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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산업국가를 이룬 영국에 대해서아들을 위한 인문학/경제 2024. 10. 15. 03:17
영국은 인류 최초의 자본주의 국가의 전형을 만들었다. 경제발전으로 부를 축적한 성공 사례의 특징을 조합한 결정체와 같다. 바빌로니아제국이나 로마제국보다 더 강한 군사력을 해외에 펼치는 능력을 갖추었다. 경제력에서는 네덜란드의 수준을 앞질렀다. 대영제국의 영토는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을 능가했다. 경제적인 힘과 통치 영역이 모두 최고조에 달했다. 영국은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와 제노바인 도시국가들처럼 상인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정부를 가졌고 무역 증진을 위해 오대양을 누비는 함대를 운영했다. 또한 군주를 내세워 국가의 통일성을 강조했다. 동시에 의회를 발전시켜 산업의 이익을 위한 목소리를 대변했다. 경제를 위한 국가체제로 영국이 1840년 즈음에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자본주의 국가 전형은 이후 전 세계 국가들의 모델로 부상하게 되었다. 한편 그레이트 브리튼이 만들어질 때는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왕실이 합쳐진 1707년과 빅토리아 여왕이 즉위한 1837년 사이라고 역사학자는 말한다. 이 시기에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의 세 개 민족이 프로테스탄트 종교와 의회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 그리고 세계를 지배하는 대영제국을 중심으로 통합되어 하나의 새로운 민족이 되었다고 했다. 영국이라는 민족이 만들어지던 1776년 스코틀랜드의 출신의 경제학의 아버지 스미스는 국부론을 출간했다. 민족형성과 경제발전의 공명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국부론의 원제는 민족의 부의 본질과 원인에 대한 연구다. 스미스가 국가가 아닌 민족을 강조한 것은 정부보다 민간사회에서 창출하는 부의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스미스는 부의 본질을 축적된 재산이 아니라 상품을 생산해낼 수 있는 민간사회의 능력이라고 역설했다. 또 부의 원인으로 분업을 꼽으면서 시장이 클수록 분업이 촉진되고 경제는 발전할 것이라고 했다. 영국의 형성은 카스티야, 아라곤 등의 왕국이 정략결혼을 통해 스페인이라는 통합왕국으로 발전했듯이 영국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왕실이 결합함으로써 새로운 통합왕국을 형성하는데 성공했다. 스페인에서는 카스티야가 지배적 위치를 점한 채 다른 지역을 차별했다. 반면 영국은 잉글랜드를 중심으로 통합했지만 다른 지역을 차별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끌어안았다. 새로운 민족 형성에 결정적으로 이바지한 것은 16세기부터 등장한 프로테스탄트라는 종교적 동질성이었다. 그 시기 영국은 네덜란드와 유사하게 종교적 선민사상이 강했다. 스스로 제 2의 예루살렘이라고 할 정도로 신의 선택을 받은 자유롭고 강한 민족이라고 생각을 폭넓게 공유하고 있었다. 영국의회는 귀족과 상인의 이익을 대변하는 장이었는데 1689년 명예혁명을 계기로 왕권을 통제할 수 있는 본격적인 권력 기반을 마련했다. 영국의 국왕은 반드시 프로테스탄트를 믿어야 한다는 원칙이 점차 확고하게 뿌리내렸다
18세기부터 1815년까지 영국과 프랑스는 끊임없는 전쟁을 치렀다. 14-15세기 백년전쟁부터 따져보면, 수백년을 경쟁하며 전쟁을 치른 악연이다. 두나라는 각각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을 대표하고 정치경제 제도도 아주 다르다. 프랑스는 국가가 경제를 주도하는 관 중심의 구조인 반면 영국은 사회와 시장이 활발하게 경제를 이끌어가는 형식이었다. 그에 따라 순수과학은 프랑스가 기술과 응용분야에서는 영국이 민간사회의 특유한 창의력으로 만개했다. 한편 영국이 산업혁명이 시작된 큰 이유는 기본적인 혁신은 증기기관을 경제활동에 활용한 것인데 이 과정에서 에너지 자원인 석탄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영국은 석탄으로 이뤄진 섬이라고 할 정도로 천혜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영국은 철도와 증기기관차, 증기함선과 방직기계 등 산업혁명의 첨단 부문에 마음껏 석탄을 공급할 수 있었고 이는 영국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다음은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밀을 비롯한 주요 식량을 대량 생산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즉 영국이 농촌의 인구를 도시로 이동시켜 노동자집단으로 운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식민지에서 저렴한 가격에 생산해서 수입한 식량이었다. 따라서 18세기 말부터 영국은 산업혁명이라는 불리는 거대한 전환의 선두주자로 치고 나섰다. 기존에 바다와 강과 운하를 통해 촘촘히 연결되었던 시장은 이제 철도망으로 뒤덮였고 그 결과 영국의 세계 최대 규모의 또 매우 밀집한 시장을 갖추었다 석탄과 철강, 철도와 운하, 모직과 면직 등 다양한 산업을 시너지를 일으키며 급격히 성장했다. 그 덕분에 영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우뚝 섰다. 19세기 중반 다양한 산업의 통계를 보면 영국이 세계 생산량의 절반 정도를 차지했다. 세계 자본주의의 현상은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유럽에는 팍스 로마나 즉 로마의 지배 아래 평화를 누린다는 개념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팍스 브리티니카의 시대였다. 산업혁명의 영국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경제활동을 벌여야 했다. 영국은 아메리카의 밀이나 담배 사탕수수를 수입해 식품과 기호품산업을 발전시켰다. 면화와 모를 수입해 직물과 의류산업을 성장시켰다. 그리고 스페인은 이슬람 세력을 상대로 전투능력을 키웠고 네덜란드는 종주국 스페인의 독립전쟁에서 군사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해양 세력 영국은 18세기 유럽대륙의 군사 강국 프랑스와의 전쟁을 통해 군사력을 키웠고 민족의식을 고취했다. 영국은 유일하게 미국의 독립전쟁에서 패배했지만 캐나다라는 넓은 식민지를 유지했다. 비슷한 시기에 오대양에 호주와 뉴질랜드 같은 새로운 식민지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미국은 영국에서 독립했으나 여전히 앵글로 색슨족이라는 문화적 정체성을 기반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한편 19세기 유럽의 질서를 100년의 평화라고 표현했다. 나폴레옹전쟁이 종결된 1815년부터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1914년까지 100년 동안 영국이 주도하는 평화와 질서 덕분에 유럽에서 국제적 자본주의가 발전했다는 것이다 영국은 특히 바다에서 막강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자유로운 교역을 보장하는 세력으로 군림했다. 유럽의 강대국이 세계를 무력으로 지배한다는 점에서 대영제국은 분명 과거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고 네덜란드 계보를 잇는다
영국은 1840년대부터 자유무역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들고나와 기존 제국주의의 틀을 바꿔버렸다 그때까지 제국이란 무역에서 세금을 거둠으로써 이익을 취하는 형식이었지만 영국은 자유무역 정책을 통해 세금을 거두기보다는 수출입사업 자체로 돈을 버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영국은 무역을 통한 이윤보다 생산을 통해 부를 축적하는 모델로 이행하는데 성공했다. 세금을 거두면 정부가 부자가 되지만 민족이 부유해지려면 생산자들이 자유롭게 수입과 수출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대영제국은 안정적으로 무역할 수 있는 틀을 제공했을 뿐 아니라 금본위제를 통해 사실상 세계경제를 하나의 화폐를 사용하는 단위로 묶었다. 영란은행은 1694년 명예혁명 직후 세워진 근대적 중앙은행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1844년에는 영란은행의 발행권을 영국에서 통용되는 유일한 법정화폐로 지정하고 이를 금으로 바꿀 수 있게 해주는 법이 통과되었다. 영란은행의 지폐는 금만큼 신뢰할 수 있는 화폐가 된 것이다. 이후 19세기 후반 다른 나라들도 금본위제를 택하면서 세계는 마치 금이라는 하나의 화폐를 사용하는 시장처럼 되었다. 한편 영국의 자유무역 정책으로 상품이 세계 곳곳을 드나들고 금과 동일한 가치를 지닌 파운드화로 어디서든 금융거래가 이뤄지듯이 사람들도 일자리가 있는 지역으로 자유롭게 이동했던 것이다.
1840년대가 영국에서 자본주의 정치경제의 전형이 만들어진 시기라면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은 영국의 모델이 세계로 전파되면서 단일한 자유주의 질서를 형성한 전성기라고 볼 수 있다. 19세기 중반 영국은 산업혁명을 통해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했지만 20세기 들어 미국이나 독일의 산업능력을 추월하면서 새로운 생산과 수출 대국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영국은 처음에는 생산력으로 세계경제를 지배했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자본과 금융으로 세계경제를 지배했다. 과거 18세기의 잦은 전쟁이 영국의 도약을 이끌었다면 20세기 치러진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영국을 비롯한 유럽국가들이 쇠퇴하고 미국이 새로운 패권국으로 떠오르는 계기였다. 19세기 후반 또 다른 변화는 노동 세력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영국에서 노동조합이 합법적인 조직으로 인정받은 것은 1871년이다. 석탄산업이 발달해 노동자가 집중된 도시의 노동조합은 강한 조직력과 행동력을 가졌다. 과거 왕권을 상대로 귀족과 상인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의회민주주의를 낳았듯이, 이제 세계의 공장 영국에서는 노동자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영국에서 정치 세력으로 노동당이 출범한 것은 1900년의 일이다. 정당이 노조를 지배하는 구조인 독일이나 정당과 노조가 따로 발달한 프랑스와 달리 영국에서는 노조운동이 정치를 지배하는 모습을 갖추었다. 따라서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등의 정치혁명을 추구하는 유럽대륙과 달리 영국에서는 노동자의 실질적 삶의 질을 향상하는 실용적 정치가 우세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집권한 영국의 노동당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노동자의 복지를 국가의 책임지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모델를 새롭게 제시했다. 케인즈의 경제학자로 복지국가내지 사회적 자본주의를 제시했다
영국은 1970-80년대에도 여전히 자본주의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개척자의 역할을 담당했다. 신자유주의라고 부르는 사상적 흐름을 처음으로 정책으로 적극적으로 적용한 것은 바로 영국의 보수당과 마거릿 대처 총리였다. 신자유주의 정책 패러다임은 1979년 집권한 영국의 대처와 1980년 대통령으로 당선된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이 주도했다. 대처는 노조의 역할을 대폭 축소했고 철도 전기 가스 항공 등의 분야에서 민영화 정책을 밀어붙였다. 특히 1986년 금융부문에 적용한 탈규제 정책은 획기적이었다. 인류역사상 최초의 세계제국을 만들고 일방적 자유무역을 선포했던 나라가 이제 브렉시트라는 퇴행적 길목에 들어서 가고 있다. 영국은 세계를 자유주의의 길로 이끈 뒤 복지국가 실현으로 균형추를 잡아주고 다시 신자유주의적 방향을 제시했던 나라이지만 이제 미래의 길을 여는 역할은 하지 못할 듯하다. 의회민주주의의 조국에서 의회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민족통합에 성공한 나라였지만 스코틀랜드는 그곳에서 탈출하겠다고 반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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