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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르망디 작전에서 활약한 전서구(傳書鳩)에 대해서
    아들을 위한 인문학/동물 2024. 11. 28. 03:00

     

    18709월 프러시아 군대가 동맹인 독일군과 함께 파리를 포위했다. 도시가 에워싸이고 도주로를 차단당하고 구원군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채로 파리 시민은 길고 배고픈 겨울을 맞이했다. 구원군에게 전보를 보낼 전선은 잘려, 파리에서 외부와 접촉할 주요 통로는 우편물을 실은 열기구뿐이었다. 이때 수천년 동안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되어준 동물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바로 전서구로 활약한 비둘기였다. 프랑스인은 비둘기가 독일군 전선 밖에 내려앉으면 비둘기에게 메시지를 달아서 포위 중인 수도로 돌려 보냈다. 이때 메시지를 전달하는 물건은 최신 제품인 마이크로필름이었다. 수신인은 비둘기에게서 필름을 떼어내 환등기를 이용해 비춰본 뒤 내용을 기록하여 전달했다. 360마리의 비둘기 중 1/6만이 파리로 되돌아왔음에도(프러시아인들이 총을 쏘고 매를 날려서 비둘기를 떨어뜨렸다) 파리에는 6만건 이상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포위작전은 18711월 끝났다. 독일군은 파리에 입성했고 전서구의 독특한 재능은 기려졌다.

     

    전서구는 해안가 절벽 지대나 산지에 서식하는 공작 비둘기를 길들인 것이다. 기원전 3000년 이래로 선발 사육되었으며 인간에게 길러지다가 탈출한 비둘기들은 전 세계 마을과 도시에 퍼졌다. 전서구는 900km 이상의 낯선 지역까지 날려 보내도 둥지를 찾아 되돌아올 수 있다. 힘차게 날면서 시속 90km까지 속도도 낼 수 있다. 과학자들은 전서구가 지구의 자기장을 감지해 길을 찾는다는 설을 제기했다. 하지만 연구결과에 따르면, 지표를 기억해 길을 찾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덕분에 1840년대 전신이 발명되기 전까지는 원거리로 메시지를 보낼 때 전서구가 가장 빠르고 가장 믿을 만한 통신수단이었다. 파리 공성전에서 전서구가 보여준 활약을 지켜본 유럽국가들은 전쟁시 전신 채널이 파괴되었을 때 전서구가 메시지 전달 역할을 할 수 있음을 깨닫고 전서구를 육성했다. 영국은 뒤늦게 이 대열에 합류했지만 자신들이 뒤처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꼈다.이런 전서구 공백에 메운 크나큰 촉진제 역할을 한 사람이 오스만이었다. 그는 비둘기 사육사, 비둘기 경주에 돈을 거는 수천 명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주간지의 사주였다.

     

    오스만은 1914년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마자 비둘기 전쟁 자원 봉사단이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오스만의 첫 번째 임무는 영국 동부 해안을 따라 조밀하게 연결된 거점망을 구축해 배와 수상 비행기가 북해에서 활동하는 적국의 해군 정보를 본부에 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후에는 서부전선에서 개조 버스 꼭대기에 60마리 이상의 전서구가 내려앉을 수 있는 이동식 거점을 설치, 배치하는 작전을 감독했다. 전신이 분소와 본청을 연결해주었지만 포격으로 전신망이 부서지곤 했고 즉시 수리할 수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서구는 전선에 있는 군인들 사이는 물론 인적이 뜸한 지역까지 날아가 군 상층부에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다. 전차 부대가 전서구를 싣고 이동할 때는 이따금 비둘기들이 석유 연기로 인해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벨기에 간첩들은 독일 전선 뒤쪽으로 낙하작전을 수행할 때 전서구를 바구니에 담아 갔으며 전서구는 적의 정보를 챙겨 되돌아갔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오스만 협회는 전서구 조련사 350명 이상을 보유하고 10만 마리의 새를 각처에 보낼 정도의 규모가 되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 군은 휴대용 야전 전화와 무전기를 이용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새로운 기술에는 기술적인 결함이나 파손 혹은 신호 중첩과 신호 방해 등의 문제가 남아 있었다. 다시 한번 영국 정부는 전서구로 눈을 돌렸다. 19406월 당국은 비둘기 사육사에게 전서구를 전쟁에 투입해달라고 호소했다. 19414월 시작된 콜룸바 작전에서 전서구는 또 다시 야심차게 날아올랐다. 영국 공군은 덴마크에서 프랑스까지 나치가 점거한 유럽 전역에 전서구 16,554마리를 떨어뜨렸다 전서구 다리에 매단 통 안에는 봉투와 설문지가 들어 있었는데 발견한 사람들이 내용을 기입해서 통에 다시 담아 보내도록 했다. 거기에는 독일군의 움직임과 위치, 포격 예정지, 심지어 BBC방송을 듣고 있는지 등의 정보를 보내달라는 요청이 담겨 있었다. 특히나 노르망디에 상륙하기 전날 독일군의 배치를 예상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내용이었다 전서구는 특히 폭격기에 탄 공군에게 중요했다. 이들은 방수 처리한 특수 통에 비둘기를 챙겼고 비둘기들은 구조대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를테면 1942년에 영국의 한 조종사는 폭격기가 북해에 처박히자 전서구 윙키를 날려 보냈고 윙키는 던디 인근의 자기 둥지까지 190km를 날아갔다. 구조 명령이 떨어지고 조종사는 15분 후에 발견되었다. 1943년에 윙키는 이 공로로 군과 민방위를 위해 동물의 용맹을 기리고자 만든 디킨 메달을 최초로 받았다.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31마리 이상의 전서구가 기려졌다. 전서구는 여전히 육성되고 있지만 쪽지를 전하는 역할보다는 비둘기 경주에 참가하며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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