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위한 인문학/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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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의 오해와 진실은아들을 위한 인문학/한국사 2021. 2. 4. 04:12
연산군은 성종과 폐비윤씨 아들로 폭군정치의 아이콘으로 불리우는데 정확히 말하면 재위 12년(1494-1506)사이 10년간은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펼치다가 어머니 죽음에 한마디로 맛이가서 태도가 돌변했다고 볼 수 있다. 연산군 10년 치적은 백성을 위해 조세도 감면하고 환곡제도를 실시했으며 명나라 비단기술을 빼오라고 하기도 했으며 여진족과 왜구 침입에 백성들 보호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머니 죽음의 사연을 알고 정신이나가게 되어 갑자사화 후 2년간은 폭군정치를 시행했다고 본다. 연산군은 태종과 세조보다 독재 전제정권을 휘둘렸다고 평가를 하기도 하는데 이 또한 사림세력을 무참히 학살하고 대간을 통해 왕의 심기를 건드리는 삼사를 폐하고 4서3경 등 유학경전 등을 논하는 경연을 폐하고 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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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가 된 세계 최고의 여행기인 열하일기아들을 위한 인문학/한국사 2021. 1. 19. 03:37
청 건륭제 생일에 맞추어 6개월간 박지원의 사절단이 북경에 갔다가 황제가 피서지로 열하에 가 있어 4일간 강을 건너 알현하며 보고들은 사실을 기록한 여행기가 열하일기이다. 박지원은 한때 우울증이 있어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시전에 나가 여러 사람과 대화하여 친화력을 키우고 유모감각도 뛰어났다고 하는데 1780년 사절단에 포함돼 북경에 가게 되었다. 열하일기에서 박지원은 의주에서 장사꾼을 만났는데 청에서 싼 물건이 조선에 비싸게 거래되어 그들의 상술에 비난을 하였고 몽고인을 보고 험상궂어 인간이 아니라고 했으며 심양에 도착하여 도시가 화려하고 수레는 보화가 가득하고 화려한 술집이 있다고 경탄하였다.청은 수레와 도로가 발달되어 있어 조선도 이를 수용하여 재화가 자유 유통하여 값싸게 되어야 한다고 보았으나 그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