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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근대화의 힘은 어떤 것인가아들을 위한 인문학/일반상식 2024. 9. 5. 03:40
<근대화의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
유럽의 특징은 고대 그리스 로마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는 직접민주정치를 들 수 있다. 주민이 대표자를 통하지 않고 소속된 공동체의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하는 정치형태다. 그리스에서는 BC 8세기경부터 폴리스라는 도시국가가 성립했는데 그중에서도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막강한 힘을 갖고 있었다. 그 이전에 고대국가에는 군주정치를 이루었다. 왕의 권위는 무력과 종교적 권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집트의 파라오는 신의 화신인 동시에 군의 최고지휘관이다. 한편 그리스의 뒤를 이어 지중해 세계의 패자가 된 로마도 그리스와 비슷한 민주주의를 계승한다. 로마도 처음에는 왕을 세우고 받드는 군주국가였는데 이후 BC 509년 공화정으로 바꾸고 로마에서는 귀족 중에서 임기 1년의 집정관이 선거에서 두명이 선출되어 군민의 최고위직으로 정치를 담당했다. 동시에 귀족의 고위공직 경험자 3백명으로 구성되는 원로원이 존재했는데 이들은 집정관을 지도하는 위치에 서서 막강한 결정권을 갖고 정치에 적극 관여했다. 나중에는 원로원 승인하에 아우구스투스라는 황제 나오지만 공화정의 전통을 이어간다. 정치체제 이외에도 고대 그리스는 플라톤부터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자연철학 등 다양한 사고체계가 발달하는 등이 엄청난 힘으로 키워져 서양의 근대화를 재촉함으로써 결국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된다
서양이 만들어낸 거대한 에너지가 자취를 감추는 시대가 나타난다. 가톨릭 교회가 지배하는 중세시대이다. 거의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제국이 AD 392년에 기독교를 국교로 채택하면서 제국의 주인이 황제에서 신 혹은 그 대리인인 교황으로 옮겨간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서로 명확히 분리되어 있던 종교와 정치가 하나로 뒤엉키게 된 것이다. 게다가 기독교의 신은 오직 하나뿐인 절대자이자 창조주이기 때문에 인간이 발을 딛고 있는 현실세계보다 영적세계가 훨씬 차원이 높다고 인식하게 된다. 5세기 후반의 서로마제국의 멸망부터 15세기까지의 약 1천년 동안 유럽은 일종의 가사상태에 빠진다. 이 시기에 주인은 이슬람 세계와 아시아의 몽골제국이다. 중세의 침묵을 깨뜨리는 계기는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다. 한편 1077년 카노사의 굴욕은 대표적인 교황에 맞서다가 파문당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카노사성에 사면을 빌었다는 사건이다. 한편 중세의 가사상태에서 서양은 다시 인간의 자유와 주체성을 부활시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르네상스는 14세기-16세기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일어난 문화운동으로 역동적이고 강렬한 인간미를 나타냈다. 그리고 종교적 권위를 절대시하는 이슬람교는 서유럽과 대립하는 이유는 기독교는 근대와 하나가 되어 유럽이 퍼졌다는 것이다. 즉 순수하게 종료로서 전파되었다기보다는 근대화라는 유럽의 기질과 하나가 된 형태로 확산되어간 것이다. 여기에 더해 정교분리의 서유럽과 정제일치의 이슬람이라는 대립구도가 만들어졌다. 즉 이슬람이 서유럽을 미워하는 근원은 신보다 인간을 중시하는 근대문명에 대한 반발심에 있다고 본다. 근대는 인간중심주의 시대를 의미한다. 합리적인 근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더 관리가 되어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 더 자유로워져야 하는 포스트모던이 나오게 되었다. 따라서 근대 이후 서양에서는 인간이 신처럼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 자본주의는 기독교로부터 생겨났다 >
근대화는 르네상스 이후 급격히 확산되었다. 그 열쇠는 종교개혁에 있다. 16세기 종교개혁이 일어난 배경에는 기존 교회에 대한 불만과 비판의식이 있었다. 즉 교회라는 방해자가 버티고 있기 때문에 진정한 신에게 다가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하는 인식이다. 당시의 교회는 신의 대리인이라는 입장을 내세워 신을 독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신의 말씀을 담은 성서가 라틴어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극소수 지배층만 라틴어를 읽을 수 있었다 독일의 종교개혁은 마틴 루터가 교회의 면죄부 판매를 정면으로 비판한 데서부터 시작된다. 면죄부란 돈을 내면 죄를 경감하는 것이다. 원래 이 면죄부는 십자군에 종군한 병사에게 주어진 일종의 상이었다. 그러다 종군하지 않은 일부 사람들도 면죄부의 기회를 달라며 요구하자 교회도 돈이 되는 장사를 마다하지 않았다. 신의 용서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은 것은 죄악으로 받아들여져 1517년 루터는 95개조의 논제라는 의견서를 교회에 제출하였다. 이는 신과 인간과의 중개자로서의 자격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며 저질렀던 철저한 위선과 부도덕함을 폭로한 것이다
루터는 위선적인 교회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성서를 민중의 손에라는 대담한 구호를 내걸고 교회의 지배의 근간이 되는 성서의 독점을 무너뜨리기 위해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했다. 이는 지식의 독점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당시 성서는 교회에서 사제가 읽어주는 것이었다. 따라서 일반인은 성서의 내용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사제의 말을 믿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한 지식의 독점이 교회의 위선적인 권력 구조의 온상임을 간파하고 민중에게 지를 되돌려주려고 한 것이 루터의 종교개혁의 본질이다. 그러나 종교개혁이 이루어지면 교회는 권력은 물론이고 스스로의 존재 기반까지 몽땅 잃어버리게 된다. 교회는 마침내 루터를 파문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종교개혁으로 프로테스탄트(개신교)에서는 교황이나 사제의 간섭 없이 신과 직접 마주하게 되어 거기에 대한 엄격함과 중압감에 짓눌려 정신병에 걸린 사람도 많다. 개인이 신 앞으로 거칠게 내몰리며 금욕의 세트를 이루게 되고 그 중압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성욕을 금지한다. 하지만 교회가 민중을 지배하던 중세에는 표면적인 교리 및 원칙과 달리 실제 시행에 있어서는 꽤나 느슨한 편이었다. 한편 프로테스탄트는 가톨릭이 갖고 있던 느슨함을 잃어버렸다. 19세기 영국의 빅토리아 왕조를 한 프로테스탄티즘의 전통이 강한 유럽사회에서는 공공장소에서 성에 관한 발설하는 것이나 성적인 행위를 일절 금지하였다. 그런 성적 도덕관념은 신분이 높아질수록 더욱 엄격해서 상류층에 속한 여성들은 철저한 금욕생활을 강요받았다. 그래서인지 상류층 여성들에게 히스테리 증세가 자주 나타났다. 프로이트를 비롯한 여러 정신분석학자들은 히스테리의 원인을 금욕에 의한 엄격한 억압 때문이라고 했다. 중세 가톨릭 교회는 이혼에 대해서는 꽤나 까다롭고 말도 많았는데 그것에 비해 성에 대해서는 퍽 개방적이다. 가톨릭 중세 사회는 암흑세계로 표현하지만 프로테스탄트의 세계는 흑백세계라고 한다.
자본주의는 엄격함을 가진 프로테스탄트의 세계를 중심으로 확대된다. 19세기말에 활약했던 막스 베버가 쓴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 있다. 근대적 자본주의는 루터 뒤에 등장하는 칼뱅신학을 받아들인 나라들에서 발전했다고 한다. 네덜란드, 영국, 미국과 같은 칼뱅주의의 영향이 강한 나라에서 자본주의가 발달한 데 반해 이탈리아나 스페인 같은 가톨릭 국가나 프로테스탄트 국가라도 루터주의가 강한 독일에서는 자본주의가 뒤쳐졌다. 그에 따르면 칼뱅이 역설한 예정설과 자본주의의 속성이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칼뱅의 예정설에 따르면 신은 구제할 인간을 사전에 결정한 것이라고 한다. 그들은 금욕적인 생활을 하고 열심히 일하고, 부단히 선행을 베푸는 것으로 자신은 구원받아야 할 인간이라는 확신을 얻는 것이다. 선행 중에서도 일을 하는 것은 그들에게 특별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프로테스탄트는 세속의 직업을 신이 각자에게 부여한 소명으로 생각했고 노동이야말로 신의 영광을 더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직업을 소명으로 받아들이며 평생 일하는 것이 신에 대한 봉사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쌓은 부를 투자를 통해 확대재생산하면서 부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 탄생의 모체이자 매커니즘이 된다는 것이 베버의 생각이었다.
< 경시된 근대의 신체 >
신체가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는 사고방식에는 프로테스탄트의 금욕적인 가치관이 들어있다. 즉 근대의 신체경조 역시 기독교적인 가치관의 연장선상의 생겨난 것이다. 근대시기에 촉각적인 것의 가치가 떨어지는 한편 시각만은 상당히 중시된다. 만져서 얻어지는 것은 부정확하지만 시각으로 얻는 것은 정확하다는 사고방식이다. 그런 시각 우위의 절정이 바로 원근법이다. 원근법은 눈에 비친 입체적인 상을 평면에 정확히 복사하기 위한 기법으로 어느 한 점에서 선을 방사형으로 그어 그 선에 맞춰 사물을 그리는 것으로 눈에 보인 것과 같은 비율의 상을 평면에 재현하는 것이다. 중세회화에서는 원근법이 없다. 원근을 나타내는 데는 멀리 떨어져 있는 인물을 가까이 있는 인물의 뒤에 가려지도록 그리는 기법이 사용된다. 먼 것은 작게 가까운 것은 크게 또 먼 것은 색채나 윤곽이 흐리게 가까운 것은 또렷하게 하였는데 이는 르네상스시대부터다. 15세기 그려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대표적이다. 원근법을 사용되면서 비로서 평면이라는 2차원의 세계가 우리가 살고 있는 3차원의 세계로 묘사되기 시작한다. 원근법으로 상징되는 시선의 우위성은 근대에 있어 일관된 원리가 되었다
근대는 신체 중에서 시각이 우위에 서는 시대다. 그것이 보다-보여지다라는 구조를 극대화시켜서 보는 자가 보여지는 자를 지배하는 사회를 만들었다. 푸코가 날카롭게 지적한 것은 보는 자와 보여지는 자의 관계가 항상 일방적이라는 점이다. 그리스 신화에 메두사라는 요괴가 나온다. 메두사는 눈에 신기한 힘이 있어서 그의 눈을 보는 자는 순식간에 돌이 되어버린다. 신화에서는 시선의 방향성에 의해 사람이 지배당하는 것을 돌이 된다는 표현으로 암시하고 있다. 또한 구글 등의 검색사이트에도 보여지는 자 =지배받는 자의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다. 인터넷에서 검색한 것에는 취미나 기호가 반영된다. 개인정보에 다른 사람에 의해 손바닥 보듯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교회가 지식을 장악했던 시대에 사람들은 교회가 허용하는 지식 외에는 접할 수 없었다. 근대가 되면서 지식은 교회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러나 컴퓨터가 급속도로 진화하고 인터넷이 일반화된 지금은 누구나 클릭 하나로 공짜로 원하는 지식을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이처럼 근대에는 시선과 시점이 권력으로 이어졌지만 지금은 그것이 더욱 추상화되고 모호해지면서 정보를 쥐는 자가 권력의 중심을 장악하고 있다. 정보화시대의 현대사회에서는 신체로 느끼는 행복을 추구하는 경향이 증가하고 있다. 현대인은 미각과 후각 및 촉각에 굶주려 있다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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