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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강대국 미국을 만든 악마의 식물인 감자의 세계사의 이야기는 어떠한가
    아들을 위한 인문학/음식 2021. 10. 2. 05:14

    < 감자의 전파와 유럽의 척박한 지형과 기후>

    남미 안데스산맥 주변이 원산지인 감자가 유럽에 처음 전해진 것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탐험한 이후였다. 유럽인들이 속속 남미로 찾아들었고 그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감자가 발견되고 유럽에 전파되었을 것으로 16세기 초반으로 추정된다. 오늘날 유럽 요리에는 감자가 빠지지 않는다. 16세기 유럽인들에게 감자는 커다란 축복이자 구세주와도 같은 작물이었다. 왜냐하면 토지가 척박한 보리외에는 농사짓기 어려웠던 땅에서도 감자는 잘 자라주었기 때문이다. 한편 유럽의 농경지대는 지중해성 기후로 겨울에 상대적으로 많은 비가 내리고 여름에는 건조한 편이다. 이곳에서 식물은 주로 비가 내리는 겨울동안 생장한다. 지중해 연안 지역의 주요 작물인 밀도 가을에 씨를 뿌리는 겨울작물이다. 유럽인들은 무처럼 줄기를 뻗지 않고 땅속에 저장물질을 축적하는 뿌리채소를 재배했다. 그러므로 감자처럼 땅속 덩이뿌리를 먹을거리로 활용하는 작물을 본적이 없었다

     

    <종교재판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화형에 처한 감자>

    감자의 존재를 몰랐던 유럽인 중에는 처음에 실수로 덩이줄기가 아닌 감자싹과 초록색으로 변한 부분을 먹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여기에는 솔라닌이라는 독성성분이 들어있다. 솔라닌은 현기증이 나게하고 구토를 유발하는 등 중독 증상을 일으킨다. 치사량은 겨우 400밀리그램에 지나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울퉁불퉁한 겉모양 탓에 감자를 먹으면 한센병에 걸린다는 황당한 미신이 퍼지기도 했다. 그리고 감자는 성서의 기록에 나오지 않는 식물이었다. 감자는 씨앗이 아닌 덩이줄기로 번식한다. 그렇다 보니 뿌리줄기로 번식하는 감자가 유럽인에게 기이한 식물로 보인 것이다. 그래서 악마의 식물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한때 중세유럽에서는 마녀재판 등 종교재판이 성행했다. 무시무시한 종교재판정에 악마의 식물로 낙인찍힌 감자가 서게 되어 유죄판결로 화형의 형벌을 받게 되었다. 그 근거는 세상의 모든 생물이 암수의 조화로 자손을 남기는데 감자는 덩이줄기만으로 번식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번식 방법이 성적으로 매우 불순하다는 것이다

     

    <프리드리히 2세가 감자는 귀족만 먹을 수 있다고 한 이유는>

    18세기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2세는 프랑스,러시아,오스트리아 군대와 7년간이나 전쟁을 벌였다. 그 와중에 프리드리히 2세가 감자 보급에 두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은 오랜 전쟁으로 국토가 황폐해지고 식량이 부족해져 그동안 가축 사료로만 쓰던 감자를 가정과 군대의 식탁에 올릴 궁리를 한 것이었다. 그는 감자가 얼마나 중요한 작물인지 보여주기 위해 감자밭에 군대를 배치하여 경계를 서게 하며 사람들의 호기심을 부추기기도 했다. 그러나 별 효과가 없자 농민들에게 감자 재배를 강요하기도 했다. 특별한 묘안으로 앞으로는 이 나라에서 감자는 귀족들만 먹을 수 있다라고 칙령을 내려지자 그 전략은 멋지게 성공했다고 한다

     

    <돼지식량 문제도 해결로 유럽인은 채식에서 육식으로 바뀌었다고>

    유럽에서는 목축문화가 발달했는데 한랭기후로 겨울이 오면 해마다 문제가 생겼다. 그것은 가축을 먹일 먹이가 부족해지는 문제이다. 특히 겨울이 되면 폭설이 자주 내리고 날씨가 추운 탓에 잘 녹지도 않아 꼼짝없이 눈에 갇히곤 하는 독일 북부가 이 문제로 골치를 썩었다. 독일북부처럼 환경이 열악한 지역에서는 겨울이 오기전에 매년 건초를 준비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가축의 일부를 도축해서 건조하거나 소금에 절여두었다가 겨울 식량으로 삼았다. 또 건초를 넉넉히 제공하지 못하면 소도 우유를 충분히 생산하지 못하기 떄문에 겨우내 단백질을 공급받기 위해 여름에 짜둔 우유로 보존식품인 치즈를 만들었다. 감자가 건초를 대신해 가축의 먹이로 활용되었다. 감자는 보존성도 뛰어나고 겨울에도 얼마든지 식량으로 쓸 수 있다. 소는 감자를 먹지 않지만 돼지는 잡식성으로 감자를 먹고 이에 겨울에도 돼지를 사육이 가능해졌다. 결국 감자를 먹여 키운 돼지로 만든 베이컨과 햄, 소시지는 감자와 함께 독일인의 식탁을 풍성하게 채웠다. 한편 감자가 인간의 식량으로도 사용하기 때문에 그때 먹던 보리와 호밀 등의 잡곡을 소에게 먹일로 줄 수 있고 이로 인해 겨울 동안 신선한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섭취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감자가 들어온 후 다양한 고기 요리가 발달하면서 유럽의 많은 나라는 육식문화 국가로 거듭났다

     

    <감자가 괴혈병 예방으로 선원들의 목숨을 살렸다는데>

    대교역시대에 유럽국가들은 바다를 누비고 다녔지만 항상 원인 불명의 괴질에 시달렸다. 당시 뱃사람들을 무던히도 괴롭혔던 괴질은 바로 괴혈병이었다. 오랜 시간 항해하는 동안 선원들은 피부와 점막, 잇몸에서 많은 양의 피를 흘렸고 무지근하게 아픈 통증에 시달리다가 하릴없이 죽음에 이르곤 했다. 괴혈병으로 인한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심각했다. 일례로 세계일주에 성공한 포루투갈의 마젤란 함대는 선원 270명 중 고작 18명만 무사히 귀환했을 정도이다. 남아프리카 희망봉을 도는 항로를 발견하여 역사에 뚜렷한 발자국을 남긴 포르투갈 출신 바스쿠 다가마의 함대 역시 180명 중 100명이 괴혈병으로 사망했다. 괴혈병은 오랫동안 베일에 싸여 있다가 20세기에 들어서서 비타민 C가 발견되면서 비로서 밝혀졌다. 감자는 비타민 C가 풍부하여 괴혈병 예방에 도움을 주었다

     

    <미국을 초강대국으로 만들고 세계역사를 바꾼 감자>

    감자 역병으로 인한 대기근은 아일랜드를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식량이 바닥나고 굶주림으로 고통받던 아일랜드 사람들은 고향을 버리고 신천지로 여겨졌던 미국을 향해 길을 떠났는데 그수가 400만명에 달했다. 19세기 중반 미국은 서부개척을 끝내고 바야흐로 본격적인 공업화 단계에 들어서고 있었다. 이 시기에 미국으로 이주한 수 많은 아일랜드인은 대규모 노동자 집단으로 변신해 미국 공업화와 근대화에 크게 기여했다. 결국 대규모 노동력 유입으로 국력을 키운 미국은 초강대국 영국을 앞지르며 세계 최고의 공업국가로 올라섰다. 1840년대 아일랜드 대기근으로 인한 미국으로의 이주민 중 성공한 대표적인 인물로 J.F 케네디의 할아버지 패트릭 케네디가 있다. 마흔세살의 젊은 나이에 제 35대 미국 대통령이 된 케네디는 달 탐사 계획을 추진한 주인공으로도 유명하다. 그밖에 레이건과 클린턴, 오바마 등 여러 대통령도 아일랜드계이고 디즈니랜드를 만든 월트 디즈니와 맥도날드의 창업자인 맥도날드 형제 역시 아일랜드계이다

     

    <카레라이스를 처음 만든 주인공은 인도인이 아니라고>

    카레는 채소와 고기 등의 건더기를 의미하는 타밀어 카리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또는 밥에 얹어 먹는 소스라는 설도 있다. 인도를 식민지로 삼은 영국은 향신료를 활용한 요리를 통틀어 카리라고 불렀다. 영국인들은 인도산 쌀로 지은 밥에 향신료를 버무려 만든 마살라를 얹어 카레라이스를 만들었다. 인도 북부에서는 화덕에 구운 납작한 빵 난을 먹고 남부에서는 쌀을 주식으로 한다. 카레를 영국에 전한 워런 헤이스팅스는 쌀을 먹는 벵골지역에 주재해서 밥과 카레 스튜를 조합한 요리를 본국에 소개했다. 영국인들은 쌀은 주식이라기보다 채소와 비슷한 감각으로 받아들였을 것으로 판단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은 향신료를 조합한 카레 가루를 개발했다. 그로 인해 대중화가 되었고 이 스튜에는 뱃사람들의 식량 중 하나였던 감자가 들어갔고 카레라이스는 영국 해군의 식사로 배급되었다. 영국 해군이 즐겨 먹던 국물없이 걸쭉한 카레가 바로 오늘날 우리가 즐겨 먹는 카레라이스 원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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