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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탕트가 군인들이 전쟁이 끝나면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인 텐트접기에서아들을 위한 인문학/일반상식 2021. 9. 23. 07:00
데탕트는 적대관계에 있던 진영이나 국가들 사이에 긴장이 풀려 완화된 분위기 혹은 그것을 지향하는 정책을 말한다. 한국어로 말하자면 긴장완화이다. 여기서 말하는 긴장은 군사적 대립에서 오는 것이다. 어원상으로 이 단어는 야영장에 있는 텐트와 관련이 있다. 어원은 텐테레에서 잡아당기다라는 뜻이다. 12세기 프랑스에서는 탕트가 14세기 영어는 텐트가 생겼다. 텐트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주로 군인이었고 군인들은 전쟁 중에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잠을 잘 수 밖에 없다. 자연스레 비나 이슬 등을 피하고자 큰 천의 네 모퉁이를 당겨 고정시키고 그 밑에 들어가 자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게 아마 텐트의 초창기 모습일 것이다. 전쟁터는 수천명의 군인이 펼친 텐트로 거대한 진영을 이룬다. 멀리서 이러한 모습을 보면 절로 군사적 긴장이 느껴진다. 그런데 텐테레 앞에 부정을 나타내는 데를 붙이면 데텐테레 즉 텐트를 접다라는 의미가 된다. 프랑스어로는 데탕트가 바로 여기서 파생한다. 데탕트를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당긴 것을 풀음이라는 뜻이다. 당긴 것이란 천의 네 모퉁이를 고정시킨 줄이었다. 이처럼 줄을 풀어 텐트를 접는다는 것은 전쟁이나 전투를 종료한다는 의미이다. 이 단어를 정치적으로 큰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은 20세기 중반부터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진영과 소련 중심의 사회주의 진영이 팽팽히 맞서는 냉전체제가 만들어졌다. 1960년말이 되어서야 분위기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서독과 일본의 급성장, 제3세계의 대두, 중국과 소련의 분쟁 등으로 국제 정치는 이념보다 자국의 실익을 우선하게 되었다. 또한 영국, 프랑스, 중국 등이 핵무기를 보유하면서 국제 질서는 양극체제에서 다극체제로 변하기 시작했다. 1969년 미국은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고 1972년 닉슨이 모스크바와 베이징을 방문해 미국과 소련간 화해 분위기를 조성했다. 1970년 8월 서독과 소련이 불가침 협정을 맺고, 1973년 동독과 서독이 국제 연합에 동시에 가입함으로써 긴장 완화에 일조했다. 1975년 7월 헬싱키에서 유럽 안보 협력회의 35개국 정상회담이 열리면서 동서간의 데탕트는 절정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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