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폴레옹의 몰락은 러시아 원정의 실패보다 영국 대륙봉쇄령의 자충수가 원인이라고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사 2021. 10. 22. 04:39
영국이 산업혁명으로 한창이던 시기에 프랑스는 절대왕정의 세금 착취, 귀족 성직자에 대한 특권, 시민의 권리억압 등 이른바 구체제의 모순이 극에 달한 상태였다. 급기야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이 수립되었다. 그러나 극심한 혼란 속에 공포정치가 시작되어 루이 16세는 물론 급진파 지도자인 로베스피에르까지 수천명이 단두대에서 공개 처형되었다. 이에 유럽 각국은 프랑스의 정치적 급변 사태가 자국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동맹을 맺고 프랑스를 협공했다
이를 틈타 이탈리아 원정에서 공을 세운 나폴레옹이 1799년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하고 1804년 국민투표를 거쳐 황제에 올랐다. 나폴레옹은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1805년 유럽을 상대로 침략전쟁에 나섰다. 강력한 징병제를 무기로 대륙을 재패했지만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영국의 넬슨제독에게 패했다. 이에 나폴레옹은 영국을 경제적으로 고립시키면 쉽게 정복할 수 있다고 믿고 1806년에 대륙봉쇄령을 내렸다. 모든 유럽 상선들은 프랑스 항에 1차적으로 정박, 영국과의 교역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받은 뒤 출항하게 했으며, 전 유럽국가들 및 프랑스 연합국에 대해 대 영국 교역을 전면금지시켰다. 문제는 영국이 이루고 있던 해상제국과 식민지들의 단결력이 프랑스가 유럽제국가들에 가진 통제력보다 컸다는데 있다. 그러므로 나폴레옹의 강압으로 경제적 고통을 받던 유럽국가들은 프랑스 혁명제국의 통제력에 저항하기 시작했고 이는 프랑스의 외교적 고립을 초래했다. 이에 시달리던 나폴레옹은 러시아 원정의 도박수를 두고 군사적 통제를 강화하고자 하였다. 즉 러시아가 영국의 무역의 의존도가 60%이상높아 1810년 어쩔 수 없이 재개하자 2년 뒤 나폴레옹은 60만대군을 이끌고 러시아 원정에 나섰으나 추위와 굶주림으로 대패했다
나폴레옹은 유럽에서의 완벽한 패권을 이루기를 갈망했고 그 장애물이 바로 영국이었다. 영국은 산업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뤄내어 산업의 급속한 발전을 이뤘고, 이를 바탕으로 유럽대륙과 상당한 교역을 하고 있었는데 나폴레옹에 의해 경제가 피폐해지고 아울러 주요 식품 가격의 상승같은 부작용을 낳게 되었다. 문제는 영국과 그 식민지의 산업생산 규모가 석탄소비량의 50%, 유럽철강생산량의 60%를 차지하기 떄문에 그 고통의 수준이 영국뿐 아니라 유럽 스스로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설령 러시아 원정이 승리로 끝나더라도 영국이 굴복하지 않으면 또 다른 국가의 원정에 끊임없이 나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8년간의 대륙봉쇄령은 결국 실패하였지만 산업혁명에 뒤쳐졌던 유럽 대륙에 이득을 안겨주기도 했다. 값싸고 경쟁력 있는 영국산 면직물 수입이 막혀있는 동안 자국 면직물 산업을 육성할 시간을 벌었기 때문이다. 스위스의 경우 대륙봉쇄령이 풀렸을 때는 면직물이 영국과 대등한 수준으로 올라섰다. 신생독립국 미국도 조선, 해운에 쏠렸던 자본을 다른 산업으로 분산 투자하는 효과를 거뒀다. 나폴레옹 전쟁은 산업혁명의 기세를 유럽과 미국으로 확산시켰다. 또한 기계화가 가속화되면서 일자리 문제가 사회갈등 요인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또한 브라질이 커피 생산지로 된 계기도 대륙봉쇄령을 통해서라고 한다. 원래 브라질은 주력 상품이 사탕수수였으나 봉쇄로 인해 수출할 수 없고 유럽은 사탕무로 설탕을 얻어 쓰게 되어 이에 브라질은 커피 재배와 목축업으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아들을 위한 인문학 > 세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극점 도달에 대해 세기의 대결로 영국을 이긴 노르웨이 아문센의 탐험은 (0) 2021.11.17 제1차 세계대전은 발칸반도에서 투르크 세력 악화에 따른 범슬라브족과 범게르만족의 충돌로 되었는데 (0) 2021.11.02 기원전 196년 추정되는 로제타 스톤은 이집트의 상형문자의 비밀을 풀어주었는데 (0) 2021.10.12 루비콘강을 건너며 주사위는 던져졌다고 말한 카이사르는 어떻게 몰락했나 ? (0) 2021.10.09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원인은 무엇이며 그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었나 (0) 2021.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