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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肝膽相照(간담상조)와 强弩之末(강노지말)에 대한 유래는 어떠한가 ?
    아들을 위한 인문학/한자 고사성어 2021. 7. 22. 04:22

    肝膽相照(간담상조)

    간과 쓸개가 서로 비춘다는 말로 친구 간에 서로 진실을 털어놓고 허물없이 사귄다는 뜻이다

     

    한유는 당나라의 뛰어난 문장가로서 그보다 다섯 살 어린 유종원과 함께 고문운동을 이끌면서 글로써 도를 실어야 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복고와 숭유, 척불을 주장했다. 환관 출신인 그는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유가의 깊은 학문을 익히고 문장가로 명성이 자자했으며 환관 출신으로 일찌감치 진사에 급제하여 관직에 발을 들여놓은 유종원과 깊은 우정을 맺었다. 유종원은 순종이 즉위한 후 왕숙문 등이 주도하는 정치개혁에 적극적으로 가담했으나 당시 수구파와의 싸움에 밀려 소주자사로 내려가고 다시 10년 동안 영주사마로 좌천되어 지냈다. 그는 이 기간에 천하의 명문을 많이 남기기도 했다. 마흔 두 살에 유주자사로 거듭 좌천되어 5년 후에 세상을 떠난 유종원을 위해 한유는 <유자후묘지명>이라는 글을 썼는데 이 글에서 한유는 유종원의 가세와 생애, 교우관계, 문장의 풍모, 정치적 재능 등을 소상히 적었다. 바로 여기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아 선비가 궁하면 곧 절개와 의리를 볼 수 있다. 한유는 이렇게 한탄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날 평상시에는 골목에서 서로 그리워하고 기뻐하고 술 마시고 밥 먹으며 즐겁게 희희락락하고 서로를 찾고 좇으며, 기뻐 들떠 있으면서 억지로 웃고 서로 아래를 차지하겠다고 말하며 악수하고 폐와 간을 서로 보여주고 해를 가리켜 눈물을 흘리고 생사를 서로 배반하지 않는다고 맹세하여 참으로 믿을 만한 것 같았다 하루 아침에 겨우 머리카락에 비교될 만한 작은 이해를 만나면 도리어 서로 모르는 사람처럼 눈을 돌린다, 함정에 빠져도 손을 뻗어 구해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깊이 차 넣고 돌을 던지는 게 대부분이다. 이런 행위는 짐승이나 오랑캐도 차마 하지 못하는 바인데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 계책을 얻었다고 자부하나, 유자후의 풍모를 들으니 또한 다소 부끄럽다고 할 수 있다

     

    强弩之末(강노지말)

    강한 쇠뇌(여러개의 화살이나 돌을 연달아 쏘개 되어 있는 큰 활)의 끝이라는 마로 영웅이라도 세력이 없어지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함을 뜻한다

     

    중국 후한시대의 역사가 반고가 쓴 기전체 역사서 <한서>와 사마천 <사기>에 나온다 한나라 때 한한국이라는 이가 있었다. 그는 법령을 어겨 관직을 박탈당했다가 무제의 조정에서 태위로 있던 전분에게 뇌물을 주어 도위가 되었고 훗날 어사대부까지 올라갔다. 하루는 흉노가 사자를 보내 화친을 요청했다. 무제는 이 문제를 대신들과 상의하여 결정하기로 했다. 오랫동안 변방에서 근무한 왕희가 말했다. 우리나라가 흉노와 화친을 한다 해도 몇 년 지나지 않아 흉노가 또 다시 약속을 어길 테니, 받아들이지 말고 군대를 일으켜 치는 편이 낫습니다. 그러나 한안국이 말했다. 천리 밖으로 나가 싸우는 것은 군대에게 이롭지 못합니다. 지금 흉노는 병사가 강하고 말이 튼실한 것만 믿고 금수 같은 마음을 품고 새 떼처럼 흩어졌다 모였다 하며 이리저리 옮겨 다니므로 제압하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그 땅을 얻더라도 땅을 넓혔다고 할 수 없고, 그 백성을 가진다고 해도 강성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상고시대부터 그들을 예속시켜 천자의 백성으로 취급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 군대가 수천 리 밖에서 그들과 이익을 다툰다면 사람과 말이 지칠 테고, 흉노는 우리 군대가 지친 틈을 타서 제압할 것입니다. 강력한 노쇠도 끝에 가서는 아주 얇은 노나라 비단조차 뚫을 수 없고 회오리바람의 끝은 가벼운 기러기 털조차 움직일 수 없습니다. 처음부터 강력하지 않은 게 아니라 끝에 가서는 힘이 쇠약해지게 마련입니다. 흉노를 치는 것은 불리하니 화친하는 편이 더 낫습니다. 무제와 대신들은 한안국의 의견이 타당하독 여겨서 흉노와 화친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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