저 정복하느냐 하는 경쟁이었다. 이 경쟁은 영국과 노르웨이 사이에 벌어졌다. 1911년 평균 두께가 1900m나 되는 남극의 얼음 위에서 국가의 명예를 건 경쟁이 전개된 것이다. 남극점 도달 제1번을 두고 노르웨이 아문센 탐험대와 영국의 스콧 탐험대가 다투었다. 이 두 탐험대는 거의 동시에 출발하였다. 한달 차이로 아문센이 영예를 차지하였고 경쟁자였던 스콧은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되었다.
1911년 1월 14일 노르웨이의 아문센을 대장으로 하는 탐험대는 프람 호를 타고 얼음이 덮힌 남극 입구 바다에 도착했다. 그들은 남극점으로 향하는 루트를 찾았다. 가장 가까운 거리로 그곳에 도달하는 코스를 선택한 아문센 탐험대는 10월 24일에 개들이 끄는 4대의 썰매로 출발했다. 한편 경쟁팀인 스콧 탐험대는 11월 1일에 기지를 출발하여 아문센 탐험대와는 다른 루트로 남극점을 향해 출발하였다. 아문센 탐험대는 52마리의 개를 끌고 갔다, 그들은 정해진 지점에서 개를 순번대로 잡아 그것을 먹으면서 극점을 향해 전진하였다. 12월이 되면서 거센 눈보라가 몰아쳤다. 아문센의 얼굴은 동상으로 부어올랐고, 피와 고름이 얼굴을 뒤덮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극지 탐험을 한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동행한 스키의 명수들도 아문센을 잘 따랐다. 12월 14일 아무센 일행은 마침내 남극점을 도달했다. 그는 남극점에 조국 노르웨이의 국가를 게양하고 텐트안에 노르웨이 국왕 앞에 드리는 편지를 남겼다. 만일 자기가 귀환하지 못하게 된다면 뒤에서 오는 스콧 탐험대가 그 편지를 가지고 귀환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아문센 탐험대는 총 2976km를 걸어서 다음해 1월 25일에 무사히 프람호에 도착했다. 스콧 탐험대는 1월 27일 바람에 나부끼는 노르웨이 국기를 보았다. 그때의 절망감을 스콧은 그의 일기장에 오오 하느님이라고 적고 있다. 물론 이 일기장은 스콧 탐험대의 소식이 끊긴 지 9달이 지난 11월 수색대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들의 주검은 식량과 연료가 저장된 캠프로부터 불과 17km 떨어진 지점에서 발견되었다. 3월경에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는데 두 사람은 슬리핑백 속에서, 스콧은 그 옆에서 숨져 있었다. 부대장 에번스는 부상이 깊어 오래 부대원들에게 부담만 주다가 죽었고 육군 대위 오츠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행군을 계속할 수 없게 되자 텐트에서 몰래 나와 강풍 속에서 사라졌던 것이다
스콧 탐험대가 귀환에 실패한 것은 예상치 못한 강풍과 얼음판을 만나 하루 8900m 밖에 행군하지 못한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3월 눈보라에 갇혀 9일 동안 영하 40도의 추위와 굶주림, 심한 동상에 시달리면서 최후까지 버티다가 마지막 순간 침착하게 죽음을 받아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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