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위한 인문학/한국사
-
왕궁이 동물원으로 바뀐 창경원에 마지막 황제인 순종이 거닐며 한탄했다고 하는데아들을 위한 인문학/한국사 2022. 7. 22. 05:36
1909년 11월 조선의 마지막 임금 순종 황제가 새로 다듬어진 궁궐 뜰을 돌아보고 있었다. 궁궐 여기저기가 헐린 자리에 신식 건물과 동물 우리들이 마구잡이로 들어선 터이다. 순종황제는 아침부터 일본 통감부에서 가져온 모닝코트를 입어야 하였다. 대한제국 황제에게 입는 옷이 아닌 서양정장으로 입으므로 독립군의 황제의 존재를 지우려고 하는 것이다. 일본은 순종 황제를 위로한답시고 창경궁 안 여기저기를 험루고 동물원과 식물원, 박물관을 세웠다. 그리고서는 창경원이라 이름 붙여 원이라는 한가롭게 노니는 정원으로 만든 것이다. 양반조차 함부로 쳐다보지 못하던 임금의 지엄한 궁궐이 이제 아무나 들어와 짓밟고 다니는 평범한 공원이 되어 버린 셈이었다 항간에는 동물원을 귀신이나 마귀가 세웠다는 둥, 길거리를 떠돌아다니..
-
성종 1484년 경국대전을 반포하며 조선왕조 통치체계를 완성했는데아들을 위한 인문학/한국사 2022. 5. 16. 04:15
태조는 1392년 7월 즉위교서에서 의례와 법례는 고려의 옛 제도를 잠정적으로 그대로 따른다고 했다. 왕조교체로 인한 동요와 혼란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신왕조가 개창되었는데 고려의 법제를 계속 그대로 쓸 수만은 없었다. 조선은 태종 이후 왕권이 서서히 안정되면서 중앙관제와 지방관제가 정비되어 갔다. 그리고 성종대 경국대전이 반포됨으로써 조선의 통치체계는 그 틀이 마련되었다 그 이전에는 태조 1397년 조준 등은 조선왕조 최초의 법전이라 할 수 있는 경제육전을 편찬했다. 그것은 종합법전이 아니고 조문마다 중복되거나 모순되는 경우가 많았다 세조때부터 이러한 부분을 시정하려고 종합법전을 편찬하려 했고 세조 1455년에 양성지의 건의에 따라 육전상정소를 설치하고 본격적으로 경국대전 편찬작업에 착수했다. 편..
-
고려 11세기 9재학당을 설립하여 고려 유학을 발전시킨 최충에 대해서아들을 위한 인문학/한국사 2022. 5. 4. 03:06
거란의 침입과 전화가 아문 뒤 세상은 태평해졌지만 중앙 정부가 교육까지 돌아볼 여력은 없었다. 중앙의 교육기관인 국자감은 유명무실한 상태였고 지방의 향학은 갖추어지기 이전이었으므로 교육에 대한 새바람이 절실하던 때였다. 문종때 고려 유학을 꽃피우게 한 최충은 984년 해주 최씨 최온의 아들로 출생했다. 부친인 최온은 향리 출신으로 해주부터 학문을 좋아했고 글짓기를 잘했다. 또 풍채가 뛰어나고 성품과 지조가 굳건했다. 1005년 목종때 약관 스물살의 나이에 최충은 과거시험에서 갑과 1등으로 합격한 뒤 벼슬길에 나아갔다. 최충은 관료생활 동안 현종, 덕종, 정종, 문종에 이르는 네 왕을 섬겼다. 재상이 되자 법률관을 동원하여 기존의 율령을 개정하고 서산을 고정하는 작업과 형법을 정비하는 작업에 참여하는 등 ..
-
조선의 주자가 되고 싶었던 송자인 송시열의 발자취를 걸어보며아들을 위한 인문학/한국사 2022. 4. 1. 03:15
조선의 송시열의 나라라고까지 연상하게 만든 우암 송시열은 조선후기 정치계와 사상계를 호령했던 인물이다. 조광조와 더불어 조선을 유교의 나라로 만든 장본인이었던 그는 우리나라 학자 중 자를 붙인 유일한 인물로 역사상 가장 방대한 문집인 일명 송자대전을 남겼다. 물론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개개인마다 시대마다 다르겠지만 그가 조선시대에 끼친 영향력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 3천번이나 그 이름이 등장하는 인물로 사약을 받고 죽었음에도 유교의 대가들만이 오르다는 문묘에 배향되었고 전국 23개 서원에 제향되었다. 그의 죽음은 신념을 위한 순교로 이해되었고 그의 이념을 계승한 제자들에 의해 조선사회는 움직였다 송시열은 은진 송씨로 아버지는 송갑조이며 어머니는 선산 곽씨이다. 그의 집안이 회덕에..
-
조선시대의 혈통이냐 명분이냐로 예론과 당쟁의 시대를 살펴보면아들을 위한 인문학/한국사 2022. 3. 28. 03:40
조선왕조의 지배층은 주자학을 선봉하는 양반 사대부들이었다. 따라서 국가의 지배사상으로서 주자학의 영향력이라는 것은 막대하였다. 14-15세기 주자학이 국가통치 이데올로기로 자리잡으면서 조선시대는 이전의 불교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고려시대와는 상당히 다른 사회로 변화해갔다. 가묘, 가례, 소학 등이 보급되면서 이전의 불교윤리는 유교윤리로 대체되고 전국에 퍼져 있던 불교사원들이 사라지는 대신 점차 서원이 발달했다 주자학을 신봉하고 지방에 경제적 기반을 준 이들 사림세력들은 15세기 중종대 조광조의 등장을 계기로 정계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기반인 지방에 향촌 자치규약인 향약을 전파하여 향촌을 교화 와 지배하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일어난 사화는 중앙세력인 훈고파와 지방세력인 사림파간..
-
5백년 조선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 신분 상승이 가능한 과거제라는데 과연 과거제는 어떻게 운영되었나아들을 위한 인문학/한국사 2022. 3. 8. 03:03
과거제도는 중국 수나라에서 처음 시행된 제도로 세습귀족이 아닌 사족 지식인의 등용을 위해 실시된 제도이다. 한국에서는 고려 광종때에 최초로 시행하였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유교지식에 대한 시험을 치러 관리를 등용한 제도는 신라의 독서삼품과이다. 이것은 시험성적에 따라 관리를 등용하는 것이 아니라 참고 사항으로 하는 제도였다. 따라서 6두품 출신들이 독서삼품과의 출세의 한계로 당나라의 빈공과에 응시하여 합격하면 신라로 귀국하면 태수자리를 보장했다고 한다. 빈공과는 주로 신라인이 수석을 하고 발해인도 오소도라는 인물이 수석을 차지하자 최치원이 국가적인 굴욕이라고 하였다 광종이 영입한 후주 출신의 쌍기의 건의에 따라 958년 처음 시행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제술과로 문학적 재능과 정책으로 인재를 뽑은 시험이었고,..
-
실학을 집대성하고 부국강병을 꿈을 꾸었던 정약용은 어떤 분인가 ?아들을 위한 인문학/한국사 2021. 12. 28. 05:07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조선왕조는 점차 정치와 사회질서가 와해되기 시작하고, 서민들의 생활은 더욱 어려워졌다. 게다가 조선조 성리학의 형식적이고도 공리공답적 성격은 유학자들 사이에도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현실의 부조리와 모순, 그리고 양반층의 부패에 대한 자성의 움직임이 일어난 것이다. 조선후기 성리학을 배격하고 실천윤리와 도덕을 주창함으로써 사회현실에 대해 비판적인 학자군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소위 실학자라고 불리는 이들은 기존 양반들과 달리 주자학만의 사유에서 벗어나고자 했으며 사회 부조리를 해결하고자 했다 실학은 17세기 유형원, 이수광 등으로부터 시작되어 18세기 이익, 안정복, 이중환 등 성호학파를 거쳐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유등공 등 북학파들에 의해 발전했다. 이들 실학자들은 ..
-
삼정 수탈 속에 굶주린는 농민들이 일으킨 1863년 진주민란을 어떻게아들을 위한 인문학/한국사 2021. 12. 17. 04:36
1800년 정조의 뒤를 이어 11세의 어린 순조가 즉위했다. 그런데 왕위에 오른 순조가 너무 어렸으므로 영조의 계비였던 정순왕후 김씨가 섭정을 했다. 김대비가 수렴청정하는 동안 대비의 보살핌을 받은 외척 안동 김씨들은 세력을 형성하면서 정권을 쥐락펴락했다. 특히 계비의 후광을 얻고 등장한 김조순은 그의 딸을 순조에게 시집보내고는 왕의 장인이 되어 정권을 쥐었다. 김조순을 비롯한 안동 김씨들이 권력을 독차지하는 동안 중앙이건 지방이건 부정부패가 질펀했고, 탐관오리들이 날뛰었다. 이후 순조, 헌종, 철종 3대 60여 년간 안동 김씨 가문이 모든 권력을 손아귀에 틀어쥔 세도정치가 이어졌다 조선시대 나라의 주요 재정 수입원은 전정, 군정, 환곡의 이른바 삼정이었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토지세와 군복무의 의무를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