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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를 쓴 민족적 저항 시인 이육사아들을 위한 인문학/문학 2021. 3. 2. 02:40
1904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보문의숙에서 신학문을 배우고 대구 교남학교에서 잠시 수학했다. 1925년 독립운동단체 의열단에 가입, 그해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다시 의열단의 사명을 띠고 북경으로 갔다. 1926년 일시 귀국, 다시 북경으로 가서 북경사관학교에 입학, 이듬해 가을에 귀국했으나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좌로 3년형을 받고 투옥되었다. 그때 그의 수인번호가 264번이어서 호를 육사로 택했다고 전한다. 1929년에 출옥해 이듬해 중국으로 건너가서 북경대학 사회학과에서 수학하면서 만주와 중국의 여러 곳을 전전하며 정의부,군정부,의열단 등 여러 독립운동단체에 가담하여 독립투쟁을 벌였으며 그때 노신을 알게 되었다. 1933년에 귀국하여 시작에 전념하여 육사란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하였다. 1934년 언론기관에 종사하면서 시외에도 한시,시조,평론,시나리오 등도 썼다. 그는 1941년까지 계속해서 다양시를 발표하고 시작 활동 못지않게 독립투쟁에 헌신하여 전 생애를 통해 17회나 투옥되었다. 민족적 저항시인 광야에서 드러난 식민지하의 민족적 비운을 소재로 삼아 강렬한 저항의지를 나타내고, 꺼지지 않는 민족정신을 장엄하게 노래한 것이 특징이다. 1941년 폐병을 앓았고 1943년 독립운동중 북경감옥에서 옥사했다. 광야를 통해 그의 숭고한 업적을 느끼며 3.1절을 맞아 다시 한번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광야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히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나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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