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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멋과 맛의 천년의 도시인 전주를 찾아가 보면
    아들을 위한 인문학/국내여행 2023. 1. 19. 03:10

    전라도라는 지명은 고려 현종때(1018) 다시 가장 큰 고을이었던 전주와 나주의 첫 글자를 따서 부른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주라는 지명은 통일신라시대부터 쓰였는데 온전할 전과 고을주를 사용하였다. 백제시대에는 완전할 완자를 사용해 완산이라 불렸다. 전주는 풍수적으로 사람이 살기 좋은 조건을 갖춘 온전한 땅이라 보인다. 그래서 전주는 후백제의 수도였으며 조선왕조의 발상지이다. 한편 전주를 대표하는 전주한옥마을은 1930년대 일제 세력 확장에 대한 반발로 전주에 거주하던 선비들이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촌을 형성하기 시작하면서 발전하게 되었다. 14-15세기 조성된 안동 하회마을이나 경주 영동마을의 오랜된 전통 한옥과 달리 비교적 최신에 지어진 한옥이다. 한편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일본인들이 대거 전주에 들어오자 그들은 처음 거주한 곳은 전주부성의 서문 밖이었다. 성안에는 천민이나 외국인은 살 수 없었다. 하지만 쌀을 반출하기 위해 1907년 전주-군산 도로가 개설되면서 성곽의 서반부가 강제 철거되었고 1911년말 성곽 동남부가 남부를 제외하고 모두 철거되면서 전주부성의 자취가 사라지게 되었다

     

    태조 이성계 어진

    한옥마을 가장 높은 곳에는 오목대가 있다. 오목대는 이성계가 고려 우왕 6(1380) 남원 우봉 황산에서 왜구를 정벌하고 승전고를 울리며 잔치를 베풀었다는 곳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대한제국 광무 4(1900)에 비석을 건립하였고 태조가 잠시 머물렀던 곳이라는 뜻의 태조고황제 주필유지 비문은 고종황제의 친필를 새긴 것이다. 오목대와 연결된 육교 건너편으로 가면 태조 이성계의 5대조인 목조 이안사가 전주를 떠나기 전에 살았던 곳임을 알리는 이목대도 있다 오목대에서 내려와 태조로를 걷다 보면 경사스러운 터를 지은 궁궐이라는 의미의 경기전을 만나게 된다. 경기전은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인 어진을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태종 101410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경기전은 선조 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으나 광해군 1614년에 중건되었다. 또한 경기전은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전주사고가 설치되었다. 조선왕조실록은 1392년 태조부터 1863년 철종까지 472년 동안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책으로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조선왕조는 실록을 편찬하여 한양의 춘추관, 충주, 성주, 전주에 4대 사고를 만들어 보관했는데 임진왜란 때 유일하게 전주사고만 남고 소실되었다

     

    학인당

    전주 한옥마을 일대에는 한복체험을 할 수 있다. 2012년 한 청년의 아이디어로 전주에서 한복데이가 시작되어 한복을 입고 전주 한옥마을을 여행하는게 유행이 되었다. 퓨전한복, 전통한복 등 다양한 스타일의 한복을 빌릴 수 있다 한옥으로 유명한 곳은 학인당과 승광재가 있다. 학인당은 조선말 궁중 건축양식을 민간주택에 도입하여 만들어진 한옥으로 해방이후 김구 선생을 비롯한 정부 요인들이 숙소로 사용했다. 승광재는 고종의 연호인 광무를 이어간다는 뜻으로 고종황제의 황손인 이석씨가 거주하는 곳으로 황실 문화 체험을 하고 있다. 한편 전주 한옥마을의 도로명은 역사 속 인물과 관련이 많다. 태조로가 그렇고 최명희길, 견훤왕궁로 등 인물명으로 지었다. 그리고 태조로를 걷다보면 로마네스크 양식의 아름다운 서양식 건축물인 전동성당이 있다. 1931년에 완공된 이 성당은 호남지역에서는 역사가 오래되었다. 전동성당은 고풍스러운 외관과 화려한 내부장식으로 인기가 많으나 아픈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한국 천주교의 역사상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과 권상연의 순교 터에 세워진 성당이다.

     

    전주국제영화제

    전동성당에서 서쪽 방향으로 걸어 나오면 풍남문이 있다. 풍남문은 전주부성의 남쪽 출입문이다. 전주부성에는 동서남북에 각각 출입문이 있었으나 1905년 조선통감부의 폐성령에 의해 사대분 중 세 개의 문이 동시에 철거되면서 현재 유일하게 풍남문만 남아 있다. 풍남이란 풍패의 남쪽이란 뜻인데 풍패란 중국 한나라 고조가 태어난 곳으로 조선왕지의 발원지인 전주를 그곳에 비유한 것이다 풍납문 북측에는 호남제일성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한편 2000년 제 1회가 개최된 이래 매년 4월말부터 열리는 전주국제영화제는 대안영화와 디지털영화를 소개하는 영화제이다. 독립영화, 실험영화, 다큐멘터리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전주 영화의 거리는 시청입구의 오거리문화광장에서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까지의 길목을 가리킨다. 전주에는 영화종합촬영소와 영화제작소가 있다. 한편 전주의 캐릭터는 맛돌이와 멋순이인데 전주시의 전통인 태극선과 합죽선을 친근감 있고 정다운 형태의 캐릭터로 의인화했다. 전주의 캐릭터가 전통부채인 이유는 전주의 토양은 화강암이 풍부해서 한지의 재료인 닥나무가 자라기에 적합하다. 전주천의 맑고 깨끗한 물을 손쉽게 쓸 수 있어 옛날부터 한지산업이 활발했다.

     

    국내에서 한지 생산지로 유명한 곳은 원주와 안동 그리고 전주이다. 원주는 천연염색을 통한 색 한지를 만드는 곳으로 유명하고 안동의 양반의 고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순백색의 한지에 올곧은 선비정신을 담고 있다. 전주는 고려 중기 이래 조선 후기까지 수백년 동안 한국의 대표적인 종이 산지였다. 일찍부터 그 품질을 인정받은 전주 한지는 왕실에 진상품으로 들어가 조선시대에는 외교문서로 사용되기도 했다. 전주는 종이외에 출판문화가 발달하여 지방에서 가장 많은 책을 찍어냈다. 이런 전주 한지에 예술적 감각과 장인 정신이 결합하여 전주 부채가 만들어진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전라감염에 부채를 만들고 관리하는 선자청을 두었고 단오때 임금에게 올리는 진상품을 만들었다. 우리 속담에 단오 선물은 부채요 동지 선물은 책력이라고 하였다. 매년 5월에는 전주한지문화축제가 열려 한지인형극, 한지패션대전 등의 공연과 전시 및 한지 천연염색 등 체험행사가 펼쳐진다. 또한 전주는 유네스코가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한 판소리의 본고장이다. 조선 후기 판소리 명창의 이름을 딴 권삼득로가 있다 원래는 권정인데 사람소리, 새소리, 짐승소리의 세가지 소리를 얻었다고 하여 삼득이라 불렀다. 10월이면 세계소리축제가 열린다

     

    조선초기에는 전남과 전북 그리고 제주도까지 통할하는 관청인 전라감염이 전주에 설치되어 전라도 지방의 행정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동학농민운동 때는 이곳에서 집강소 설치를 위한 전주화약이 맺어졌다. 1952년에는 전북도청이 전주에 설치되었다. 또한 전주를 대표하는 음식은 비빔밥이다. 비빔밥은 전주의 고유의것이라는 학술적으로 증명된 것은 없지만 전주에서 잘 받아들여진 이유는 풍부한 식재료와 부녀자들의 음식 솜씨 덕분이었다고 한다. 전주의 재료 중 중요한 식재료는 콩나물, 고추장, 육회, 황포묵 등이 있다. 특히 콩나물은 전주 10미의 하나이다. 안동비빔밥은 헛제삿밥이라고도 하는데 밥에 제사음식을 올려 고추장 대신 간장으로 맛을 낸다. 제사 음식인 산적과 전을 곁들인 것이 특징이다. 해조류가 풍부한 통영에서는 비빔밥에 생미역과 톳나물 등이 들어가고 거제도에서는 특산물인 멍게 젓갈을 넣어 비빔밥을 만든다. 전주는 또 하나가 콩나물국밥으로 유명하다. 콩나물국밥에 지역 전통주인 모주를 곁들여 마시곤 한다. 전주 콩나물국밥은 수란을 따로 주는 남부시장식과 뚝배기에 달걀을 넣어 끓여주는 삼백집식으로 나뉜다. 막걸리에 약재를 넣어 끓인 해장술 모주는 전주를 대표하는 막걸리이다. 광해군때 인목대비의 어머니가 귀양지 제주에서 빚은 술이라 대비모주라 불리다가 모주가 되었다는 설과 어느 고을의 술 좋아하는 아들의 건강을 염려한 어머니가 약재를 넣어 끓인데서 기인했다는 설이 있다. 약재는 생강,대추,감초 등이 들어간다

     

    전주 남부시장은 조선 중기, 전주부성 밖에 형성된 장에서 유래되어 자연스럽게 지역 유통의 중심지가 되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의 쌀값을 좌우했을 정도로 호남권 최대의 전통시장이었던 남부시장은 대형마트의 등장과 온라인 시장 활성화 등 여러 요인으로 침체되었다. 하지만 최근 청년몰과 야시장과 같은 새로운 시도를 하며 다시 활력이 되살아나고 있다. 한편 자만벽화마을은 한국전쟁 때 피난민들이 정착하면서 형성된 평범한 산동네였는데 2012년 자만동 주민들이 젊은 작가들에게 예술 공간을 주어 골목길 40여채의 주택 곳곳에 벽화를 그렸다. 과거의 낙후된 지역을 되살리기 위한 마을 재생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마을 벽화 그리기 사업이 전국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그리고 자만벽화마을에서 전주천을 건너면 예술인들이 모여 사는 서학동예술마을이 있다. 지역상권 쇠퇴와 주거시설 낙후 등으로 쇠락하다가 2010년부터 화가, 자수가, 사진작가 등 예술인들이 하나둘 이사를 오면서 예술마을이 형성되었다. 전주의 거리를 보면 파리가 유럽의 문화심장터라면 전주는 아시아 문화심장터입니다라고 하여 전주시의 자부심이 있어 전주는 문화예술의 도시의 비상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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