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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2) 어진사람은 곤궁함도 즐거움도 편히 여긴다아들을 위한 인문학/논어 2022. 8. 11. 07:50
不仁者不可以久處約, 不可以長處樂, 仁者安仁, 知者利仁
- 어질지 못한 사람은 곤궁함에 오래 처할 수 없고, 즐거움에 오래 처할 수도 없다. 어진 사람은 어짊을 편하게 여기고 지혜로운 사람은 어짊을 이롭게 여긴다
첫 구절 어질지 못한 사람은 곤궁함에 오래 처할 수 없고를 해석하면 어질지 못한 사람은 고달픈 환경에서 오랫동안 견디지 못한다는 뜻이다 즉 인생의 막장에 들어선 사람은 고달픈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해 위험한 일들을 벌일 수도 있다. 특히 어질지 못한 소인들이 그럴 가능성이 있다. 군자는 온화하게 지내며 천명을 기다리고 소인은 험하게 행동하며 요행을 바란다라고 볼 수 있다. 다음에 이어지는 즐거움에 오래 처할 수 없다는 의미는 어질지 못한 사람은 좋은 환경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게 소인은 외부 환경에 좌지우지되기 때문이다. 소인이 느끼는 즐거움과 행복의 기준도 외부의 사물이나 타인의 평가에 있다. 자기 내면에 어진 본성을 찾지 못하는 소인은 항상 외부에 휘둘리게 된다. 외부 사물에 대한 행복은 오래 가지 못한다. 소인은 좋은 환경이 지속되면 점점 그 환경에 무감각해진다. 그리고 좋은 환경을 얻는 것이 힘들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하게 된다.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이 갈수록 불행해지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어진 사람이 곤궁함과 즐거움에 오래 처할 수 있는 이유는 이것들은 외부 환경일 뿐이다. 어진 사람은 평온한 내면은 외부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자신의 천명과 이상을 가지고 있는 안회는 한그릇의 밥과 표주박 물로 더러운 골목에 살면 사람들은 근심을 견뎌내지 못하는데 그 즐거움이 변하지 않을 수 있었다라고 하였다. 공자는 군자가 살 곳인데 누추함이 있겠느냐라고 말한 것처럼 어진 사람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안락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한편 마지막에 지혜로운 사람은 어짊을 이롭게 여긴다는 이로움을 행한다라고 할 수 있다. 즉 어짊을 통해 더 큰 가치를 발견해 내고 어짊을 이용해 더 많은 사람을 돕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이다
공자가 말하는 어진 사람과 비슷한 유형의 사람이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외부환경의 변화에 영향을 많이 받지 않고 즐거운 생활을 할 수 있다. 반면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자신에 대한 평가와 삶의 목표가 외부 환경의 변화와 타인의 반응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삶이 즐거울 수 없다. 개인적으로 저는 예전에는 소인으로 외부환경에 많이 좌우되고 현재도 많은 부분이 그 영향에서 벗어났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공자의 말씀처럼 어짐의 의미와 주님의 사랑의 의미를 머리가 아닌 가슴에 와 닿아 마음에 오면 소인배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해 본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알지만 마음으로 얼마나 왔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 보았으면 안다. 그리고 사랑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관심과 배려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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