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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세시대 용에게서 공주를 구해낸 기사에 대한 예술작품들은
    아들을 위한 인문학/미술 2022. 10. 20. 04:27

    불을 뿜은 용이 지키는 높은 탑에 아름다운 공주가 갇혀있다. 공주를 구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도전하지만 모두 실패한 그때 홀연히 등장한 한명의 기사 결국 무서운 용을 물리치고 공주를 구해내는 갑옷입은 기사에 대한 이야기는 수많은 문학에서 다루어져 왔다. 이야기마다 조금씩 등장인물의 특성과 배경 등이 바뀌기는 하지만 갇히 공주를 구하는 정의로운 기사라는 구성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이 구성을 뒤바뀐 애니메이션이 2001년 개봉한 슈렉으로 더럽고 냄새나며 포악한 괴물이기에 모든 생물들이 피하는 존재지만 피오나 공주를 구해낸다 전형적인 구조가 흐트러지고 재미를 더해준다. 그러나 전형적인 구조의 답은 중세의 성상화에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중세 유럽인들은 성직자는 물론이고 왕이나 귀족 그리고 농노들까지 모두가 기독교 신앙에 따라 살아야 했다. 마을에서 가장 큰 건물은 성당이었고 어떤 일이 있을 때면 신의 이름으로 뭉쳐서 해결했다. 그리고 마녀사냥처럼 교리에 위반되는 행위에는 가차없이 가혹한 형벌이 뒤따랐고 사회에서 소외당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신화 이야기가 삶의 전반에 퍼져있었듯이 중세에는 그 자리를 성경과 성직자의 교리가 차지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글을 몰랐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그들을 위해서 기독교의 사상을 담은 조각과 회화를 만들었다. 요즘 예술품으로 보는 것을 중세의 조각과 회화는 기독교의 교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교육 수단이었다. 다만 우상숭배와 인간의 욕망이 철저히 금기시 되었기 때문에 주로 종교적 교리를 주로 담았다. 초기 중세에는 고대 로마의 전통이 끊어지고 단순하지만 성경적 이야기를 담은 로마적인 스타일이 가미된 로마네스크 양식이 탄생했다

     

    한편 예술의 담긴 내용이 중요해지면서 어떤 형상이 특정한 의미를 지칭하는 상징으로 쓰이는 이콘이 시각예술의 중심이 되었다. 이콘화는 성상화로 가령 성모마리아 앞에 대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예수를 잉태했음을 알려주는 장면으로 성모마리아, 천사 그리고 백합이 들어간다. 백합은 성경구절에 없지만 성모마리아가 동정녀 즉 처녀의 몸으로 임신한 순결한 사람임을 가리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종교적 교리를 전달하고자 하는 성상화에는 여러 성인들도 등장한다. 성인들은 기독교를 위해 순교한 사람들로 교단에서 인정 받아야만 가능했다 이중 독특한 성인이 있는데 멋진 갑옷을 입고 붉은 십자가가 새겨진 깃발이나 방패를 든 채 등장하는 성 조지이다. 그는 초기 기독교의 대표적인 성인 14명 중 하나로 대중적인 인기가 높다. 다양한 버전이 있는데 그중에서 13세기 이탈리아의 성직자 바라지네가 엮은 황금전설(1290)이 있다

     

    북아프리카 리비아의 시레나라 불리는 지역에 호수가 있었다. 이 호수 근처에는 독을 뿜는 용이 있었는데 마을 주민들은 살기 위해서 용에게 제물을 바쳐야 했다. 처음에는 양과 같은 가축을 바쳤지만 이내 남지 않게 되었고 이후에는 사람을 제물로 바쳐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마침 터키 출신의 성 조지가 말을 타고 지나가다가 공주가 제물로 바쳐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성 조지는 공주를 잡아먹으려는 용의 입에 창을 찔러 넣어 제압하였고 공주의 허리띠를 빌려 용을 묶었다. 그리고 공주와 함께 용을 끌고 왕에게 가서 용을 죽이고 싶으면 백성들을 모두 기독교로 개종시키라는 조건을 걸었다. 이에 왕은 수락했고 성 조지는 약속대로 용을 죽였다. 이후 이교도에 잡혀 잔인한 고문을 당했지만 죽지 않고 이교도 왕비가 기독교를 개종하여 이를 알게 된 이교도의 왕은 분노하여 왕비를 죽이고 성 조지 역시 참수했다

     

    여기에서 공주와 영원히 행복하기 위해 용을 죽이는게 아니라 포교의 목적으로 죽였고 믿음을 위해 순교로 생을 마감하였다. 그가 순교한 날은 303423일로 그의 축일로 지내고 있다. 한편 초기 이콘화에서의 성조지는 철갑옷을 입고 백마를 탄 중세의 기사 모습이라기 보다는 로마 군인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러다가 중세에 들어서면서 성 조지의 이야기 속 공주에게 새로운 이름이 붙기도 하고 둘이 사랑을 하고 아이도 낳는 등 다양한 버전으로 이야기가 변형되기 시작한다. 성 조지는 본래 군인이었던 데다가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를 들었던 까닭에 무기 기술자들에게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았다 심지어 프랑크 왕국을 세운 메로빙거 왕조는 자신들이 성 조지의 후손임을 자처하기도 했다. 이러한 인기에 중세에 발달한 기사문학이 한몫을 담당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와 같이 신화를 배경으로 한 서사시가 인기였다면 중세에는 도덕적으로 올바르며 학식과 무예를 겸한 기사의 이야기가 담긴 기사문학이 유행했다. 당시 유럽의 중세 사회는 왕보다는 각 지역의 영주들이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을 때였다. 영주들은 자신의 영지를 보호할 강한 기사들이 많이 필요했고 능력이 있는 기사는 힘 있는 영주들에게 고용될 수 있었다. 기사들은 기사도라 불리는 자신들만의 규범과 진실이 있었는데 이러한 신념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을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영국의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 이야기다. 아서왕의 운명을 증명해주는 엑스칼리버, 그를 돕는 마법사 멀린과 초자연적이고 신비한 이야기들, 그리고 원탁의 기사들의 우정과 충성, 사랑 이야기는 영화나 뮤지컬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재창조되면서 사랑받고 있다

     

    이러한 기사문학은 초기에는 구전으로 전파되었지만 13세기부터는 글로도 쓰였고 15세기 이후에는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더 많은 이들이 읽고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원근법과 사랑에 빠진 예술가로 유명한 초기 르네상스의 화가 파올로 우첼로는 성 조지의 모습을 전형적인 중세의 기사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반짝이는 은빛 갑옷으로 온몸을 휘감은 기사가 뒷발로 힘차게 뛰어오르는 백마를 타고 달려들어 금빛 긴창으로 용을 찌르고 있다. 거대한 원 모양이 있는 박쥐 날개를 가지고 있고 초록빛의 용은 날카로운 송곳니와 발톱을 써보지도 못하고 금빛 창에 찔려 고개를 숙인 채 피를 흘리고 있다. 확실한 성 조지의 승리다

     

    왕과 귀족 등 다른 신분이나 직업이 있었는데 기사가 가장 주목받은 이유는 당시 기사는 사회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계층이다. 그리고 귀족과 달리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고 그러면서 무예 실력을 키워 유력자들에게 봉사하면 그 보답으로 땅이나 성을 하사받아 귀족 신분을 가질 수도 있었다. 훌륭한 기사들을 확보하기 위해 영주들의 경쟁은 치열했다. 10961차 십자군 원정을 시작하여 12708차 원정까지 근 200년에 걸쳐 유럽 전역에서 이루어진 십자군전쟁 때문에 기사 계급은 수적으로 늘어났다. 교황 우르바누스 2세에 의해 시작된 첫 원정에서 승리하면서 11세기부터 유행하였던 예루살렘으로의 성지순례가 가능해졌다. 하지만 이후 계속 패하면서 원정을 주도한 교황이나 왕의 권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출정을 했던 기사들이나 함께 따라간 상인과 농민들이 원정을 오가는 길에 약탈하거나 죄 없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부작용이 생기면서 십자군 원정의 의미는 퇴색되었다 십자군 원정은 귀족들의 몰락을 가져오고 왕권이 강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기사문학은 기사가 충성을 맹세한 권력자를 위한 것일까, 혹은 용을 구할 정도로 용감하게 포교를 한다는 점에서 교회를 위한 봉사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신흥 계층으로 급부상한 기사의 가치를 사회에 알리고자 한 것일까 이야기의 특성이 다양한 만큼 하나의 목적을 찾기는 힘들지만 분명한 것은 신을 위하여 인간의 육욕을 참고 교회를 위해 봉사해야 했던 중세의 사회적 윤리와는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상을 보면 주군의 아름다운 여인을 남몰래 짝사랑하는 기사의 낭만적 사랑 이야기, 사랑하는 기사를 떠나보내야 했던 여인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당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기 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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