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소포타미아에서 황금시대를 연 인류 최초의 시장경제가 형성되었다고 하는데

점토판(25만개 기록)

쐐기문자

이라크가 자리한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바빌로니아 제국이 자리했다. 이곳은 나일문명, 인더스문명, 황하문명과 함께 4대 문명지역으로 다른 지역보다 경제적 수준이 높았다. 특히 진흙으로 만든 점토판 기록이 무려 25만개에 달하는데 이는 로마제국이 라틴어로 남긴 기록보다 많은 수준이다, 점토판의 내용에는 정치나 법, 종교와 문화 등 다양한 분야가 포함되지만, 그보다도 소유권이나 계약, 거래나 채무와 관련된 경제와 사회 분야의 내용이 80%에 달한다. 그만큼 메소포타미아 사회에서 기록이란 일상적인 경제활동에 동반되는 도구였다. 갈대펜으로 쐐기문자를 새긴 네무 모양의 점토판 대부분은 손바닥 정도의 크기로 고대인들의 스마트폰이나 다를 바 없다. 메소포타미아문명에는 아시리아 등 여러나라가 존재했지만 바빌론이란 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바빌로니아제국이 가장 유명하다 바빌로니아 제국은 구바빌로니아는 함무라비법전을 만든 19세기에서 16세기 이어진 왕조이고 신바빌로니아 제국은 기원전 7세기에서 다시 부상한 나라이다

 

신바빌로니아의 소득 수준을 보면 비숙련 노동자 일당이 12리터 전후의 밀이었고 고대 및 중세 사회의 노동자 일당이 5리터 내외 밀이었음을 비교하면 고임금이었다. 이는 메소포타미아의 큰강이 실어다 주는 흙과 모래가 쌓여 형성된 기름진 땅 때문이 아니냐고 답할 것이다 서남아시아와 메소포타미아에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이라는 두 개의 강이 평행선을 그리며 거대한 규모의 평야를 적신다 사실 메소포타미아는 그리스어에서 강을 의미하는 포타무스와 중간 또는 사이를 뜻하는 메;소의 합성어로 두강 사이의 땅이라는 뜻이다. 이에 농업 생산성은 자연 내려준 축복의 땅에 인간의 노력으로 효과적인 관개시설을 더한 덕택이었다. 보리는 염분과 건조한 기후에 강한 작물이다. 메소포타미아의 기본 농산물로 관개농업의 발달로 잉여 생산물을 도출하게 되었다 또 다른 면은 고부가가치 농산품을 키우는 것이다. 메소포타미아 남부는 보리농사를 야자대추농사로 대체함으로써 토지와 노동의 생산성을 높였다.

 

바빌론

바빌로니아인들은 물이 적은 지역인 북쪽 구릉이나 초원지역에는 양을 키웠다. 이는 중요한 단백질원이었고 양털을 직물 짜는데 쓰였다. 이들은 금, 은, 철강 등의 지하자원이나 석재와 목재의 자원의 부족하여 성을 쌓고 궁전을 짓고 신전을 올리는 재료는 모두 수입에 의존했다. 따라서 강을 따라 교역이 발달했고 도시가 곳곳에 만들어졌다 도시에는 다양한 업종의 전문적 수공업자들이 상당한 세밀한 분업체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다양한 가구, 의류, 사치품을 만드는 것은 수공업의 몫이었다. 또한 점토판 기록에 의하면 양파와 같은 틈새상품을 바빌론 근교에서 원예농업으로 재배했다고 한다. 이처럼 도시의 분업은 생산성을 높여주면서 교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게다가 도시 사이의 교역은 지역에 따른 분업을 장려하면서 교역의 공동 화폐로서 은의 사용을 촉진했다.

 

함무라비법전

신바빌로니아 제국은 인류 최초로 시장경제를 실현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즉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것이다. 시장이라는 안정적인 교환의 장이 마련되려면 이를 뒷받침하는 법과 제도가 존재해야 한다. 거기에 개인의 토지를 사고파는 시장이 필요한데 메소포타미아는 존재했다는 것이다. 토지의 대부분은 왕실이나 신전 소유이지만 민간의 가문이나 개인이 소유한 토지도 있었다. 민간지주에게는 보리농사보다는 야자대추농사 같은 상품작물 재배나 양파농사 같은 원예농업으로 갈아타 생산성을 높이는 일이 중요했다. 또한 최근 연구는 이미 기원전 1천년 정도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개인 소유의 토지를 사고파는 일이 흔했다고 보여준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토지를 담보로 은이라는 현찰을 동원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담보 거래는 매매보다 한 단계 높은 질서와 신뢰를 요구한다 기원전 423년 신바빌로니아 제국 무라슈 가문은 페르시아 제국 왕위 계승 전쟁에서 다리우스 2세를 지지하는 페르시아 귀족들의 토지를 담보로 자금을 대어 군사를 동원하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바빌로니아 제국의 사적 소유권은 함무라비법전이 제작된 기원전 18세기 이미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었다. 토지 소유자의 권리는 물론, 세를 놓는 방식이나 정부의 수용권도 세밀히 규정했다 또 함무라비 법전은 소유권이나 상업분쟁을 해결하는 방식 그리고 정확한 이자율(은화는 20%, 보리는 33%)까지 제시할 정도로 포괄적이면서도 상세한 법적 질서를 제공했다

 

흔히 고대는 노예제가 중세 봉건 시대에는 농노제,,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임금노동제가 일반적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기원전 6세기 신바빌로니아 제국은 이 세 종류의 노동관계가 공존했다. 먼저 노예를 사고파는 시장이 있었다. 그러나 노예의 가격은 임금노동의 몇 년치에 해당하는 높은 수준이었다. 게다가 주인이 의식주를 책임져야 하는 고비용이 들어가는 노동인 셈이다. 한편 왕실이나 신전이 소유한 토지에서 노동을 제공하는 사람은 농노에 가깝다. 이들은 강제 노동으로 땅을 일구는 역할을 맡았다. 놀랍게도 신바빌로니아제국에서 가장 일반적인 노동 형태는 임금노동제였다. 왕실이나 신전은 보유한 토지는 넓은데 동원할 수 있는 강제노동은 제한적이어서 추가로 임금노동자를 채용해야 했다. 물론 민간이 보유한 토지에서 노동을 제공하는 것도 임금노동자였다. 그래서 노동시장이 상당한 수준으로 발달했다. 그리고 농번기에는 임금이 상승했고 농한기에는 다시 하락했다. 신바빌로니아 제국은 노동이라는 생산요소 조차 시장의 기제에 따라 움직이는 고대의 독보적인 시장경제 체제였다

 

메소포타미아는 농산물을 제외하고 많은 물품을 수입해야 하는 처지였다. 메소포타미아의 상인들은 터키에서 금과 은을 수입했고 남쪽에서는 직물과 동을 가져왔다. 이란의 주석이나 청금석을 들여왔고 아수르 인근에서 양모를 사 모아 모직을 짜는 일도 있다. 남부의 페르시아만을 통해서는 아라비아반도나 인도까지 장거리 교역을 수행했다. 이 무역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터키의 금과 은이었다. 신바빌로니아 제국에서 시장경제의 발전이 가능했던 것은 화폐를 보편적으로 사용했기 떄문이고 특히 은을 중심으로 화폐경제를 이룩했다. 신바빌로니아 제국은 도시와 농촌을 불문하고 많은 노동자가 은화로 임금을 받았다는 최초의 기록을 남겼다. 이미 구바빌로니아제국 시대에도 규모가 큰 거래를 할 때는 은을 번번하게 사용했다. 기원전 6세기가 되자 거의 모든 영역에서 은을 화폐로 사용했다. 신바빌로니아 제국은 그리스처럼 국가가 직접 은화를 주조하지는 않았지만 은의 품질이나 순도를 규정하고 관리하는데는 개입했다.

 

길가메시 서사시(기원전 4천년전)

은화의 사용은 동업이나 협업의 가능성을 높여주었다. 이미 함무라비법전은 타푸툼이라고 불리는 동업의 형식을 규정하였다. 동업을 위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은을 주고 투자하면 그 이익이나 손해를 신 앞에서 똑같이 나누도록 한다. 투자자와 사업가가 동업을 이루는 사례는 이후 이슬람문명의 무다라바, 중세 이탈리아 코멘다, 한자동맹의 무역 공동체에서 비슷하게 등장한다. 특히 한번의 항해나 거래 같은 단기 동업에 그친 데 비해 신바빌로니아는 10년이상 장기 동업이 빈번했다. 일례로 메소포타미아 남부의 대도시 우르에서 활동한 나시르라는 사업가는 기원전 18세기 해양무역을 통해 구바빌로니아 제국에 구리를 공급하는 일을 담당했다. 그는 한번에 50명이 넘는 투자자를 모집하기도 했다. 일반시민도 소규모 투자를 했고 투자한 금액만큼만 책임지는 유한책임 제도로 운영되었다. 이윤은 투자에 비례해 분배함으로써 주식회사의 초기 형식을 엿볼 수 있다

 

또한 바빌로니아 제국은 징세 기능을 민간에 대행했다. 징세업자라고 불리는 이 사업가들은 정부를 대신해 세금을 거두는 역할을 맡았다. 이들은 정해진 세금보다 더 많은 액수를 거둬야만 이익을 챙길 수 있었다. 징세업자들은 현물로 받은 세금을 현금으로 바꾸거나 납세자와 신용거래를 하는 과정에서 이익을 챙기는 중개와 금융의 혁신으로 사업을 발전했다 한편 기원전 539년 페르시아제국이 부상하면서 신바빌로니아 제국을 점령했다 그리스 역사가 헤르도토스에 의하면 페르시아 제국 부의 3할은 바빌로니아에서 왔다라고 하였다 기원전 485년 멸망한 이후에는 고대 제국의 모델에 따라 페르시아 제국은 강제노동으로 거대한 농장을 운영하는 지대 추구의 경제체제를 따랐다. 따라서 신바빌로니아 지역은 정치권력이 강제로 지배하고 수탈하는 성격을 띠면서 퇴보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한편 파리 루브르박문관에 가면 함무라비법전의 검은 돌기둥이 있고 런던 영국박물관에 가면 우르 상인 나사르에게 보낸 점토판의 항의문서를 확인할 수 있다. 질서가 상품의 교환과 부의 창출을 가능케 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