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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전쟁으로 얼룩진 국경선에서 핵을 겨냥한 인도와 파키스탄에 대한 알아보면
    아들을 위한 인문학/정치 2022. 12. 13. 03:32

    인도와 파키스탄은 상대방이 근처에 있기를 바라지 않는다. 인도 인구가 10.3천만명에 달한다면 파키스탄은 1.8억명에 달한다. 가난하고 불안정하고 분열된 파키스탄은 스스로를 인도와 반대지점에 놓고 있는 듯하다. 양국은 네 번의 큰 전쟁을 포함해 수차례 자잘한 접전을 벌였다. 이 두 나라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인도 아 대륙의 지리적 특성에 서로 묶여있다. 이곳은 벵골만, 인도양, 아라비아 해를 각기 남동쪽, 남쪽, 남서쪽에 그리고 힌두쿠시는 북서쪽에 히말라야는 북쪽에 두고 있다 한편 최초의 무슬림 침공은 7세기 초반에 있었다. 당시 우마이야 왕조의 아랍인들은 현재 파키스탄 땅인 펀자브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 이후 18세기까지 이런저런 외세가 인도 아대륙을 침공하면서 이슬람을 들여왔다. 그럼에도 인더스 강 동쪽 계곡 지역에 자리 잡은 압도적 다수인 힌두교도들은 교류를 거부했고 이는 궁극적으로 인도를 분리시킨 불씨가 되었다

     

    인도 아대륙에는 펀자브어와 구자라트어, 산맥과 사막들, 그리고 이슬람과 힌두교처럼 고대로부터 이어진 오래된 차이로 인한 분열이 상존하고 있었다. 1947년 포스트 식민주의적 민족주의와 종교적 분리주의는 아대륙을 두 개로 갈라놓았다. 그러더니 다시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라는 커다란 세 조각으로 쪼개었다. 19476월 영국 하원 의사당에서 영국이 철수한다는 내용이 발표되었다. 73일 뒤인 815일 영국인들이 싹 떠나버렸다. 이내 희한한 광경이 벌어졌다. 수백만 명에 달하는 무슬림들이 파키스탄이 있는 서부로 가기 위해 인도의 새 국경선으로 몰려들었다. 마찬가지로 수백만명의 힌두교들과 시크교도들이 반대편 국경으로 몰려왔다. 이 난장판의 결과는 대살육전이었다. 이 사태로 적어도 1백만명이 사망하고 1500만명이 추방되었을 거라고 한다. 결국 서부의 무슬림 다수 지역 즉 타르 사막과 갠지스 강 유역 서부인 인더스 계곡 지역은 서파키스탄이 되었고 콜카타의 동쪽은 동파키스탄인 방글라데시가 되었다

     

    파키스탄은 아프간과 마주하는 북서 국경을 물려받았다. 파키스탄은 1600km에 이르는 인도 영토가 중간에 떡 버티고 들어앉아 동파키스탄에서 서파키스탄을 떼어놓은 것이다 그러나 두 개의 파키스탄을 유일하게 연결해 주는 끈이라면 이슬람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두지역조차 원래 하나로 지낸 적이 없었기에 둘이 갈라선다 해도 놀랄일은 아니다. 마침내 1971년 동파키스탄이 서파키스탄의 주도권에 반기를 들고 일어나자 인도가 개입했다. 결국 양측 모두 많은 피를 흘린 끝에 동파키스탄이 떨어져 나와 방글라데시가 되었다. 파키스탄의 국호는 순수의 땅을 의미한다. 즉 스탄은 땅을 의미하고 파키는 순수를 의미한다 그러나 파키스탄은 펀자브, 카슈미트, 신드, 발루치스탄 등 다섯 곳의 서로 다른 지역들이 합쳐 하나의 국가를 형성했다. 민족국가가 아닌 것이다. 공용어에 있어서도 각기 다른어를 사용하고 있다. 발루치스탄주는 천연가스와 광물이 매장되어 원유를 중국에 보내는 육상수송로다. 이렇게 되면 중국은 말라카 해협을 대체하는 길을 확보하게 된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첫 격돌은 1947년 분리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카슈미르를 놓고 벌인 싸움이었다. 양측은 카슈미르를 분할하면서 끝났다 하지만 양측은 카슈미르 지역에 대한 주권을 주장하고 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1962년 중국-인도 전쟁에서 드러난 인도군의 형편없는 전력을 보고 파키스탄이 오판한 것이다. 1965년 인도에게 전쟁을 걸었고 결국은 패하고 말았다. 1984년에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고지대 전투로 여겨질 사아첸 빙하의 해발 6700미터에서 한바탕 맞붙었다. 그후에도 사소한 분쟁이 일어나다가 1999년 카슈미르를 놓고 다시 분쟁이 발생했다. 당시 양측은 핵무기로 무장을 한 상태였고 핵전쟁의 암운이 일어났다. 한편 카슈미르 전체를 온전히 지배할 수 있다면 인도로서는 중앙아시아와 아프간의 접경지대로 향하는 문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러면 인도는 파키스탄의 중국쪽 국경을 부인할 것이다. 파키스탄은 중국에 절대적이 우호관계를 유지하며 무기도 수입하는 혈맹의 준한 것이다. 파키스탄이 캬슈미르를 확보하면 히말라야 티베트 지역에서 발원한 인더스 강의 수자원을 확보할 수 있다. 따라서 목화산업을 지탱할 수 있다

     

    1979년 소련이 아프간을 침공했을 때 인도는 외교적으로 모스크바 정부를 지지했지만 파키스탄은 신속하게 미국과 사우디에게 무기와 철도편을 제공했고 아프간의 무장 게릴라 조직인 무자헤딘이 붉은 군대와 싸울 수 있게 자금도 지원했다. 그리고 소련이 패하고 물러나자 파키스탄 정보부인 ISI는 아프간 탈레반이 탄생하도록 돕았다. 탈레반 구성원 대다수가 파키스탄 북서 국경의 다수 민족인 파슈툰족 출신이기 때문이다. 탈레반과 파슈툰족의 경계는 서구인들이 만들었다고 생각하였다. 아프간과 파키스탄의 경계는 영국 외교장관이 선을 그어 아프간 국왕이 승인한 것이다. 그러나 1949년 아프간 정부는 이 경계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식민시대의 잔재라며 이 조약의 무효를 선언했다.

     

    파키스탄에서 결성된 탈레반은 2001년까지 몇 년에 걸쳐 알카에다의 외국용병들을 들여왔다. 2001년 알카에다는 아프간에서 작전을 벌이는 동시에 미국을 겨냥한 대형 테러를 미국 본토에서 저질렀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미군은 탈레반과 알카에다를 페샤와르에서 몰아냈다. 곧이어 아프간의 반 탈레반 북부 동맹군이 남부로 진격해서 영토를 탈환했고 이어 나토 평화유지군이 들어왔다. 당시 미 국무장관인 파월은 파키스탄 대통령을 하여금 테러리스트에 대한 조치를 취하기를 요구했다. 파키스탄 군부와 정보부로서는 자신들이 훈련시킨 1990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오던 탈레반 수뇌부에 느닷없이 공격을 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혼란 속에 5만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한편 파키스탄의 탈레반은 아프간 탈레반의 자연스러운 번식물이다. 이들은 파슈툰족 출신이다.

     

    네팔 공산당

    중국은 티베트를 원한다. 인도가 티베트를 손에 넣는 것을 막고 또한 티베트가 독립하게 됐을 때 인도가 그곳에 군사기지를 설치하고 고지대를 호령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도 있다 인도는 마오쩌둥주의가 네팔에 불고 있다. 이는 중국의 돈과 무역이 이 지역에 영향력을 사들이고 있다. 따라서 인도가 티베트에 개입하면 중국은 네팔에 개입하겠다는 것이다. 인도는 세계에서 7번째로 넓은 국토와 2번쨰로 많은 인구를 보유한 나라다. 6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고 영토 안에는 15000km에 이르는 항행 가능한 수로를 보유하고 있으며 물 공급도 좋고 경작지도 넓은 편이다. 주요 석탄 생산국이며 원유와 가스도 어느정도 매장되어 있다. 한편 인도와 중국은 바다에서 부딪히게 되어 베트남과 일본과의 관계 강화하여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패권를 견제하고 있다 여기다 2015년 오바마 대통령이 인도공화국 선포일에 거행된 군사퍼레이드에 미국산과 러시아산의 공군 수송기를 선보였다. 인도는 항공모함을 보유한 것을 비롯해 비교적 잘 조직된 대규모의 현대식 해군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중국이 구상하는 대양 해군과 경쟁하기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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