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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성한 소와 관련하여 인도 요리에 대해
    아들을 위한 인문학/음식 2026. 6. 11. 01:13

     

    소는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을 도와 딱딱한 밭을 일구어온 몸집이 큰 가축이다. 메소포타미아나 크레타섬 같은 지중해 연안 지역에서 소는 성스러운 동물로 취급되어 왔다. 특히 인더스 문명 이래 인도는 흑소를 신 그 자체로서 존중하고 있다 현재도 1.8억마리의 소를 기르고 있는 인도는 소와 인간이 공존하는 나라다. 당연히 인도는 소고기의 섭취를 피했다. 인도에서는 소는 죽여서는 안 되는 존재였으며 그 울음소리는 아름다움의 극치로 여겨졌다. 그러나 인도에서 우유는 인간에게 신비한 활력을 주는 영양원으로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우유는 더라고 불렸는데 젖을 짠다는 뜻이다. 대서사시 라마야나에는 가루다가 젖의 바다를 저어가 신들의 음료인 암라타를 가져오기 위해 애쓰는 이야기가 나온다 우유는 여러 식물의 기원이 되는 자양분이자 풍작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요구르트는 우유를 끓여 냉각시킨 것잉나 전날 만들어둔 유제품을 소량 섞어 발효한 것으로 인도에서는 다히라는 플레인 요구르트를 자주 마셨다. 불교의 창시자인 고타마 싯다르타도 금식 수행으로 체력이 쇠약해졌을 때 수자타라는 이름의 소녀에게 요구르트를 받아 기력을 회복했고 이윽고 부다가야의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좌선에 들어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불살생 즉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지 않는 것을 중시하는 인도에는 당연히 채식 메뉴가 많고 대부분의 요리에 다히와 더불어 파나르라는 생치즈를 넣는다. 그리스 로마 시대에도 소는 그 뿔이 달의 형상을 닮았다고 하여 성스럽게 여겨졌고 우유는 신에게 바치는 공물이었다. 우유에 담긴 신비한 힘을 믿었던 것이다.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최후의 여왕 클레오파트라 7(기원전 69-기원전 30)가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우유 목욕을 즐겼다고 한다. 로마제국에서 우유를 마셨다는 기록은 없고 17세기부터 우유를 마셨다는 유럽 기록이 있다. 인도에서는 요구르트를 항아리 안에서 잘 섞은 뒤 가열, 탈수 작업을 거쳐 기라고 하는 버터 오일을 만들어 다양한 요리의 베이스로 이용했다. 인도사람들은 기나 요구르트 같은 우유 가공품을 먹으면 신의 에너지가 인간의 몸속에 들어온다고 믿었다.

    인도하면 커리를 생각하는데 인도에는 우리가 흔히 일본식 발음인 카레라고 부르는 이 음식이 없다. 인도에는 마살라라고 하는 각종 향신료 혼합한 조미료 종류가 있는데 이중 가람 마살라로 맛을 낸 요리가 우리가 아는 커리다. 커리라는 이름은 18세기에 인도를 지배한 영국인이 붙인 것으로 이후 일본이 영국 해군을 통해 이 요리를 접한 후 밥에 얹어 먹는 형태로 변형시켜 일본식으로 카레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커리에 들어가는 마살라는 강렬한 황금빛의 터메릭(강황)을 중심으로 후추와 계피, 정향, 육두구 등 30-40 종류에 달하는 향신료를 혼합한 것으로 오늘날에는 매운맛을 내는 칠리를 넣기도 한다. 인도에는 각 가정마다 고유의 커리가 있다고 할 정도로 다양한 조합법이 있다. 인도가 향신료의 집산지였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커리의 어원에 대해 남인도의 타미르어로 향신료가 들어간 소스를 의미하는 카리라는 말에서 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대항해 시대에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도착한 포르투갈인이 조미료 카리를 요리 이름으로 착각하여 그대로 유럽에 전한 것이 오해를 샀다는 것이다. 조리료 자체가 매우 중요한 인도만의 독특한 요리 문화를 포르투갈인이 이해하지 못해 생긴 일일 것이다

    생강과의 여러해살이풀인 터메릭은 뿌리줄기가 커지면 말린 후 가루를 내어 분말 상태의 향신료를 만든다. 인도 상인들의 벵골만과 믈라카 해협을 통과해 진출한 동남아시아에서도 터메릭을 왕성하게 재배하였다. 특유의 황금색은 고귀한 색으로 환영받았고 화장품과 염료의 재료일뿐 아니라 부정한 것을 쫓는 용도로도사용되었다. 15세기 후반에는 태국과 믈라카 등지까지 왕성하게 교역했으며 오키나와에도 터메릭이 전해졌다. 인도의 터메릭은 서양에도 파상적으로 전파되었다. 인도양 교역을 통해 로마제국에 터메릭이 전해진 것은 1세기 무렵의 일로 테라메리타라고 불리었다. 여기에서 영어 단어 터메릭이 나왔다. 본격적으로 유럽에 들어온 것은 대항해 시대 이후인 16세기로 값비싼 착색료인 사프란의 대용품으로 사용되었다. 인도와 직접 교역을 시작한 포르투갈인은 터메릭을 인도의 사프란이라고 부르며 사프란의 저렴한 대용품으로 팔았다.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등지에서는 터메릭을 통칭 쿠르쿠마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산스크리트어로 사프란의 원료인 크로커스를 쿤쿠마라고 칭한 데 있다 중국에서는 터메릭을 울금이라고 하는데 울창한 황색 식물이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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