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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통의 요지가 만든 풍요로운 도시 대전에 가보면
    아들을 위한 인문학/국내여행 2023. 1. 7. 02:56

    잘 있거라 나는 간다 ~ 대전발 영시 오십분이라고 대전역에서 목표로 가는 호남선 완행열차를 배경으로 이별하는 사람들의 애절한 심정을 노래한 대전부르스(1959)이다. 당시에 서울에서 출발한 호남선 완행열차가 방향을 돌리기 위해 대전역에 잠시 정차하였다. 이처럼 대전은 교통을 중심으로 노래가 만들어질 정도로 철도와 도로의 중심지이다. 또한 수도권과 비교적 가까이 위치한 대도시이다 보니 수도권의 역할을 대신하는 기관이나 시설이 이곳에 많이 들어서게 되었다. 대전은 수도권과 가까우면서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연결하는 위치에 있다. 그래서 경부와 전라선과 고속도로가 있다. 최근에는 동서를 연결하는 영덕당진과 남해지방 연결성을 높이기 위해 통영대전고속도로가 있다. 일본은 조선의 자원을 가져가고 중국 침략을 위한 군수물자를 수송하기 위해 경부선을 건설했다. 1905년에 경부선이 개통하면서 대전역이 들어서고 1913년 호남선까지 완공되면서 대전은 교통의 중심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당시 대전은 중국의 석탄과 압록강 부근의 목재를 가져오고 일본의 공업제품이 소비되는 중간 지점이었다

     

    1960년대 이후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각지 농촌인구 유입이 증가한 결과 대전은 출신 지역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대도시로 발전되었다. 1950년대에는 15만명에 불과하던 것이 1990105만명이 넘어섰다. 그리고 편리한 교통과 수도권과의 접근성이 높아 정부청사 일부가 이전한 최초의 사례가 되었다. 1970년에 준공하여 정부기관이 모여 있던 정부서울청사에서 대통령의 지시로 제 2청사를 과천에 마련하게 된다. 1977년 일로 서울의 인구집중과 청사의 공간부족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1993년까지 다섯 개 동을 지어 일부 부처를 이전하였다. 그후 수도권 집중을 지양하고 국토의 균형발전을 도모하는 차원에서 제 3청사를 계획하고 그 대상지로 대전이 선정된 것이다.군부대 이전하면서 개발한 둔산 신도시에 세워졌는데 1993년 착공하여 1997년 준공하여 청단위 행정기관이 들어서게 되었다. 처음에는 황량한 장소에 청사가 우뚝 세워져 있었지만 현재는 청사 주변에 녹음이 우거지고 주거기능과 상업기능이 집중되어 있어 대전의 신도심으로 변화했다. 이는 정부기관의 이전이 지역발전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과학영재들이 모여 있는 곳이 대전에 있는 카이스트다. 과학 인재의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해 연구 중심의 대학으로 1971년 설립되었고 한국과학원이라 이름으로 서울 홍릉에 설립되었다가 1989년 대전의 대덕 캠퍼스로 이전하였고 2008년에 공식 명칭을 카이스트인 한국과학기술원으로 확정되었다. 그 근처에는 대덕연구단지가 조성되어 1980년대에 정부기관들이 주로 입주했고 1990년대에 들어 벤처기업 위주의 민간업체들이 입주했는데 2005년에 산업과 학문과 연구가 유기적으로 연합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한다는 의미에서 특구로 지정되었다. 2016년 기준으로 정부출연 연구기관 26개 정부 및 공공기관 24개 대학 7, 기업 1669개 등이 입주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등 2016년 종사인력이 7만명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1993년에는 세계박람회가 대전에서 개최되어 선진국이 개최하는 국제행사를 개최하게 되었다.

     

    성심당

    매년 4월 대전 중구 서대전 시민공원에서 칼국수 축제가 열린다. 대전에는 칼국수집만 600곳이 넘을 정도로 많고 50년의 전통을 가진 집들도 있다. 멸치, 황태, 바지락 등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 육수를 낸 일반 칼국수도 맛이 뛰어나지만 사골칼국수, 추어칼국수, 얼큰칼국수, 들깨칼국수 등 그 종류까지 다채로워 다양한 칼국수를 경험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진가루라고 불리던 밀가루가 흔한 식재료가 아니었고 한국전쟁 때 미국의 식량원조를 통해 밀가루가 들어오면서 밀가루 음식이 자연스럽게 발전했다. 특히 대전은 철도교통의 요지로서 대전역이 구호물자의 집산지가 되었고 그러다가 밀가루 유통이 거점이 되었다. 대전에는 성심당이 대표기업으로 자리잡았다. 성심당의 창업주 임길순 씨는 한국전쟁 직후 굶주리는 동포들에게 먹을 것을 주기 위해서 1955년에 대전역 앞에 천막을 세우고 찐빵을 팔기 시작했다. 그는 찐빵 300개를 만들어 200개는 팔고 100개는 이웃에게 나누어주었다. 성심당은 대전 이외에는 분점을 두지 않고 오직 대전에만 4개의 분점을 두었다. 지금 성심당은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직원에게는 수익의 15%를 나눠주며 정직하게 세금을 내고 수익의 10%는 기부를 하고 있다

     

    대전의 동부와 남부는 비교적 고도가 높으며 서부와 북부는 구릉지와 평야가 나타난다. 동쪽에는 계족산(398m) 서쪽에는 계룡산(845m) 남부에는 보문산(457m) 장태산(374m)이 대표적이다. 장태산 자연휴양림은 국내 유일하게 메타세콰이어 숲이 조성되어 있는 휴양림이다. 계족산은 닭다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황톳길로 된 산책로가 있어 맨발로 산을 오르내릴수 있는 독특한 장소이다. 이는 해발 200-300m에서 이어지는 14.5km의 산책로이다. 이길은 주류회사가 사비를 들여 조성했다. 한편 이길은 유명세를 타면서 2010년에는 유엔환경어린이회의에 참석했던 500명의 외국어린이들과 세이셜공화국의 미셸 대통령이 이곳을 맨발로 걸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매년 4월과 10월에는 숲속 음악회 뻔뻔한 클래식이 열린다.

     

    스카이로드

    대전에는 으느정이 문화거리가 있다. 이곳은 천년이 넘은 은행나무가 있어서 으느정이라 부르던 마을이 있던 곳인데 해방 후 한자표기로 은행동이 되었다. 1980년대까지 행정과 상업기능의 중심지였으나 지금은 문화예술의 거리로 새롭게 단장했다. 화랑, 소극장, 공연장 등 문화예술 관련 업종이 150여개 들어서 있고 으느정이 페스티발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리고 있다. 이곳이 주목받게 된 것은 스카이로드 때문이다. 길이 214m 너비 13.3m 높이 20m의 초대형 LED아케이드 시설이 세워져 있어 해가지면 각종 영상쇼를 볼 수 있다. 대전은 연구단지가 많고 녹지공간이 풍부하다. 인근에 특색있는 산과 숲 호수가 가까이 있어 시민들의 여가공간이 풍부한 것도 또 다른 매력이다.

     

    대청댐은 충북 청원군과 대전광역시 대덕구 사이를 흐르는 금강 본류를 가로지르며 건설된 댐이다. 1981년에 완공된 댐이고 대덕구와 청원군의 앞 글자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댐은 여느 댐과 같이 생활공업용수를 공급하고 홍수를 조절하기 위해 건설된 것인데 그 과정에서 생활터전 수몰문제와 생태계 파괴 등의 문제가 수반되었다. 대청호는 저수량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호수이다. 소양호, 충주호 다음이다 그 둘레가 무려 200km나 된다고 하는데 이중 대전시 대덕구와 동구를 지나는 구간을 따라 대청호반길이 조성되어 있다. 구불구불 호수 가장자리를 따라 이어지는 대청호반길은 1-6코스의 걷는 길과 1-3코스의 자전거길이 마련되어 있다. 대부분 평지에다 여수바위 낭만길과 갈대밭 추억길처럼 각 코스마다 주제를 붙여져 있다. 이중 6-1코스인 국화향 연인길은 데이트 코스로 인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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