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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덕경 19 ) 恒無欲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아들을 위한 인문학/도덕경(노자) 2022. 12. 3. 03:50
노자 : 依養萬物而不爲主, 恒無欲
(만물을 양육하면서도 주인 노릇을 하지 않고 항상 무욕하다)
우리는 교회에서 천당을 가기 위해서 만든 수단인 교회 키우기나 신도 수 늘리기나 건물 짓기 등이 주가 되고 정작 천당 가기 위해 지켜야 하는 양심이나 성령은 뒤로 밀려나버린다는 것이 문제라고 노자는 지적하고 있다. 노자는 수단으로 여겨야 할 것은 중시하는 좁은 마음을 욕망이라고 하는 것이다. 항무욕은 무욕의 자세를 견지한다는 말로 수단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양심이나 도덕은 그 자체로 선한 것들이다. 진실한 삶을 꿈꾸는 사람들은 대개 양심을 따른다. 그런 사람들은 양심에서 확신이 서면 자신의 전부를 걸기도 한다. 그런데 양심이 시키는 것을 어느 정도 이뤘다 싶으면 이 양심이 바로 기준이나 권력으로 자리 잡아 권력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폭력이 사실은 굉장히 무자비하다. 양심이 정치화되고 도덕이 권력화되는 현상은 주변에서 흔하게 본다
자신이 여전히 노자의 가르침대로 선을 행하였다고 생각하는데 문제가 있다. 위선적 행위를 위선적인 행위로 자각할 수 있다면 양심은 여전히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위선적인 행위를 하면서도 자신은 여전히 선을 행한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독재의 속성이나 전체주의적 속성도 사실은 그렇다. 중국 문화혁명기 홍위병들에게도 선을 행한다는 확신이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최고 통치자는 그것을 교묘히 이용했고 독재를 타도하기 위해서 자기 전부를 걸었던 사람이 나중에 또 다른 독재자가 되어버리는 것을 너무 많이 봐왔다 양심이 권력화되는 것은 위선보다 더 무서운 것이다
그러니까 항상 무욕해야 한다. 양심의 한 모통이에만 사로 잡히지 않아야 한다. 자신의 생각이 진리라고 믿는 것 자체가 우선 굉장히 폭력적인 것이다. 자기 기준으로만 세상을 보면 그렇게 된다. 노자는 그런 현상들을 경계할 것을 말한다. 우리 사회는 지금 양심이 권력화 정치화된 정도가 상당히 심하다. 빨갛게 권력화된 것이냐 파랗게 권력화된 것이냐 하는 차이만 있다. 산을 보며 산속으로 들어가면 산이 보이지 않게 된다. 혁명 전까지는 혁명의 실체를 정확히 보이지만 막상 혁명 안으로 들어가면 혁명이 시야에서 사라진다. 이제 권력과 완장만 보인다. 즉 양심과 기본을 지키면 모든 일이 잘 되지만 어느 순간 그것들이 시야에서 사라진다. 무욕의 태도를 지키면 양심과 기본이 항상 시야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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