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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항해시대를 연 검은 욕망의 후추를 찾아 나서다
    아들을 위한 인문학/음식 2021. 11. 13. 03:45

    <금과 맞먹는 가치를 지닌 식물인 후추>

    유럽대륙의 서늘하고 건조한 기후에서는 주로 볏과 식물이 자라는 초원이 펼쳐지는데 이들은 인간의 식량으로 적당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이 초원을 배경으로 소,돼지,양 등 초식동물를 식량으로 길렀다. 야생의 초식동물이 가축으로 바뀌고 축산업이 시작되었다. 한편 추운 겨울이 오면 가축에게 먹일 먹이를 구하는 일이 힘들었다. 오늘날에는 풀에 젖산균을 넣어 발효 과정을 넣어 발효과정을 거친 사일리지와 보존성이 뛰어난 곡물을 먹이로 사용한다. 하지만 풀을 베어 보관해 둘 수 없었던 당시에는 먹이를 충분히 확보하기가 어려웠다. 유럽인들은 겨울이 다치기 전 최소한의 가축만 남기고 나머지 가축을 도살해 고기로 만들었다. 고기는 부패하기 쉬워 저장성이 떨어지지만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그 고기로 버텨내야 했다. 그들은 고기의 부패를 막거나 지연시키기 위해 소금에 절이거나 말리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향신료도 그 다양한 방법의 하나였다. 향신료는 언제나 맛있는 고기를 먹을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의 약이었다. 후추가 고가인 이유는 희소성과 막대한 유통비용 탓이 컸다

     

    대항해시대 노예무역

    <향신료가 차지하는 나라가 세계를 재패하던 시대>

    이슬람교에서는 온갖 향신료를 사용한 요리가 발달했다. 후추가 유럽에 전해진 것은 십자군 원정 이후였다. 중세 유럽인들은 그 독특하고도 이국적인 향취에 흠뻑 취해 후추 등 향신료를 열렬히 갈망하기 시작했다. 후추를 비롯한 다양한 향신료를 육로가 아닌 해로로 유럽에 들어올 수 있다면 막대한 이익을 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중세 유럽 선원들에게 바다란 주로 지중해를 의미했다. 여기에 지정학적으로 지중해의 끝에 위치한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대서양으로 먼 바다로의 향해를 도전하게 되었다. 한편 아프리카 북서부에는 죽음의 곶으로 알려진 보자도르 곶이 있다. 이곳은 험난하고도 위험천만한 지형으로 살아돌아온 사람이 드물었다. 항해 왕자인 포르투갈 엔히크가 그곳을 넘어 아프리카의 희망봉에 가게 되어 인도양의 뱃길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아프리카의 후추와 비슷한 맛을 내는 멜레구에타 고추의 향신료들 들여왔다 그리고 흑인 노예도 들여와 노예무역의 막을 올렸다. 한편 스페인도 1492년 콜럼버스를 통해 아메리카를 개척했는데 이들은 도착한 곳이 인도라고 생각해서 아메리카 원주민을 인디안으로 부르게 되었다

     

    <대항해 시대를 열고 세계를 둘로 나눈 두 나라>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질새라 앞다투어 신대륙을 탐험했고 식민지를 넓혀갔다. 두나라는 끊임없이 분쟁과 반목이 이어지자 가톨릭 교황이 중재에 나서 토르데시야스 조약으로 대서양의 경계선이 그어졌는데 서경 4637분 경계선 동쪽에서 새로 탐험한 땅은 모두 포르투갈령, 경계선 서쪽에서 탐험한 땅은 스페인령으로 삼기로 했다. 결국은 포르투갈은 아프리카를 손에 넣었고 스페인은 아메리카를 손에 넣었다. 이렇게 세계를 둘로 나누어 지배했다. 아메리카 대륙을 재패한 스페인은 야욕은 서방항로 개척에 박차를 가하여 아시아에 진출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 무렵 아메리카 대륙에서 태평양을 건넌 인물이 마젤란으로 스페인 왕의 명령에 따라 태평양을 횡단하여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도 입증하게 하였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네덜란드는 왜 살벌한 향신료 무역 판에 도전장을 내밀었나>

    1498년에 바스쿠 다마스의 선단은 동쪽항로를 이용하여 인도에 도착했다. 포루투갈은 그리도 갈망했던 후추를 넣자 어마어마한 부를 축척했다. 포르투갈은 아프리카의 무역으로 급증한 흑인노예가 농장 등에 대거 투입되자 농민들은 차츰 일할 의욕을 잃어버리고 이것은 생산력 감소로 이어졌다. 여기에 더해 이미 한번 달콤한 부의 맛을 본 귀족들과 정치인들의 부패상이 날로 심해서 쇠퇴해 가게 되었다 여기에 도전장을 내민 나라가 네덜란드로 그들은 한때 스페인의 지배하에 있다가 독립하여 경제적 돌파구가 필요했다. 후발주자인 네덜란드와 영국은 제 3의 길을 개척하려고 북쪽에서 중국으로 들어가는 북해항로에 눈을 뜨게 되었으나 여의치가 않았다. 영국은 스페인 무적함대로 불리던 스페인의 아르마다를 격파했다. 그 무렵 네덜란드 군대 역시 동인도제도에서 포르투갈 군대를 무찔렀고 세계 패권은 영국과 네덜란드의 손으로 넘어갔다

     

    <후추가 금처럼 비싼 가격에 팔린 진짜 이유는>

    여러개의 상사가 경쟁적으로 후추 쟁탈전에 나서자 후추 가격이 폭등하였으나 네덜란드 국내에서는 판매상들이 제살 깎아 먹기식 경쟁을 벌인 결과 후추 가격이 하락했다. 이에 여러개 상사를 통합해 대규모 회사를 만들어 무역 독점권을 부여하고 그 과정에서 태어난 것이 동인도회사이다.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운송하는데 막대한 비용이 들었기 때문에 엄청난 가격에 거래되고 항해기술이 발달하므로 운송비가 절감되어서 가격이 내려가게 되었다. 그러다가 산업혁명이 일어나 증기선이 등장하고 후추가 유럽에 대량으로 유입되면서 후추 가격은 더 크게 하락했다. 후추가 인기가 치솟고 엄청난 가격에 거래된 이유는 설탕처럼 귀족들의 높은 지위와 부를 과시하기 위한 상징적 목적이 더 크게 작용했다. 한편 항해기술이 발달하면서 후추가 가격이 내려가자 동인도회사는 후추대신 돈벌이 수단으로 교역품을 찾았는데 그것이 동양의 차였다

     

    대항해시대 탐험가 항해로
    향신료

    <후추를 향한 검은 욕망이 세계지도를 바꿨다>

    후추의 독주시대를 끝낸 후에 향신료로는 정향(클로브), 시나몬(계피나무껍질) 육두구(넛맥), 생강 등이 대표적이다. 유럽인들이 향신료에 열광한 이유는 향신료가 음식 맛을 좋게 하고 향을 높여주며 육류의 누린내와 생선 비린내를 없애주기 때문이었다. 향신료가 유럽이 아닌 인도에서 생산된 것은 생태적이며 지형적 특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향신료의 향미 성분은 본래 식물이 병원균과 해충으로부터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해 축적하는 물질이다. 잘 알려진 대로 기온이 높은 아열대 지역과 습도가 높은 몬순 기후의 아시아에는 병원균과 해충이 많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자라는 식물은 향미 성분 등을 갖춰 스스로 자기 몸을 지켜야 했다. 반면 기후가 서늘한 유럽은 상대적으로 병충해가 적은 편이라 식물이 향미 성분은 갖출 필요가 없다. 후추의 향신료는 1650년경에 새로운 향신료가 등장하므로 가격이 내려갔다. 이무렵부터 인류는 커피와 코코아, 엽차 등 기호품을 즐겼다. 대항해 시대는 후추를 향한 항해로 시작되고 그로 인해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아시아가 세계 식민지로 촉발되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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