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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조시대에 프로바둑기사 기객 정운창은 평양감사가 백금 스무냥을 주었다고 하는데
    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2. 4. 5. 03:59

    대국 세판이 진행되면서 승패와 유불리를 분간하기 힘들었다. 그럴때면 구경꾼 모두 눈을 부릅뜨고 발을 구르며 그 형세를 돕고자 훈수를 두었다. 국수는 끝내 동요하지 않은 채 불리해도 막지 않고 유리해도 기뻐하지 않았다. 한결같이 법도에 따라 바둑을 두었다 - 안중관 < 회와집 > 한중일 세 나라는 바둑을 즐겼다. 조선은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바둑돌을 미리 깔아 놓고 공방하는 순방바둑을 주로 두었다. 김창업은 <노가재연행록>에서 중국인과 바둑을 두었던 경험을 이렇게 술회했다. 우리식과 같지만 대국을 시작하며 배자(돌을 미리 까는 것)를 하지 않는 점은 달랐다

    삼국시대부터 사랑받은 바둑은 조선 후기에 이르면 온 가족이 즐기는 놀이로 자리매김한다 <소현성록> <유씨삼대록> <명행정의록> 등 우리 고전 소설은 가족이 모여 대국하는 장면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이들 소설은 임금과 신하, 남녀 성 대결도 그리고 있어 조선 후기 바둑 열풍을 짐작케 한다. 바둑을 둔다고 쌀이 나오거나 떡이 나오지 않을 터이나 바둑을 생업으로 삼는 이도 있었다. 영조때 문인 유본학은 문암유고에 김석신에게 보내는 글을 남겼다. 김석신은 국수로 손꼽혔으며 내기 바둑을 두어 딴 돈으로 생활했다. 김석신은 바둑으로 먹고사는 프로 기사였던 셈이다. 그러나 내기 바둑만으로 생계를 꾸리기란 쉽지 않았다. 많은 바둑기사가 후원자를 두었다. 후원자가 있는 바둑기사는 기객이라 불렀다. 기객은 부호나 세력가에게 후원을 받으며 오직 바둑기량을 갈고 닦았다

     

    유명한 기객으로 김종귀, 양익빈, 정운창 등이 있다. 모두 한 시대를 풍미한 바둑기사다. 바둑 기사 가운데 최고봉에 오른 이는 국수 혹은 국기라 불렀다. 국수의 반열에 오르면 조선을 대표하는 바둑기사로 큰 영예를 누렸다. 이중 김종귀와 정운창은 여러 문인의 글에 심심찮게 등장한다. 두사람은 시대를 풍미한 맞수였기 때문이다. 김종귀가 한발 먼저 국수자리에 올랐고 정운창은 김종귀를 누르고 새롭게 국수가 된다. 이서구의 <기객소전>에 따르면 정운창은 사촌 형에게 바둑을 배웠다. 어쩌나 바둑에 몰두했던지 6년 동안 문밖을 나가지 않았다. 바둑돌을 손에 쥐면 자고 먹는 것조차 잊었다. 정운창은 정조때 문인 이옥이 지은 <정운창전>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정운창은 병치레가 잦았다고 한다. 10년간 매진한 끝에 오묘한 이치를 깨우쳤다고도 한다

     

    바둑 1인자 계보

    6년 동안 방 안에서 바둑만 뒀다거나 10년만에 묘리를 터득했다는 일화는 정운창이 지닌 승부사 기질과 집념을 보여준다. 당시 직업으로서 기사가 존재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당시 기사라는 직업이 있었던 까닭에 정운창은 각고의 노력으로 얻은 바둑 실력을 밥벌이로 삼아 세상에 나왔던 것이다. 신예 정운창과 국수 김종귀의 대국은 서울이 아닌 평양에서 이루어졌다. 김종귀의 후원자가 당시 평양 감사였기 때문이다. 정운창은 긴 수련 끝에 세상에 나와 단박에 국수 김종귀를 이겼다. 이로써 정운창은 평양 감사의 기객이 되었고, 당대 여러 문인의 입에 오르내리는 기사가 되었다. 평양 감사는 정운창에게 백금 스무냥을 곧바로 꺼내 주었다. 당시 서울에서 초가집 한 채를 살만한 금액이었다

     

    실력 좋은 기사는 바둑 대회에 따라 즉흥적으로 고가의 상품을 큰 상금을 걸었다. 또 대국 상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고가의 상품을 내놓고 독려했다. 한 정승은 정운창이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며 남원산 상화지(고급종이)를 상품으로 내걸었다. 냉혹한 승부의 세계였지만 바둑기사는 서로를 예우했다. 선배를 몰아세우지 않는 대국을 미덕으로 여겼다. 정승이 개최한 바둑 대회에서 김종귀와 정운창은 다시 마주했다. 두판을 연거푸 진 김종귀가 정운창에게 눈짓을 주었다. 마지막 세판에서 정운창은 일부러 실수를 거듭했다. 이미 승패는 정해졌으니 선배 김종귀의 체면을 세워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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