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산업혁명이 퍼뜨린 하얀 페스트 결핵에 대해서 알아보면
    아들을 위한 인문학/의학 2023. 2. 23. 03:23

    결핵은 근대 이후 많은 문학가와 예술가를 괴롭힌 질병이다. 폴란드 출신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 프랑스에서 활약한 음악가 쇼팽와 변신의 소설로 독특한 작품 세계를 펼쳐 보인 체코 작가 카프카 등과 국내에서는 이상, 김유정, 현진건 등도 폐결핵으로 영면하였다. 결핵이 예술가들만 공격한 것이 아니라 이 무서운 질병은 농촌에서 도시로 휩쓸려 나온 저임금 공장노동자 등 빈곤층에도 똬리를 틀고 있었다. 한편으로 결핵에는 끔찍하고도 낭만적인 병이라는 이미지가 따라붙게 되었다. 이는 사랑하는 사람과 안타깝게 헤어지는 비극을 겪으며 그 아픔이 수많은 문학작품으로 승화된 탓이다. 즉 창백하게 여윈 얼굴에 가냘픈 몸매로 격하게 기침을 쏟아 내고 때로 울컥 피를 토하는 모습이 결핵환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결핵은 공기 중에 떠도는 결핵균을 들이마심으로써 감염되는데 이미 감염된 사람이 기침을 하거나 재채기를 할 때 튀어나오는 침방울로 감염되는 사례가 많다. 사람의 호흡기에서 밖으로 나온 결핵균은 바로 바닥에 떨어지지 않고 30분 남짓 공중에 떠다닌다. 이균이 폐속 기관지까지 들어오지 않으면 감염되지 않는다. 결핵균은 길쭉한 막대기 모양으로 생겨 간균이라고 부르며 건조한 환경에 강해 침방울이 말라도 여간해서 죽지 않는다. 더군나 사람뿐 아니라 소, 돼지, , 쥐 등이 걸리는 유형의 결핵균이 있어 소에게서 사람에게로 감염된 사례도 있다

     

    감염된 후 4-6주 안에 증상이 나타난다. 먼저 기침을 심하게 하고 염증이 생긴다. 또 체온이 오르며 열감과 오한을 느끼고 식은땀을 흘린다. 얼핏 일반 감기와 증상이 비슷해서 구분하기가 쉽지 않는데 그냥 두어도 일주일 정도 푹쉬면 낫는 감기와 달리 결핵은 치료하지 않으면 증상이 악화한다. 차츰 가슴이 답답하고 뻐근한 통증이 느껴지며 체력이 떨어져 만성적인 피로감이 밀려오고 살이 빠져 눈에 띄게 수척해진다. 중증화 단계로 넘어가면 호흡기와 소화기 등 내장 기능이 약해져 호흡과 순환을 관장하는 신경계에도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러다 마침내 일상생활이 곤란해져 병상에 누워만 지내다가 점점 약해지며 사망에 이른다. 한편 결핵균이 폐에 침범시 폐결핵, 장에 침범하면 장결핵, 등뼈에 침범하면 척추결핵이 된다 혈액에 침범하면 좁쌀결핵으로 간과 신장 등 여러 장기에 좁쌀 알갱이 같은 작은 결절이 생기고 두통과 발열 권태감에 시달리며 혼수상태가 온다. 수천년 전 사람 뼈에서 결핵 흔적이 발견되었다. 결핵균은 아프리카 동부에서 최초로 농경과 집단 거주가 이루어진 중동의 메소포타미아 지방으로 전해졌고 다시 서방의 유럽과 동방의 아시아로 퍼져 나갔다고 추정된다. 기원전 8세기에 활약한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도 결핵인 것으로 알려졌다.

     

    로마제국이 번영을 누리던 2세기 무렵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 가서 요양하며 치료하려는 사람이 늘어났다. 결핵이 전염성 질병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으며 생겨난 경향이었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바닷바람을 맞으며 증상 개선에 도움된다는 믿음이 퍼지면서 이탈리아반도 중부의 나폴리나 지중해에 접한 이집트가 요양지로 인기를 끌었다. 페스트와 천연두와 비교하면 감염규모는 비교적 작았으나 결핵은 여전히 사람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무서운 질병이었다. 따라서 출혈을 일으키는 사혈요법과 설사를 유도해 체내 독소를 배출하는 치료법도 시도되었으나 효과는 미미했다. 한편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후한 말기 유력자인 조조의 사인이 결핵이라는 주장이 있다. 18세기 후반에 들면서 페스트가 진정국면에 들었다. 페스트가 환자의 피부를 거뭇거뭇한 반점이 뒤덮이며 흉측하게 만들어 흑사병이라 불렸다면 결핵에 걸린 사람의 피부는 눈처럼 창백해져 하얀 페스트라고 불렸다. 18세기부터 19세기 초 유럽과 북미대륙에서는 4명 중 1명이 결핵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는 산업혁명의 중심지 영국은 결핵이 활개치기 좋은 조건을 갖추었다 즉 공장과 탄광 노동자는 하루 16시간 이상씩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자 만성 피로로 만연력에 약화로 결핵환자가 급증하게 되었다

     

    서구 유럽에서는 19세기 내내 결핵이 활개를 치면서 이 병을 비극적 모티브로 그린 문학과 예술작품이 대거 탄생했다. 당대 대표적 결핵문학으로 1848년 프랑스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가 쓴 소설 춘희를 꼽을 수 있다. 극 중에서 화려한 삶을 살아가는 고급 창부 마르그리트는 순수 청년 아르망을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아르망 가족의 반대로 헤어진 뒤 결핵으로 짧은 생을 마감한다. 이 이야기는 1853년 이탈리아 작곡가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로 재탄생한다. 또한 결핵은 미모와 뛰어난 재능을 겸비한 사람이 걸리는 병으로 해석되면서 때로는 과도하게 미화되기도 했다. 페스트나 천연두 환자는 수포가 돋아나고 반점이 생기며 기괴한 몰골로 변하는데 반해 결핵환자는 가냘프게 여위며 안색은 투명할 정도로 창백해진다. 예수 십자가 회화나 조각상에서 그런 이미지를 떠올렸을 것이다 19세기 초에 활약한 영국 시인 바이런은 나는 폐병에 걸려 죽고 싶다라고 공공연히 얘기했다

     

    세균학자 로베르트 코흐가 오랜 연구와 실험 끝에 결핵의 원인인 결핵균을 특정했다. 1882년의 일이다. 이후 1890년에는 결핵의 항원이 되는 투베르쿨린을 발견했다. 1921년에는 프랑스 파스퇴르 연구소가 결핵 면역을 높여주는 BCG백신 실용화에 성공했다. 그러던 중 제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 미국 세균학자 왁스먼이 결핵균의 활동을 저해하는 항생제 스토렙토마이신을 발견했다. 이 효과는 강력해서 1900년대에 40%에 달하던 결핵성 흉막염 사망률이 1947년에 0.6%까지 내려갔다 그러나 위상상태가 열악한 신흥국에서는 감염 확대가 여전히 높고 치료약이나 항생 물질에 내성을 지닌 결핵균까지 등장해 새로운 위협으로 떠올랐다. 결핵은 에이즈와 말라리아와 더불어 세계 3대 감염병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2016년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연간 1040만명이 신규 결핵 환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그중 14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감염자의 46%는 인도와 아라비아반도의 서남아시아, 26%는 아메리카대륙의 신흥국이 차지하고 있다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