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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금융자본주의의 출발지인 네덜란드에 대해서아들을 위한 인문학/경제 2024. 5. 28. 03:23
네덜란드는 저지대 즉 낮은 나라라는 뜻이다. 네덜란드는 바닷가의 평평한 지대 심지어 바다보다도 낮은 땅에 터전을 마련한 나라다. 네덜란드는 세계를 지배하는 최강의 세력이자 부유한 국가로 부상한 것은 스페인의 지배를 받다가 16-17세기 스페인을 물리치고 등장했다. 부국들은 지리적으로 여러 문화가 교차하는 지역에 자리 잡아 다양한 장점을 취사선택하고 흡수 개발하면서 성장했다. 강이나 바다 같은 물길이 있는 지역이 큰 이득을 봤다. 네덜란드가 자리 잡은 저지대는 강대국 및 부국으로 황금기를 경험할 17세기 이전부터 북해의 대표적인 교역 중심지 역할을 했다. 실제로 플랑드르의 브루케는 북구의 베네치아라 할 정도로 무역 허브의 역할을 담당했다. 부국들은 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은 물론 주변 지역이나 해외 멀리까지 세력을 확장하는 능력을 보유했다. 그리스와 로마제국은 지배적 군사력을 통해 주변 지역을 약탈하는 정치적 자본주의가 하나의 전통을 이루었고 이를 포르투갈이나 스페인도 군사력을 투영해 제국을 형성했고 이를 교역의 틀로 발전시킨 전형적인 경우이다
네덜란드는 부국의 특징으로 강인한 정신으로 무장한 민족을 유럽에서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프랑스 대혁명보다 200년 전인 16세기 중반에 이미 근대적 민족 모델을 형성했다. 지대가 낮은 네덜란드는 고대부터 육지와 바다의 경계를 이루는 지역이었다. 바다의 움직임에 따라 육지의 범위가 크게 좌우되었다. 이런 자연환경에 맞춰 농토를 안전하게 보호하려고 바다에 둑을 쌓아 비상시에 대비했다. 풍차는 둑을 쌓은 뒤 바닷물을 빼내기 위한 장치다. 따라서 풍차는 생존하기 위한 상징이었다. 풍차로 물을 빼고 그 자리를 흙으로 메워 새로운 영토를 확보했다. 공동체 구성원들의 협력 정신은 네덜란드에서 근대적 민족이 탄생하는데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개간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봉건제도가 없는 상대적으로 평등하고 자유로운 사회질서가 형성된 것이다. 이에 결정적 계기는 1568년부터 1648년까지 스페인을 대상으로 치른 독립전쟁이다. 낮은 지대는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의 3국이었다. 독립에 성공한 북부지역은 네덜란드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고 1830년 독립한 남부는 벨기에로 불리게 되었다
세계 자본주의 역사에서 동인도주식회사는 최초의 근대적 회사로 유명하다. 17세기 초에 네덜란드와 영국에서 이름이 동인도주식회사로 똑같은 새로운 형식의 사업체가 탄생했다. 우선 주식이라는 제도를 통해 하나의 특정 사업을 위한 엄청난 규모의 자금을 동원할 수 있었다. 이 주식은 매매가 가능해 투자자가 필요할 때 사고팔 수 있다는 중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동인도주식회사는 또 소유와 경영을 확실하게 구분해 회사 운영의 전문성을 높였다. 중세 이탈리아 도시국가의 회사는 주로 자본을 투자하는 사람과 선박을 운영하는 사람이 합작하는 방식이었다. 이에 비해 네덜란드에서는 회사의 사업이나 경영과 상관없는 사람들까지 투자할 기회를 얻었다. 현대 자본주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주주의 유한책임 제도가 확고하게 뿌리내리게 된 것이다. 물론 초기의 주식회사가 현대적 모습만 띠고 있었던 건 아니다. 동인도주식회사는 국가를 대표해 무역의 독점권을 행사하는 회사였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의 국영기관이나 공기업의 성격을 지닌다. 당시 네덜란드와 영국의 동인도주식회사는 아시아 무역을 두고 해전을 벌이기도 했다.
네덜란드는 스페인에서 독립을 쟁취한 것은 물론 스페인과 포르투갈 지배했던 세계제국에도 도전해 이들의 무역 독점을 깨나갔다. 아시아에서는 향신료의 원산지인 인도네시아의 섬들을 지배하면서 말라카, 스리랑카, 타이완, 나가사키 등의 무역기지를 차지했다. 아프리카 남단에 식민지를 건설하는 것은 물론 남아메리카의 포르투갈령 브라질에도 진입해 경쟁을 벌였다. 또 북아메리카의 뉴욕지역의 처음에는 네덜란드령 뉴암스테르담이었다는 사실까지 고려하면 17세기 황금기에 네덜란드가 광범위하게 세계를 지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낮은 나라라 불리던 베네룩스 지역은 중세만 하더라도 하나의 느슨한 집합체를 형성하고 있었다. 자신만의 정체성은 없었지만 동부와 서부의 독일 세력, 남부의 프랑스 세력 그리고 바다 건너 영국 세력의 사이에 자리 잡은 경계지역이었기 때문이다. 17세기 네덜란드가 독립하면서 세계제국을 형성하는 데는 중세부터 쌓아온 무역과 시장의 전통이 큰 힘이 되었다. 중세 베네룩스 지역의 발전은 브루게라는 무역도시의 번영으로 요약된다. 브루게는 북해를 둘러싼 유럽 북부의 무역 허브로 한자동맹의 서부를 지배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이 도시는 남유럽에서 육로나 해로를 통해 올라오는 비단과 향신료, 주변국가인 영국, 프랑스, 독일의 직물 그리고 스칸디나비아반도나 러시아 같은 먼 지역에서 온 밀, 동제품, 밍크 등을 사고파는 중심이 되었다.
중세 부르게의 위상을 이어받아 15세기말 부상한 도시가 안트베르펜이다. 이곳은 위치상 라인강을 통해 게르만 세력과 교역하기에 유리했다. 브루게와 비교했을 때 무역을 넘어 금융기능까지도 추가한 경제중심지가 되었다. 낮은 나라로 불리는 지역에서는 11세기에 이미 토지와 같은 부동산을 담보로 하는 금융거래가 이뤄졌다. 13세기에는 최초의 공적 연금제도가 만들어질 정도로 금융 혁신을 선도하고 있다. 16세기가 되자 네덜란드는 독립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저지대가 남북으로 분리되었다. 이 과정에서 스페인령인 남부에 있던 안트베르펜의 전성기는 막을 내렸다. 경제와 시장의 중심은 독립국이 된 북부 지역, 즉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으로 이동했다.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으로 네덜란드의 독립이 국제적으로 승인받게 되자 유럽의 금융 중심은 암스테르담으로 급격하게 이동했다. 여유자금을 가진 자본가들은 암스테르담에서 쉽게 돈을 굴릴 수 있었다. 동유럽의 거대한 평야에서 밀농사를 짓는 베를린 출신의 귀족들, 브뤼셀에서 면직사업을 하는 자본가들이 모두 암스테르담에 와서 자금을 융통하곤 했다. 서민들도 미래의 월급을 담보로 돈을 끌어 쓸 수 있는 차용증이 널리 유통되었다
시장이 발달한 네덜란드는 여기에서의 문제는 유연성이 너무 강한 나머지 때때로 가격이 폭등하거나 폭락하는 불균형과 위기의 상황이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점이다. 이 소동의 중심에는 튤립이 있었다. 이 꽃은 17세기 오스만제국에서 전해진 꽃이다. 원래 튤립은 소수의 귀족이나 부자를 위한 사치품이었는데 점차 그 유행이 일반사람들에게더 널리 퍼져나갔다. 튤립은 종 간의 교배를 통해 다양한 색상과 특징을 가진 수많은 종류의 아름다운 상품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꽃이었다. 그 덕분에 전 국민의 투기 대상이 되었다. 부자들이 최고의 상품에 투기하는 동안 노동자들은 가장 저렴한 품종에 돈을 쏟아부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튤립에 대한 투자의 붐이 최고조에 달한 1637년 셈페르 아우구스투스라는 품종의 경우 양파처럼 생긴 뿌리 하나 가격이 중간층 집 여섯채의 값에 해당했다. 그러나 그해 거품이 순식간에 꺼져 모두가 채무와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14-16세기에는 베네치아, 제노파, 피렌체처럼 이탈리아 도시국가가 부유했고 네덜란드는 17세기 가장 부자 나라였다. 렘블란트 등 유명한 화가나 나와 그림시장도 발달하게 되었다고 한다
네덜란드는 복권이라는 제도가 처음 만들어졌다. 17세기 초부터 유행한 복권인 톰볼라를 통해 행운을 거머쥐면 사치품을 살 수 있었다. 물론 복권을 팔아 모은 돈으로 노인 양로원이나 정신병원 등을 짓는 등의 고귀한 목적에 사용된다는 형식도 갖췄다. 한편 부의 당혹이라는 책에서는 네덜란드에 공존했던 금욕적 칼뱅주의 정신과 최초의 자본주의 사회 사이의 긴장을 묘사했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부를 모아 재산을 축적하기보다는 소비해버리는 성향을 보였다. 그것이 역설적으로 자본주의의 발전을 크게 이끌었다는 지적이다. 네달란드는 근대적 경제체제를 완성한 사례이다.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은 세계 차원의 제국을 형성했지만 이를 경제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했다.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무역과 산업을 발전시키는 자본주의적 모델을 형성했지만 하나의 민족국가를 만들어내거나 세계적 시장을 개발하지는 못했다. 반면 네덜란드는 세계시장을 휘젓는 군사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경제력을 동시에 보유한 근대 자본주의 제국을 낳았다 이 비결은 어려운 지리적 조건을 극복하려는 사회 구성원들이 불굴의 정신에 있다. 프랑스, 독일, 영국의 국제적 교역에서 지리적 중심지의 장점이 있었다 그리고 많은 강들이 발달되어 운하운송으로 도시간 긴밀하게 연결되어 교통 선진국으로 발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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