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신의 이름으로 표현된 인간의 욕망의 작품들을 감상하면
    아들을 위한 인문학/미술 2023. 8. 24. 03:34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얀 반 아이크)

    교황의 눈치를 봐야 했기에 엄격했던 프랑스와 스페인과 달리 플랑드르는 좀 더 자유로왔다. 플랑드르는 네덜란드와 벨기에 프랑스 일부 지역으로 스칸디나비아 반도국들과 교역으로 경제를 성장시켰다. 이 지역에는 개성있는 화가들이 자신들만의 세계관을 표현했다. 얀 반 아이크는 플랑드르에서 사실적인 회화가 발달하는데 기반을 마련한 화가다. 특유의 유화기법을 바탕으로 자연스러운 묘사와 원근법적 화면 무엇보다 질감까지 느껴질 만큼 세밀한 묘사가 특기였다. 당시는 프랑스 부르고뉴 공국이 플랑드르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의 대표작으로 여러 수수께끼를 담고 있는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이다. 이 그림은 얀 반 아이크가 이탈리아 출신의 상인 아르놀피니와 그의 부인을 그린 것으로 알려졌다. 두 남녀가 한손을 서로 얹고 있는 것은 남성이 오른손을 들고 있는 제스처와 함께 신성한 결합의 약속을 맹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곳이 신성한 서약이 이루어진 장소라는 것은 남성 옆에 놓인 흰색의 슬리퍼와 뒤쫓에 놓여있는 여성의 붉은 신발을 통해 알 수 있다. 신발을 벗고 있다는 장소는 신성하다는 뜻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는 털이 복실한 강아지가 있는데 이는 충실함을 상징한다.

     

    여성의 뒤쪽에 있는 붉은 침대의 머리 받침에 출산을 도와주는 성 마가렛이 조각되어 있어서 결혼식이라기보다는 출산을 앞둔 부부의 초상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창가에 있는 과일은 선악과로 본다면, 남성은 부양의 의무를 여성은 출산과 육아의 의무를 져야 하는 원죄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아르놀피니가 이탈리아 출신이라는 점에서 부유함과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오렌지라고 보기도 한다. 그 외에; 볼록거울의 틀에는 예수 수난의 장면들이 작은 원에 표현되어 있고 머리 위의 샹들리에에는 하나의 초만 켜놓아서 신의 성령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한편 볼록거울 속 사람의 모습이나 모피 코트의 털 하나까지도 세세하게 표현한 얀 반 아이크의 섬세한 묘사가 말이다. 이렇게 얀 반 아이크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플랑드르의 사실적인 묘사는 이후 히에로니무스 보스까지 연결된다

     

    쾌락의 정원(히에로니무스 보스)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쾌락의 동산은 제단화 형식인 세폭화이다. 세폭화는 3개의 장면이 연출되는 양 날개는 문처럼 접어서 중앙을 덮을 수 있다. 교회의 제단에 설치해두고 평상시에는 양 날개를 닫아뒀다가 행사가 있을 때 양쪽을 열어 세면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중앙에 십자가 혹은 신의 모습이 주로 위치하는 제단화의 전형성이 없다. 왼쪽 날개에는 아담과 이브가 있는 에덴동산과 같은 모습이 있고, 오른쪽 날개에는 어두운 배경에 기괴한 형상들이 있어서 지옥으로 유추되기도 한다. 이 작품은 보스의 것 중 난해하다고 알려졌다. 다만 인간의 쾌락을 인간과 동물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형상들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세 장면 모두 멀리에는 산이나 성, 어두운 도시 등의 풍경이 보이며 그 앞으로 순차적으로 호수나 들판 혹은 알 수 없는 공간과 구조물들이 보인다.

     

    먼저 왼쪽 날개 아래쪽에는 아담과 이브 그리고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등장하고 나머지에는 새와 물고기, 기린이나 코끼리 등 다양한 육지 동물들이 나무나 기괴한 구조물과 함께 표현되어 있다. 붉은 옷을 입은 신은 힘이 없는 이브와 한손을 이끌어오고, 아담은 바닥에 앉아 신을 바라보고 있다. 아마도 이브를 창조한 후 아담에게 선보이는 장면일 것이다. 두 남녀가 옷을 벗고 있고 다른 사람 대신 동물로 가득하다는 점에서 에덴 동산인 듯하다. 아담의 뒤로는 독특한 나무가 한 그루 있고 그 뒤로 사과가 달린 나무들이 빽빽하게 서있다. 그리고 주변의 동물들 역시 보스 특유의 세밀한 묘사로 표현되어 있는데 하나씩 살펴보면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생명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머리가 달린 새, 책을 읽는 물고기, 물을 마시는 유니콘, 알비노 기린 등 정체를 알 수 없는 동물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중앙에는 수많은 인간의 누드의 모습으로 각 위치에서 다양한 행위를 하고 있다. 말을 비롯한 다양한 동물을 나란히 타고 행진을 하기도 하고 웅크려 거대한 딸기를 들기도 한다. 새 등에 올라타거나 올빼미를 안고 있고, 새가 주는 열매를 입을 벌려 받아먹고 남녀가 어울려 사과를 따 먹기도 하며, 새나 물고기, 과일과 어울려 뒹굴기도 한다. 거대한 조개에 들어가고 투명한 구안이나 연못 한켠에서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뭔가를 먹거나 엉키면서 놀거나 위에 올라타고 그리고 사랑을 구애하며 행위를 하는 등 말 그대로 쾌락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 각 상황이나 과일, 동물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구조물이나 들판, 연못의 모양이 실제 풍경이나 건축과 하나도 닮은 구석이 없다. 다만 과일을 먹는 것, 나신의 남녀, 동물과 어우러지는 모습 등을 보면, 이곳이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이후 부끄러움을 알게 된 인간들의 모습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더 원초적인 쾌락이 허락되는 곳, 그리고 자연과 함께하는 곳으로 보인다. 그러한 점에서 이를 종교적으로 해석한다면 모든 인간이 행복하게 아무런 근심이나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천국을 그린 것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식욕, 물욕, 육욕 등 다양한 쾌락을 탐한다는 점에서 세속적이기도 하다. 신의 세계를 표현할 때 전형적으로 등장하는 신이나 비둘기, 천사 등의 모습이 없기 때문에 적어도 중세적인 사고에서는 기독교의 도상으로 읽기에 무리가 있다

     

    오른쪽 장면이 가장 현실적이다. 어두운 밤, 크고 작은 건물에서 빛이 새어 나오고 있는 듯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내 중간부터는 중앙 패널보다 기괴한 형상들이 이어진다. 거대한 귀에 탄 검은 옷을 입은 인간은 그 밑에 깔린 인간을 잡아 올리고 있고 그 뒤의 타오르는 불 위로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는 인간이 보인다. 중앙에는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머리 위에는 피리처럼 주둥이가 달린 과일과 인간을 끌고 다니는 이상한 생명체들이 있고 비어있는 몸통 안에도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앞에는 악기의 부분들로 이루어진 구조물에서 사람들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고 그 사이로는 아름답기보다는 끔찍한 형체들이 가득 차있다. 심지어 이 괴물들은 인간을 먹기도 하고 배설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 중앙에서 즐긴 쾌락에 대한 벌을 받는 지옥으로 보기도 한다. 그리고 지옥의 장면 역시 현실 속 부당함과 고통에 대한 비유적인 표현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특히 오른편 앞에 수녀의 모자를 쓴 돼지가 인간에게 불편한 계약을 강요하는 듯한 모습이나 푸른 성직자 옷을 입었지만 새의 머리를 하고 있는 모습, 괴물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갑옷 입은 기사 등에서 당시의 기득권층, 즉 성직자와 권력자들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 한편 보스의 세폭화는 비현실적 요소로 가득 차있지만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기도 하다. 다만 신비스러운 요소들이 너무 많다 보니, 보스가 당시에 비밀스러운 종교적 조직들인 자유정신형제회나 아담자손들, 장미십자회, 모던 마니교 등에 소속되어 있다는 연구도 있다

     

    한편 이 패널의 양 날개를 닫았을 때 보이는 투명한 구 속의 지구 그림과 글귀는 보스가 새로운 세계에 대한 창조에도 관심을 가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화려한 안쪽 장면과 다르게 바깥쪽 패널에는 푸른 색이 도는 회색조로 표현되어 있다. 우리가 아는 둥근 지구의 모습이 아니라 당시 중세인들이 알고 있는 평평한 땅과 구 형태의 하늘이다. 마치 스노우볼처럼 구름이 있는 하늘과 땅을 유리구가 감싸고 있다. 창조주는 천체 바깥에서 지구를 내려다보고 있으며 그 옆으로 두 패널에 나눠서 문구가 써있다. 이는 시편 33편에서 인용한 것으로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라는 구절이다. 그리고 바깥 패널이 먼저이므로 신이 세상을 창조한 이야기가 시작되고 안쪽을 보았다고 볼 수 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스페인의 펠리페 2세가 보스의 작품을 좋아하여 다수 소장했다고 한다 그는 국가를 이성이 아니라 종교적인 믿음에 기초해서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펠리페 2세는 쾌락의 정원에서 신의 이상을 구현한 그림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고 혹은 드러내기 힘든 자신의 욕망을 풀어낸 그림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많은 귀족들도 보스의 작품을 좋아했다고 하니 다분히 이교도적인 형상들로 가득 차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림에 매료되었던 듯하다 보스의 자유분방한 상상의 세계가 해방감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