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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주의 작곡가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조반니는 유럽에 열풍을 일으켰다고 하는데아들을 위한 인문학/음악 2022. 8. 5. 05:33
피가로의 결혼(1784년)이 국제적으로 성공하면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프라하 오페라 하우스로부터 또 다른 작곡 의뢰를 받았다. 오페라 대본 작가 다폰네와 다시팀을 이뤄 이번에는 조반니 베르타티의 1775년 가극 돈 조반니에 나오는 전설적 인물 돈 후안의 이야기를 주제로 선택했다. 구제불능의 한량이자 바람둥이 돈 후안의 이야기를 모차르트와 다폰테가 호감이 가는 인물의 이야기로 바꿔놓았다. 두사람은 비가극과 희가극 장르를 혼합해서 1787년 오페라를 완성했다. 따라서 모차르트의 돈 조바니의 희극 또는 비극으로 엄격하게 구분할 수 있는 도덕극이 아닌 일종의 혼합 형식이라 할 수 있다. 일부 역사가들은 이것이 관객들이 보수적이고 전통을 고수하기로 유명한 빈에서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가 좋은 평을 받지 못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돈 조반니는 모차르트의 고유의 고압적이고 웅장한 단조 코드의 테마로 시작한다. 돈 조반니가 한 남자를 죽이는 첫 장면에 어울리는 잊을 수 없는 반주이다. 주인공 같지 않은 주인공이 부르는 감동적인 세레나테와 터무니 없고 익살스러운 유혹 장면, 주인공에게 닥치는 교훈적인 비극이 번갈아 나온다 전율이 돋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조반니가 회개하기를 거부하자 살해당한 남자의 유령이 그를 지옥으로 끌고 간다 감정적 충격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돈 조반니는 모차르트 최고의 작품이라 할 만하다. 이 오페라에서도 모차르트 고유의 천재성이 예외없이 묻어난다. 돈조반니는 모차르트가 주로 생활하던 도시 빈을 제외한 모든 도시에서 대단한 성공을 누렸다. 1791년 모차르트가 사망할 때까지 돈 조반니는 유럽에서 가장 널리 공연되는 오페라에 속했다.
돈 조반니를 본 오스트리아 요제프 황제는 모차르트에게 음표가 너무 많다고 말했고 그에 모차르트는 필요한 만큼 넣었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편 돈 조반니의 대본을 쓰는 동안 다폰네는 후원자의 저택에 머물며 방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바로 옆방에는 음식과 포도주가 가득 차려져 있었고 그 옆방에는 영감을 얻기 위해 필요하다면 벨만 누르면 달려올 매춘부가 있었다. 오페라 돈 조반니는 1787년 프라하에서 초연되었고 1788년 빈, 1817년 런던, 1826년 뉴욕에서 공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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