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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과거에 합격시켜 드리는 거벽은 어떤 역할을 했는가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2. 9. 19. 05:55
유광억은 경남 합천군 사람이다. 시를 대강 할 줄 알았으면 과체를 잘한다고 남쪽 지방에서 소문이 났으나 집이 가난하고 신분도 미천했다. 먼 시골 풍속에 과거 글을 팔아 생계를 삼는 자가 많았는데 유광억 또한 그것으로 이득을 보았다 - 이옥 (유광억전) - 조선은 국가를 운영하는 관리를 시험으로 뽑았다. 그게 뭐 그리 놀라운 일인가 하겠지만 고위 공직자들을 시험이라는 객관적 평가로 선발한 나라는 중국, 한국, 베트남뿐이다. 정치권력이 세습된 귀족 사회에 비하면 합리적이고 진일보한 사회임에 틀림없다. 귀족사회인 신라시대의 입장에서는 고려와 조선을 보면 참으로 놀라운 세상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 시험이 공정했을까 ? 성종실록과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따르면 과거시험장에 대놓고 책을 갖고 들어갖고 들어갔다 하니 공정하지는 않았나 보다. 예상 답안지를 만들어 들어가는 행위, 시험지 바꿔치기, 채점자 매수, 합격자 이름 바꿔치기, 시험장 밖에서 작성한 답지 들여보내기 등 기상천외한 부정행위가 난무했다. 이익의 성호사설, 박제가의 북학의, 한양의 풍물을 노래한 한양가를 보면 과거 시험장은 한마디로 난장판이었다. 난장판이 되어 버린 과거시험장 주변에는 공정성이 완전히 무너졌음을 보여주는 용어들이 난무했다. 과장에 들어갈 때 예상 답안지나 참고 서적을 넣고 들어가는 책행담, 작성된 답지를 대신 필사해 주는 서수, 몸싸움을 벌여 좋은 자리를 잡아 주는 선접군, 과거시험장에서 상부상하기로 한 팀을 일컫는 접,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쟁접 등이 버젓이 활동했다
가장 심각하면서도 충격적인 존재는 거벽이다. 거벽은 과거시험 답안지를 대신 작성해 주는 일종의 대리 시험 전문가다. 유모라는 은어로 불리기도 했다. 정조실록에 따르면 서울의 고봉환, 송도의 이환룡, 호남의 이행휘, 호서의 노긍 등이 대표적이었다. 영남의 거벽 유광억은 이옥이 지은 유광억전의 주인공이다. 유광억은 부잣집 아들의 과거시험 답안지를 대신 작성하여 합격시켜 주고 많은 돈을 벌었다. 그의 명성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높아갔다. 어느날 경사관이 영남 지방으로 내려와 감사에게 인재를 추천받았는데 바로 유광억이었다. 경사관은 이번 과거시험에서 그의 답지를 골라 장원으로 뽑겠다고 장담했다. 감사와 경시관은 내기를 벌였다
과거시험이 시작되자 경시관은 첫 번째로 들어오는 답안지를 보고 바로 유광억의 것이라고 확신하여 곧 장원으로 뽑았다. 이어 2등과 3등을 결정한 후 답안지에 붙어 있는 미봉을 떼어 보았는데 모두 유광억의 이름은 없었다. 경사관이 몰래 조사해 보니 놀랍게도 세 답안지 다 유광억이 대리로 작성한 것이었다. 수수료의 많고 적음에 따라 답안지를 작성해 준 것이다. 경사관은 자신의 안목이 부정당하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자기 눈이 틀리지 않았다는 증거로 삼기 위해 유광억을 성루로 압송시키려 했다. 유광억은 과적(부정행위자)으로 몰려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자살을 선택한다. 한편 이 이야기를 기록한 이옥은 주는 것과 받는 것은 죄가 같다라는 법전의 문구를 인용하면서 유광억과 당시 과거시험장에 만연한 부정행위를 동시에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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