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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데아사상 등이 수록된 플라톤의 국가에 대해서
    아들을 위한 인문학/철학 2025. 5. 29. 03:00

    국가는 플라톤의 사상을 집약한 책으로 기원전 4세기에 편찬 됐으며 플라톤의 가장 위대한 저서일 뿐만 아니라 국가의 후속편인 법률과 함께 사장 방대한 저서에 속하기도 한다. 플라톤은 장장 10권에 걸쳐서 소크라테스의 주특기인 문답법을 통해 철학적 논리란 이렇게 펼쳐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흔히 국가라고 일컫지만 폴리테이아라는 그리스어의 본뜻은 정치체계에 가깝다고 한다. 실제로 이 책은 이상적인 정치 체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올바름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화가 주를 이룬다. 그래서 정의에 대하여라는 별칭이 붙었을 정도다. 플라톤은 이러한 올바름을 추적하기 위해 갖가지 주제를 다루며 정치철학, 예술철학, 인식론, 교육학, 미학 등을 넘나든다. 이런 까닭에 서양 철학은 모두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플라톤은 모든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국가가 올바르게 서야 한다고 봤으며 국가가 올바르게 서기 위해서는 이데아(사물의 원형)가 실현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이데아를 실현하는 사람 즉 철학자가 통치하는 국가가 이상적이라고 보았다. 그 밑으로 철학자를 보좌하는 수호자 계급(군인)과 다스림을 받는 생산자 계급(농민 등)이 존재한다. 이 세 계급은 각기 이성, 기개, 욕망을 나타내는데 이는 플라톤이 인간의 영혼을 세 부분으로 나눈 것과 일치한다. 이 영혼의 세부분은 각각 지혜, 용기, 절제라는 고유한 덕을 가지고 있다. 이성은 지혜로 다른 자질들을 다스리고, 기개는 용기로 이성을 보좌하고 욕망을 다스리며, 욕망은 절제를 준수하며 다스림을 받는다. 이런 의미에서 국가의 통치술과 영혼의 통치술은 대응된다.

     

    < 이데아론 : 동굴우화 >

    국가는 대부분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으로 구성되지만 형상론 즉 본질적인 이데아론은 플라톤 본인의 사상이다 이것이 가장 잘 표현된 부분이 바로 동굴 우화이다. 이 동굴 우화는 형이상학의 본질을 제시하며 시대를 초월한 메시지를 전한다. 소크라테스는 대담자들에게 오직 작은 구멍을 통해서만 외부 세계의 빛이 들어오는 동굴 속의 한 무리 사람들을 상상해보라고 한다. 평생을 동굴에서 보낸 그들은 정면의 벽만 볼 수 있고, 고개를 돌려 빛을 볼 수 없도록 사슬로 묶어 있다. 그들 뒤편에는 영원히 타오르는 불이 있고, 이 불과 그들 사이로 사람들이 줄지어 동굴 모형을 비롯한 갖가지 물건을 운반하고 있어, 이들의 그림자의 수감자들이 보는 벽면에 투사된다. 사슬에 묶인 자들은 오직 벽에 비친 이 행렬의 그림자와 자신들의 그림자만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실재란 벽면에 비추어진 평면적인 그림자이지 결코 그림자를 만들어낸 본래의 형상이 아닐 것이 분명하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와서 수감자 한 명을 풀어준다. 이 수감자가 지금껏 자기들이 보아온 것이 투사체임을 알고 그 깨달음에 기뻐한다. 그는 태양이 세상의 진짜 빛이고 모든 지각을 가능케 하는 원천임을 깨달게 된다. 한편 플라톤의 선의 형상을 태양에 비유하여 선을 깨달기란 쉽지 않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또 다른 부분에서 그는 동굴 밖으로 나간 여행을 생성에서 실재로 조건부 실재에서 절대적 실재로 즉 세속적인 인간의 경험에서 실재의 순수한 빛으로 이동한 것으로 설명한다 이 동굴 우화는 우리 대부분이 그림자를 좇고 외양을 신봉하며 평생을 보내지만, 그런 피상적인 감각의 세계 뒤에는 보다 영구한 진리의 영역이 버티고 있음을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소중하다

    < 정의에 따르는 보상 >

    국가는 사실 소크라테스가 정의의 의미를 논하며 시작된다. 케팔로니는 정의가 단순히 진실을 말하고 빚을 지면 반드시 갚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비교적 부유한 상태로 죽음을 맞이하게 될 텐데, 재산이 많아 남에게 빚을 지지 않고 평화롭게 죽을 수 있어 좋다고 말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그보다 더 진실하고 좋은 삶을 사는 방법은 없느냐고 묻는다. 글라우콘과 아데이만토스는 불의를 옹호하면서 자기 좋을 대로 살고도 비난받지 않고 심지어 번영까지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글라우콘은 정의가 그 자체로 좋은 것은 알겠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 어떤 도움이 되느냐고 소크라테스에게 되묻는다. 그는 사람들은 들킬 것이 두려운 경우에만 정의롭게 행동할 뿐, 정의 자체를 위해 훌륭히 행동하는 데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것이 글라우콘의 주장이다. 소크라테스는 정의롭게 행동하는 것은 부차적인 선택 사항이 아니라 인간이 존재의 중심축이라고 말한다. 만일 선한 의도의 행동이 결여된다면 그 삶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의는 개인의 삶에서도 필수적이지만, 좋은 국가의 중심 강령으로서도 대단히 중요하다

     

    < 영혼의 세부분 >

    플라톤은 인간의 영혼을 세 부분, 이성, 기개, 욕망으로 나눈다. 이성은 영혼을 감독하며 전체적으로 최선의 결과를 추구한다. 그리고 결단력과 양심을 부여한다. 기개는 야망과 진취력을 북돋우는 한편 분노, 자만심, 수치심 같은 감정을 유발한다. 욕망은 단순한 식욕, 수면욕, 성욕 같은 기본적 욕구를 말한다. 개인은 기개와 욕망에 몸을 내맡기지 않고 이성을 통해 이를 조정하고 이끌 때 정의로워지며 그 이성은 기본이 되는 보편적 형상인 선에 관한 지식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이로써 균형에 도달하고 우리의 행위는 자연히 우리 주변 세계와 조화를 이루게 된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에르의 신화를 소개한다. 에르는 신들의 허락을 받고 생과 생 사이에서 영혼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지켜본 사람이다. 에르는 영혼들이 다음 생에 부자가 되거나 유명해질 가능성에는 쉽게 흔들리면서도 그 삶의 정의로운지를 따져보고 선택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여기에서 올바른 길을 추구하는 것이 영원히 행복하고 충만한 삶으로 향하는 길이란 것이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오로지 철학자만이 영혼의 세부분 간의 균형을 제대로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철학자이 주된 바람은 세상이 가능한 한 좋아지는 것이고 이를 달성하는데 도움이 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본능적 욕망을 포기한다. 절대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과 심리적 정신적으로 균형이 잡힌 사람은 이런 자질이 결여된 나머지 사람을 도울 의무가 있다 이것이 플라톤의 정의론과 국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상국가의 비전과의 연결고리다

    < 이상적인 국가 >

    플라톤은 당대의 실패한 정부 유형 금권정과 과두정, 참주정 등 다양하게 살펴보지만 그가 진짜 주목하는 것은 아테네의 민주정이다. 민주정이란 자유로운 남성 시민들이 정기적으로 만나 특정한 안건에 대해 투표하고 행정은 오백인회에 맡기던 민회였다. 직접 민주주의의 문제는 외교와 경제와 관련한 복잡한 사안들이 특정일에 투표하러 오는 사람들의 비이성적인 변덕에 좌우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오백인회는 임기가 1년으로 제한되어 전략적이고 장기적인 사고는 기대하기 힘들었다. 아테네 지도자들은 국가의 백년대계를 세우길 기대하기 어렵고 유권자들이 들기 좋은 말로 권력을 얻느라 여념이 없다. 그 결과 즐겁고 무정부인 상태,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는 정체였다. 플라톤이 제시한 대안은 오로지 국가의 선을 위해 일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철학자들로 구성한 엘리트 지배 체제였다. 수준 높은 교육을 받고 똑똑하며 정신적으로 고양되고 강직한 이런 개인들이라면 차라리 이 외양 세계의 기저를 이루는 영원한 형상(진선미)을 고찰하며 숙고하는 데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할 터였다. 그러나 그들은 모든 것을 아는 극도의 희열을 포기하고 이 지리멸렬한 세계로 돌아와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통치할 것을 요구받았다. 특히 플라톤은 군인이 지배하는 사회는 항상 전시 상태를 유지하며 시민들의 자유를 제한할 것이다. 기업가가 운영하는 사회는 질시와 물질만능주의로 점철될 것이고 노동자들이 운영하는 정부는 다른 국가와의 관계를 적절히 조율하기에는 좋은 통치에 대한 지적 소양이 부족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오늘날에는 한 국가의 성격이나 자질이 그 국민들의 속성과 합쳐져 결정된다고 보는 편이 더 일반적이겠지만 플라톤은 정반대로 그는 국가와 윤리가 개인의 행위를 주도하고 형성한다고 본 것이다

    < 문화 규제와 양성 평등 >

    국가에서 논쟁적인 부분은 플라톤의 문화 규제에 관한 논의다. 그는 당대의 유명한 시와 이야기들이 올바른 도덕적 가치를 심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에 따르면 교육은 선의 개념을 주입하는데 주력해야 했다.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엄격히 통제하여 아이들의 뇌가 부정적인 이미지들로 가득 차지않도록 주의해야 했다. 시민들이 접하는 문학도 거짓말, 방종, 폭력 등을 미화하지 않도록 규제가 필요했는데 그런 요인들은 자연스레 정신을 더럽히고 약화시켜 국가라는 배를 침몰시킬 것이기 때문이었다. 또 나쁜 인물이 행복해지거나 정의를 희생시켜 승리하는 이야기, 착하게 살면 손해를 본다는 주장하는 이야기는 더욱 좋지 않았다. 한편 양성평등에 대해서는 진보적이었다. 그는 여성을 약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대부분 잘못이라고 지적하며 지배자로서 적합한 여성은 남성과 똑같은 교육을 받고 유사한 기회를 얻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가족생활에 관해서는 그것이 사적인 영역이 아니라 국가의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는 식으로 대단히 냉정하게 보았다. 그리고 올바른 사람끼리 결합할 수 있도록 결혼과 성을 규제하자고 주장했다. 이런 엘리트의 아이들은 국가 보육시설에서 돌보아서 부모들이 자유롭게 정부에 헌신할 수 있게 해줘야 했다. 플라톤은 평생 결혼하지 않았는데 그의 이런 견해와 결코 무관하다고는 볼 수 없다

    < 플라톤은 누구인가 >

    도시국가 아테네의 유서 깊은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인생 초년기에 대해서는 별로 알져진 게 없지만 스승인 소크라테스에 이끌려 철학에 입문하기전에는 시학에 빠져 있었다고 전해진다. 아테네 기득권을 위협하던 소크라테스의 죽음(기원전 399)에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등 같은 작품으로 기록했다. 소크라테스의 사망 후 그리스, 이탈리아, 이집트 등을 두루 여행하며 철학자 피타고라스를 추종하는 사상가들과 어울렸다. 40대에는 아테네로 돌아와 그 유명한 아카데미를 세웠다. 이곳은 철학, 수학, 과학의 경계를 넓히며 아테네 지식의 본산으로 자리매김했다. 소크라테스가 죽기 전에 플라톤은 정계입문을 시도했는데 한번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가 스파르타에게 패한 후였고, 또 한번은 1년 뒤 민주주의가 회복되었을 때였다. 하지만 이러한 경험으로 정치에 환멸을 느낀 그는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정부를 구성해야만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결론짓고 자신이 생각하던 이상국가를 국가로 정리했다. 아카데미에서 저술과 학문활동을 계속하다가 기원전 34780세로 생을 마감했다

     

     

     

    영광의 자리를 홍차에게 빼앗긴 영국 커피

     

    런던 한 모퉁이에 커피하우스가 문을 1652년에 열었는데 이는 허름한 가게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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